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삶의 향기] 젠트리피케이션은 우주피스에도

송인한 연세대 교수·빌뉴스의대 객원교수

송인한 연세대 교수·빌뉴스의대 객원교수

예술가들의 자유로운 이상국가 ‘우주피스(Užupis) 공화국’을 지난봄 칼럼을 통해 소개했었다. 우주피스가 있는 북유럽 발트해 연안의 작은 나라 리투아니아는 15세기 유럽에서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가졌던 나라였고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고유어를 가진 문화국이지만, 우리나라만큼이나 외부의 침략을 겪어온 한(恨) 많은 나라다. 소비에트 연방에의 강제 합병 후에는 거의 잊혀 있던 작은 나라였으나, 소련의 붕괴와 함께 독립하여 빠른 경제적 부흥으로 관심을 받는 유럽연합(EU)이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이고, 수도 빌뉴스 구도심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아름답고 신비로운 곳이다. 일본과 중국은 오래전부터 적극적인 외교활동을 펼치고 있으나 대한민국은 대사관조차 없고 주폴란드 대사관이 겸임하고 있는 상태다.
 
수도 빌뉴스의 한켠에 있는 우주피스라는 2.2 ㎢의 작은 공간은 소비에트 시절 가장 가난하고 희망이 없던 곳이었다. 범죄율이 높고 알코올·마약 중독자의 소굴이었으며 죽음의 공간이라고 불릴 만큼 폐허 그 자체였다. 이곳에 1998년 만우절 일단의 예술가들이 모여 공동체를 만들고 농담 같은 유쾌한 헌법을 선포하며 자유공간을 만든다. 마크 트웨인이 “진지한 것들은 종종 농담으로 이야기된다”고 했던가? 그들의 선언은 만우절 농담 같았으나 그 안에는 인간의 행복과 자유를 위한 공동체에 대한 절실함이 녹아 있었다.
 
20여년 후 그들의 이상은 점차 전 세계에 알려졌고 우주피스는 현재 20여 개국의 공동체와 연대하고 있다. 당장 가시적인 변화만 봐도 가장 방치되고 위험했던 지역이 생기를 가진 창조적 예술공간으로 재탄생했으며 사람들에게 신선한 아이디어와 영감을 주는 공간이 되었다.
 
우주피스 출범 이전 지역주민의 12%만이 대학졸업자였던데 비해 출범 후에는 70%에 이를 만큼 거주자의 성향이 변했다. 아울러 예술구역으로의 고급화로 땅값은 상승하였으며 현재는 빌뉴스에서 주택임대료가 도시 평균보다 2배 높은 가장 비싼 거주공간이 되었다. 지난 20년간 가장 가난한 지역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으로 변한 셈이다. 변화에는 긍정적인 것만큼이나 부정적인 것도 필연적으로 따르는 법. 젠트리피케이션이 그 뒤를 이었다.
 
우리 사회의 시급한 문제로도 많이 언급되는 이미 익숙한 개념이지만,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무엇인가? 임대료가 높아지며 임차인이 내몰리는 경우에 흔히 사용되고 있는데, 보다 넓게는 주거민의 계급 구성이 변화되며 따르는, 특히 낙후지역에 중산층이 살게 되며 발생하는 광범위한 현상을 말하기도 한다. 경제적 문제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요인으로 인해 사는 곳으로부터 비자발적으로 내몰리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우주피스의 경우 최초로 이주해 온 예술가들은 싼 주거지로 들어온 탓에 자신의 집을 소유하는 운 좋은 경우가 있으나, 현재는 비싼 임대료로 인해 진입장벽이 높아져 새 거주자의 구성은 초기와 달라지고 있다. 초기에는 가난하지만 공동체 정신에 동의하는 예술가들이 모였다면, 지금은 우주피스의 유명세를 즐기는 정치인이나 유명인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기존의 공동체에 참여하기보다는 소위 “개념인”으로 보이게끔 우주피스를 장식으로 활용한다고 비판받는다. 즉 문화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자본을 소비하는 것이다. 공동체 안에서의 부유한 생활양식으로 인해 기존의 공동체가 흔들림으로써, 기존 구성원이 공동체에 실망하여 내몰리게 되는 문화적 혹은 가치적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고 있다 한다.
 
리투아니아 방문길에 우주피스 관광장관 케스타스와 만나 논의하였다. 젠트리피케이션의 궁극적 해결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 진행을 더디게 함으로써 구성원의 고통을 덜고 적응할 시간을 벌 대안이 필요하다. 기술적 방법이 한계에 부딪혔을 때는 가장 기본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공동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공동체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서도 우선 함께 이야기 나누는 게 첫 번째 단계라고 뜻을 모았다.
 
전 세계의 공동체가 함께 힘과 지혜를 모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파리의 몽마르트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예술가 마을 등도 초대하기로 하였다. 홍대 앞이나 경리단길을 포함해 우리나라의 공동체도 초대하고 싶다.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은 우선 함께 이야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하니까. 다양한 경험을 모으는 것이 힘이 될 것이다.  <빌뉴스에서>
 
송인한 연세대 교수·빌뉴스의대 객원교수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