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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자사고 폐지, 그 다음이 없다

윤석만 교육팀 기자

윤석만 교육팀 기자

“무작정 없애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그다음이 없다는 거예요.”
 
과거 정권에서 교육 관련 정부기관장을 지낸 사립대 A교수의 말이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자율형사립고(자사고) 폐지 정책을 보면서 “시계가 거꾸로 간다”고 이야기했다. “학생들이 다양한 학교에 진학할 수 있도록 선택의 폭을 넓혀주고 학교에 자율성을 주는 것이 선진국이 취하는 교육정책의 방향”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실제로 자사고의 전신인 자립형사립고는 김대중 정부가 2001년 도입했다. 평준화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고교교육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6개 학교로 시작해 현재의 42곳으로 확대됐다. 정부마다 교육정책은 달랐지만 ‘학교 다양화’라는 목적 자체는 변한적 없다. 그 결과 지금과 같은 영재학교, 마이스터고 등 여러 형태의 학교가 생겨났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자사고·외국어고 폐지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2017년 김상곤 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자사고 폐지를 위한 3단계 로드맵을 제시했다. 당시 그는 “학교 간 서열을 만드는 체제가 가중돼 지금의 여러 가지 불만, 서열화가 이뤄졌다. 크게 잘못된 상황이다. 외고·자사고는 취지와 다르게 변질해 이를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 국민의 의견”이라고 말했다.
 
자사고 폐지 반대 학부모들. [연합뉴스]

자사고 폐지 반대 학부모들. [연합뉴스]

그 결과 올해 재지정 평가 대상인 24개 자사고가 폐교 위기에 몰렸다. 20일 평가 결과가 공개되는 상산고(전북)를 비롯해 하나고(서울), 민족사관고(강원), 포항제철고(경북) 등 각 지역 명문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자사고 폐지’ 공약을 실천이라도 하듯 각 교육청은 올해 재지정 기준을 과거 60점에서 70점으로 갑자기 상향했다.
 
특히 상산고 관할인 전북교육청은 80점으로 제일 높다. 위기 상황에 몰린 상산고 학생·학부모 6명은 지난달 29일 청와대를 방문해 학생들이 직접 쓴 편지 396통을 전달했다. 당시 학생들은 “학교가 폐지돼야 할 ‘교육적폐’인지는 정치적인 논쟁사항이다. 다만 평가 기회와 과정은 평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자사고가 왜 ‘적폐’인지 명쾌하게 설명해주는 관료는 단 한 명도 없다. 사교육을 조장하고 고교를 서열화시키며, 그 결과 일반고를 황폐화한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다. 하지만 “자사고가 (교육특구인) 수성구 쏠림 현상을 완화시켰다”는 우동기 전 대구시 교육감의 말처럼 자사고가 폐지되면 오히려 서울 강남 등 8학군이 부활해 사교육이 커질 수 있다. “자사고로 몰렸던 학생들이 교육특구로 쏠리게 될 것”(이만기 유웨이중앙교육 평가이사)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물론 자사고의 부정적인 면이 많다면 공정한 평가를 거쳐 폐지할 수는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학생·학부모의 니즈를 어떻게 충족시킬 것인지 대안이 먼저 마련돼야 한다. 지금처럼 일단 없애고 보자는 식이어선 곤란하다. 오죽하면 현 정부 교육공약 입안에 참여했던 이범 교육평론가조차 “이명박 정부에서 교육정책을 배우라”고 비판했겠는가.
 
최근 이시종 충북 지사가 자사고 설립을 주장하고 나서자 지역 학부모들 사이에선 “상산고를 충북으로 옮기자”는 주장까지 나온다. 자사고는 없애더라도 자사고와 같은 학교, 즉 수월성 교육에 대한 학생·학부모의 니즈는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진짜 적폐는 21세기의 학생들을 발목 잡고 있는 20세기의 정부일지도 모른다.
 
윤석만 교육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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