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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석의 시선] 15분 위해 600분 기다린 사내…울지마 이규혁, 넌 영웅이야

강민석 논설위원

강민석 논설위원

#1. 정정용 리더십, 신세대 팔로어십
 
6월 15일 폴란드 우치에서 정정용 감독이 고개를 옆으로 돌려 이강인을 빤히 쳐다보면서 물었다.
 
“(우승하면) 헹가래 쳐줄 거야?”
 
“한 번 생각해봐야 할 거 같은데….”(이강인) 아니, 그걸 생각해봐야 한다니. 물론 농담이었다. 우크라이나와의 U-20 월드컵 결승전을 치르기 하루 전 기자회견에서 나온 유쾌한 장면이었다. 그런데 감독 하면 카리스마 아닌가? 36년 전 멕시코 월드컵 4강 신화 때 박종환 감독 휘하를 우리는 ‘사단’(師團)이라 부르지 않았나. 하지만 절대권력자인 감독과 선수 간의 장난기가 잔뜩 서린 대화를 보고 나니, 정정용 리더십은 카리스마형이 아니라 수평형인 게 분명했다. 하긴 ‘박종환 사단’과 ‘정정용 아이들’은 인류가 다를 수 있다. 팔로어십도 달라졌을 것이다.
 
#2. ‘떼창’ 동영상
 
6월 12일 대표팀 버스 안. 4강전에서 에콰도르를 1대0으로 이긴 직후였다. 조영욱이 의젓한 목소리로 말했다.
 
“야! 재익(이재익)아. 우리의 ‘떼창’을 한번 보여 드리자, 팬분들께.”
 
도대체 무슨 노래를 부르려나.
 
“발라드를 한 번 시원하게 틀어봐라~.”(조영욱)
 
동영상을 보기 전 애국가를 열창하나 했던 내 예상은 한참 빗나갔다. 신세대 선수들은 그룹 노을의 ‘그리워 그리워’라는 노래를 열창했다. 양팔을 물결 모양으로 흔들흔들하면서. “수학여행 온 고등학생들 같다”는 댓글이 귀엽다는 취지로 달렸다.
 
‘박종환 사단’이 멕시코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썼을 때 신문에는 ‘불굴의 투혼’ ‘피와 땀’ ‘세계 제패’ 같은 표현이 등장했다. 하지만 ‘정정용의 아이들’은 비장하게 감정을 잡기보다는 “즐기는 축구” 또는 “추억 남기기”를 말한다. 그래서 성적이 나올까 싶지만 ‘즐기는 축구’가 ‘투혼의 축구’를 넘어섰다. 자율을 좋아하고 분방하지만, 이들은 열정이 넘쳤고 강했다.
 
#3. 세 개의 승부수
 
6월 16일 새벽 1시. 정정용 리더십과 신세대 팔로워십에 기대를 걸고 TV를 켰다. 스타팅 라인업을 보고는 살짝 놀랐다.  ‘정말 김정민?’  
 
중원 미드필더로 기존의 정호진 대신 김정민이 나왔다. 정 감독의 승부수였다. 정호진은 수비형, 김정민은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이전까진 전반 수비-후반 역습의 보수적인 경기 운영을 했다면, 결승전만큼은 진검 승부를 택한 셈이다.
 
승부수가 적중하면 ‘신의 한 수’라고들 한다. 하지만, 대개의 승부수라는 것이 무리수 또는 자충수가 될 위험이 따르는 법. 정 감독의 승부수가 들어맞았는지 틀렸는지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결승전에서 정 감독이 승부수를 뽑아 든 것은 지극히 타당했다고 말하고 싶다.
 
정 감독은 2대1로 뒤진 후반전 두 번째 승부수를 꺼냈다. 김세윤을 빼고 보다 공격적인 엄원상을 투입했다. 솔직히 2대1로 지나, 3대1로 지나 지는 건 똑같다. 2대2를 위해 올인하는 건 당연했다. 그러나 상대가 강했다. 특히 세 번째 골을 넣은 선수의 드리블 질주는 거의 속도위반이었다.
 
정 감독이 경기종료 15분 정도를 남겨놓고, 이규혁이란 카드를 뽑았다. 그때까지 출전시간 0, 출전 대기시간만 600분가량이었던 이규혁. 15분을 위해 600분을 기다려온 이규혁은 사력을 다해 뛰었다. 그 광경을 보면서, 정 감독의 마지막 승부수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4. ‘이규혁의 눈물’
 
경기가 끝난 뒤 카메라가 잠시 이규혁을 비추었을 때, 그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절망스런 상황이라고 시합을 포기했거나, 경기에 많이 뛰지 못했다고 방관자 같은 자세였다면 통한(痛恨)의 눈물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규혁처럼 울거나 고개 숙인 선수들을 한 명 한 명 찾아다니며, 양손으로 얼굴을 잡고 위로하는 선수도 있었다. 이강인이었다. “형은 최선을 다했어. 형이 자랑스러워. 고개 숙이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규혁의 눈물에서 이강인의 위로까지, ‘원팀(one team)’이 뭔지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사실 원팀은 23일 전 폴란드 여정을 시작하면서부터 목표로 ‘최소 4강’을 말했다. 나부터 믿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지난 23일간 “너흰, 할 수 없어”라는 편견을 바꿔나갔다. 그 과정 자체가 한심한 정치에 짜증 난 국민에겐 위로였고, 삶이 팍팍한 20대에겐 “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자동차왕’ 헨리 포드는 생전 세상에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봤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는 “두 사람 모두 다 맞다”고 했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건, 없다고 생각하건, 생각한 대로 된다는 걸 원팀이 보여줬다.
 
강민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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