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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베스트] 아름다웠고 슬펐네, 18세기 대하소설

중앙일보와 교보문고가 최근 출간된 신간 중 여섯 권의 책을 ‘마이 베스트’로 선정했습니다. 콘텐트 완성도와 사회적 영향력, 판매 부수 등을 두루 고려해 뽑은 ‘이달의 추천 도서’입니다. 중앙일보 출판팀과 교보문고 북마스터·MD 23명이 선정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대소설의 시대 1·2

대소설의 시대 1·2

대소설의 시대 1·2
김탁환 지음
민음사
 
“『대소설의 시대』에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분주한 것은 김진과 이명방을 비롯한 남자들이지만, 걸작을 원하고 베끼고 쓰고 읽는 이는 모두 여자들이다.”
 
소설가 김탁환의 새 장편 『대소설의 시대』는 결국 2권 말미 ‘작가의 말’에 집어넣은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거다. 여기서 ‘대소설(大小說)’은 하염없이 긴 소설이라는 뜻. 대하소설,  ‘대설(大說)’도 같은 말이다. 어쨌든 조선의 18세기가 뜻밖에도 아름다운 장편소설의 시대였고, 그런 좋았던 시절은 여성 저자, 여성 독자 때문에 가능했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저자는 즐겨 사용하는 잘 벼려진 칼을 꺼내 들었다. 2003년 처음 선보여, 김탁환식으로 표현하면, 장안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 해결 콤비 ‘의금부 도사 이명방-규장각 서리 김진’ 카드다. 미궁에 빠지는 듯했던 『방각본 살인 사건』을 절묘하게 해결했던 그 콤비 말이다.
 
이번 소설에서도 살인사건은 등장한다. 하지만 ‘이야기의 신(神)’이라 불리며 추앙받았던 임두 작가가 무려 23년째 매달려온 200권짜리 대소설  『산해인연록』의 완성을 둘러싼 우여곡절 소개가 주 관심사다.
 
무결점 작가처럼 보였던 임두. 그도 허방에 빠질 때가 있다. 199권을 쓰고 마지막 한 권을 남겨둔 『산해인연록』을 5개월째 완성하지 못하고 있던 것. 설상가상, 어느날 갑자기 임두가 사라진다. 문제는 『산해인연록』이 단순한 인기 소설이 아니라는 점. 열혈 독자 중에는 어쨌거나 당대 권력의 핵심이었던 사도세자의 아내 혜경궁 홍씨 같은 인물도 들어 있다. 이럴 때 작가가 소설을 완성하는 일은 선의의 여기(餘技) 혹은 예술활동이 아니다. 조사 결과에 따라 저자나 관련자들이 문책을 받을 수 있는 위태로운 사업이 된다.
 
소설가 김탁환. 2003년부터 추리소설 형식을 통해 18세기 문화사를 그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사진 민음사]

소설가 김탁환. 2003년부터 추리소설 형식을 통해 18세기 문화사를 그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사진 민음사]

작가 김탁환은 저자의 행방, 소설의 완성 여부를 캐는 추리소설 구조를 통해 ‘좋았던 시절’의 실상을 전하는 데 열심이다. 1·2권 합쳐 전체 22개인 장마다 고소설 한 권씩을 대응시켜 그 내용을 전한다. 그런 점에서 교양소설. 임두를 통해 누구에게나 오직 한 편뿐일 최고의 작품을 쓰는 일의 어려움을 전하는 예술가 소설. 이명방을 얼치기 소설가로 설정해 지극한 예술의 세계를 동경하도록 하는 장면에 김탁환 자신의 열망을 녹였다는 점에서 실존소설이다.
 
22장에 대응시킨 작자·연대 미상의 국문 필사본  『명주보월빙』 은 간단히 인터넷만 두드려봐도  『엄씨효문청행록』 등과 3부작을 이뤄 235책에 달하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장편이라고 나온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K팝, K 필름을 능가하는 K리터레처의 유전자를 우리가 잊고 있었다고 하면 과장일까.  
 
김탁환 소설은 크게 두 갈래로 나눌 수 있다. 2016년 『거짓말이다』 등 세월호 소설들을 ‘현실참여형’이라고 할 수 있다면 이명방 등을 등장시켜 과거의 소설 황금시대를 안타까워하는 계열은 뭐라 표현하면 좋을까. 어떻게 이름 짓든, 가닿을 수 없는 세상에 대한 향수와 동경, 유한해서 아름답고 그래서 더 절실한 인생과 예술의 비밀을 다룬다는 점에서, 보다 본질적이고 아스라한 세계다.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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