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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시 쓸 수 있다…세월호 상처도 글 쓰기로 치유 가능

[세상을 바꾸는 지식인] 시인 겸 철학자 진은영씨
상처 복기(復棋)? 아니, 사건의 재구성이라고 해도 좋겠다. 5년 전 4월 이준석 선장을 비롯한 세월호 선원들은 왜 자기들만 살겠다고 배에서 빠져나왔던 걸까. 여러 가지 해석과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철학자이기도 한 시인 진은영(49)씨는 선원들이 몽유병자 상태였기 때문이라고 답할 가능성이 높다. 잠에 중독된 채 생각 없이 말하고 행동한 결과, 타락하고 죄를 짓는 존재가 몽유병자다. 능동적으로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없는 상태, 사건 당시 선원들의 어떤 불능 상태를 그렇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문학, 내 마음의 무늬 읽기』 펴내
 
시인 진은영은 빼어난 예술 작품 생산보다 예술을 통한 타인과의 소통·공감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마음이 아픈 이를 돕는 문학상담은 그 방편이다. [사진 임안나]

시인 진은영은 빼어난 예술 작품 생산보다 예술을 통한 타인과의 소통·공감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마음이 아픈 이를 돕는 문학상담은 그 방편이다. [사진 임안나]

그런 정신적 좀비 상태에서 벗어나는 길은? 문학치료·상담에 답이 있다는 게 진씨의 생각이다. 2000년 등단한 진씨는 시집 『훔쳐가는 노래』 등을 냈다. 이화여대 철학과에서 니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문학과 철학을 양손에 나눠 들고 2014년부터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에서 문학상담사들을 길러낸다. 최근에는 동료 김경희 교수와 함께 『문학, 내 마음의 무늬 읽기』(엑스북스)를 냈다. 문학상담의 실제와 인문학적 배경을 설득력 있게 소개한 책이다. 지난달 20일 진씨를 만났다. 문학은 과연 세상을 바꾸는 무기가 될 수 있나.
 
미술이나 음악치료는 익숙한데, 문학치료나 상담은 좀 낯설다.
“단순히 병리현상 치료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문학의 치유력을 활용해 한 사람이 성숙한 자아로 통합적 성장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취지다. 마음이 아파 상담을 받으러 온 사람을 내담자 A라고 하자. 이 사람에게 읽히는 문학 텍스트는 또 다른 내담자, 즉 내담자 B의 역할을 한다. 내담자 B의 상처와 소외를 읽으며, 내담자 A는 좀 더 객관적인 거리에서 자신의 문제를 성찰하게 된다.”
 
정신과 상담처럼 아픈 과거를 직시하는 것만으로 치유 효과가 있다는 게 원리인가.
“비슷하다. 원 상처를 복기한다고 할 때 그 상처란 어떤 사건에 달라붙은 감정과 생각의 덩어리다. 우리가 과거의 사건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그 사건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사건에 대한 정서적 반응, 사건의 의미는 달라질 수 있다. 문학상담에서는 내담자가 자신의 고통을 문학적으로 표현하고, 표현한 내용에 대해 함께 이야기함으로써 변화를 이끌어낸다.”
 
심리상담과 비교해 문학상담의 이점은.
“문학상담에서는 읽기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활동은 쓰기다. 일정한 주제에 관한 자신의 이야기를 쓰도록 하는데, 쓰기는 말하기보다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을 더 용이하게 한다. 사람은 무엇에 대해 말할 때보다 쓸 때 그 내용이 자신과 더 분리되었다고 느낀다. 더구나 글로 쓴 건 더 잘 잊기 마련이다. 필요하면 노트를 다시 펼치면 되기 때문이다. 쓸 때 은유와 상징을 활용하는 문학적 글쓰기의 특징도 안전한 자기 탐색에 도움이 된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상담 수업 첫 시간은 사람들이 너무 울어 진행이 어려울 정도다. 그만큼 자기 얘기를 하고 쓰며 감정적이 된다.”
 
왼쪽부터 『문학, 내 마음의 무늬읽기』,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순수이성비판, 이성을 법정에 세우다』. [사진 임안나]

왼쪽부터 『문학, 내 마음의 무늬읽기』,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순수이성비판, 이성을 법정에 세우다』. [사진 임안나]

책 첫머리에, 저녁에 퇴근해 슈베르트를 연주하는 나치 사령관의 사례를 소개했는데, 예술작품 향유 능력이 세상의 부조리 앞에서는 무기력한 거 아닌가.
“나치 장교는 예술 활동에서 즐거움을 느끼기는 하지만 그걸 통해 다른 사람을 배려하거나 공감하는 사회적 관계를 맺는 데는 실패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인간 활동을 작업과 행위, 즉 ‘포이에시스(poiesis)’와 ‘프락시스(praxis)’로 구분했다. 포이에시스는 장인적 활동과 관련 있다. 작업 결과 얼마나 탁월한 물건을 만들어냈는지 결과물을 중시한다. 프락시스는 공적 영역에서의 인간 활동을 뜻한다. 행위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데 관심이 크다.”
 
프락시스를 강조하는 것도 예술에 대한 하나의 입장에 불과한 것 아닌가.
“철학자 칸트는 무인도에 버려진 사람은 자신의 움막을 아름답게 꾸미지 않는다고 했다. 미적인 것은 사회에서만 관심거리, 미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사교성에 근거한다는 얘기다. 자발적인 미적 활동의 결과는 그래서 타인과의 소통, 공감으로 이어진다. 내 경우 어느 순간 스스로 예술의 노예가 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좋은 작품을 쓰는 게 너무 중요한 일이라서 아무 데도 안 나가고 쓰는 데 집중하는 시간을 늘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며 살았다. 내 삶이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이 예술 때문에 오히려 차단당한다는 느낌? 그런 식의 예속이 한 개인의 삶에서 과연 의미 있는 일인가, 그런 회의가 있었다.”
 
시를 쓰고 철학을 연구하다 문학상담 쪽으로 넘어온 것도 그런 생각에서였나.
“원래 인생 계획이 별로 없는 편이다.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스타일인데 여기 상담대에 계시던 대학 과 선배 한 분이 와서 강의 한번 해보라고 한 게 계기가 됐다. 상담과 학생들을 만나 보니 참 좋더라. 당시는 마침 내가 만인의 시인 되기, 그런 걸 한참 외치고 다닐 때였다.”
  
좋은 작품 쓰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기도
 
만인의 시인 되기라니.
“모든 사람을 시인으로 만들자, 이런 거였는데 문학상담이야말로 모든 사람을 시인으로 만드는 활동 아닌가.”
 
왜 그런 운동이 필요한가.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만 예술을 해야 하는 건 아니다. 예술에서 작품의 탁월성이 반드시 필요한 요소인가. 시를 쓰고 싶은데, 탁월한 작품이 안 나올까 봐 못 쓰겠다는 사람이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 작품이 꼭 탁월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얘기해준다.”
 
그러는 당신은 최고의 문학 출판사인 문학과지성사, 창비에서 시집을 냈다.
“모든 예술활동이 탁월성으로 흡수될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문학상담에서 느끼는 보람이 있다면.
“굉장히 폭넓은 문학 하는 즐거움을 누린다. 시를 처음 쓰는 사람들이니까 아무래도 표현들이 서툰데, 그런데도 자기 작품에 대해 설명할 때는 너무나 아름다운 문학적 표현들을 구사한다. 그걸 지켜보며 굉장한 미적인 즐거움을 느낀다.”
 
예술의 이상적인 미래상이 있다면.
“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르트가 프로페셔널 예술가보다 아마추어 예술가가 더 대접받는 사회가 되기를 열렬히 희망한다고 얘기한 적 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요즘 세상이 굉장히 전문가화 되어 있지 않나. 어떤 일이든 전문가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다. 그런 생각에 따라 사회 곳곳에 활동의 구분선들이 그어져 있는데 그런 특징이 소비사회를 촉진한다는 거다. 좋은 음악 연주가 있으면 그걸 감상하는 소비자가 있고, 좋은 시가 있으면 그걸 읽는 독자가 있고 그런 식으로 말이다. 모든 사람의 소비자화는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예술 생산자가 될 기회를 박탈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아마추어리즘이 자본주의 상품문화의 폐해를 완화하는 유력한 대안이라는 거다.”
 
시집 3권, 니체·칸트 철학 풀어쓴 책 출간
진은영의 출간 목록은 누구보다 풍성하다.『훔쳐가는 노래』『우리는 매일매일』 등 시집 3권, 철학 연구자답게 묵직한 책들을 여러 권 냈다.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은 박사학위를 손본 책. 『순수이성비판, 이성을 법정에 세우다』는 칸트 철학을 대중적으로 풀어쓴 책이다. 프랑스 미학 이론가 자크 랑시에르를 소개한 『문학의 아토포스』에서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예술의 전복적 가능성을 살폈다.
 
니체와 칸트는 너무나 유명하지만 정작 두 철학자의 업적에 대해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두 철학자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진은영의 답이다.
 
“니체 철학은 ‘너 자신이 되어라’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칸트 철학은 그렇게 얘기하기에는 정보 자체가 너무 많다. 인간 존재에 대한 근대인의 관심이 중세와는 어떻게 다른지에 관심이 있다면 꼭 공부해야 하는 철학자다.”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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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