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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지붕의 지상 최대 궁전서 ‘살아있는 신’을 만나다

아세안의 유산 ⑧ 브루나이 하리라야 축제
브루나이를 대표하는 사원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 돔 끝 첨탑이 금으로 돼 있다. 브루나이에선 이 사원(50m)보다 더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없다. [손민호 기자]

브루나이를 대표하는 사원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 돔 끝 첨탑이 금으로 돼 있다. 브루나이에선 이 사원(50m)보다 더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없다. [손민호 기자]

브루나이는 작은 나라다. 면적이 경기도의 절반 정도고, 인구는 40만 명이 겨우 넘는다. 그런데 이 나라의 왕은 세계적인 유명 인사다. 엄청난 부를 거머쥐고 막강한 권력을 휘둘러서다. 서양에는 부정적인 여론이 많다지만, 나라 안에서는 아니다. 브루나이 국민에게 하지 하사날 볼키아(73) 제29대 국왕은 살아있는 신이다. 왕이 곧 신이니, 궁전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다. 규모부터 세계 최대다. 1984년 10억 달러(약 1조원) 이상을 들여 지은 ‘이스타나 누룰 이만(Istana Nurul Iman)’은 기네스북이 인정한 지구에서 제일 큰 궁전이다. 전체 면적이 20만㎡에 이르며, 방만 1788개가 있다. 화장실도 255개나 된단다. 궁전의 모스크(이슬람 사원) 돔(둥근 지붕)은 황금으로 덮여 있다. 
   
한 달간 친구·친척 초대해 벌이는 잔치
 
하지 하사날 볼키아 브루나이 국왕. 표정 변화가 거의 없었다. [손민호 기자]

하지 하사날 볼키아 브루나이 국왕. 표정 변화가 거의 없었다. [손민호 기자]

궁전은 1년 내내 굳게 닫혀 있다. 당연하다. 신성한 공간이니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 오직 한 번의 예외가 있다. 이슬람 최고 명절 ‘하리라야(Hari Raya)’ 기간에 개방된다. 이슬람 금식월 ‘라마단(Ramadan)’이 끝나면 무슬림은 잔치를 벌인다. 집마다 친척과 친구를 초청해 음식을 대접한다. 한 달이나 이어지는 이 축제를 하리라야라 한다. 브루나이 왕가도 전통을 받들어 궁전을 열고 손님을 맞는다. 궁전이 열리는 사흘 동안 국민에게 음식을 먹이고 국왕을 비롯한 왕족이 한 줄로 서 인사를 한다. 올해는 6월 7∼9일 궁전을 개방했다.
 
지난 8일 국내 언론 최초로 브루나이 왕가의 하리라야를 취재했다. 왕실 사진작가와 나란히 국왕과 왕비를 촬영했다. 국왕을 비롯한 왕족 12명과 악수를 했고, 왕실이 차려준 음식도 먹었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취재 허가를 받는 데 두 달 정도 걸렸으며, 국왕을 알현하기 위해 이슬람 전통 복장을 갖춰 입었다. 스커트처럼 생긴 ‘신장(Sinjang)’도 비단 바지 위에 덧입었다.
 
8일 오전 8시 30분. 궁전 안팎은 이미 인파로 가득했다. 긴 줄이 하염없이 이어졌다. 극히 제한된 구역만 개방했기 때문에 곳곳에서 병목현상이 일어났다. 줄은 언제나 두 개였다. 남자 줄과 여자 줄. 이슬람은 밥 먹는 줄에서도 남녀를 갈랐다. 눈치 없는 남자 외국인이 여자 동행과 같이 있으면, 득달같이 달려온 경호원이 남녀를 떼어놨다.
 
손님을 맞는 브루나이 왕비(가운데 보라색 의상). 왕비 옆의 키 큰 여성이 맏며느리다. [손민호 기자]

손님을 맞는 브루나이 왕비(가운데 보라색 의상). 왕비 옆의 키 큰 여성이 맏며느리다. [손민호 기자]

궁전 하리라야를 체험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왕실 음식 체험. 왕족과 인사는 하지 않고 밥만 먹고 돌아갈 수 있다. 왕족을 만나지 않으므로 비교적 복장이 자유로웠다. 긴 팔 셔츠와 긴 바지면 입장이 가능했다. 관광객 대부분이 밥만 먹고 갔다. 그래도 1시간은 족히 줄을 서야 했다.
 
하리라야를 제대로 체험하려면 국왕을 만나야 한다. 대신 시간이 오래 걸린다. 긴 줄 기다려 음식을 먹은 다음, 다시 긴 줄을 서 국왕 일가와 인사를 해야 한다. 물론 복장도 전통 방식을 따라야 한다. 한국인 기자는 줄을 서지 않고 대체로 자유로이 다녔다. 대신 왕실 직원의 지적을 받고 저고리 단추를 다시 잠갔다.
 
브루나이 왕가는 하리라야 기간에 12만 인분의 음식을 준비한다. [손민호 기자]

브루나이 왕가는 하리라야 기간에 12만 인분의 음식을 준비한다. [손민호 기자]

국왕은 하루 4시간 악수를 한다. 오전 10∼12시, 오후 2∼4시 궁전 안쪽 귀빈실에 서서 찾아오는 국민과 악수를 한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손님 모두를 상대하진 못한다. 공보처 직원 페기란에 따르면 오전에 국왕을 알현하려면 궁전 문이 열리자마자 입장해야 한다. 궁전은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개방된다. 귀빈실에서 1시간을 지켜봤는데, 국왕을 비롯한 남자 왕족 12명은 제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악수만 했다.
 
음식은 궁전 연회장에 차려졌다. 동시에 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초대형 홀이다. 식탁과 의자를 갖다 놓았는데, 의자를 세 보니 얼추 2000개는 넘었다. 음식은 모두 15가지가 나왔다. 물론 할랄(Halal) 음식이다. 돼지고기는 없고, 소고기·양고기·닭고기가 주재료였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접시 한가득 음식을 받았고, 깨끗이 비웠다.
  
왕비 등 여성 왕족, 옆방서 따로 맞아
 
브루나이 공보처 직원 페기란(왼쪽)과 본지 취재기자. 이슬람 전통 의복을 갖춰야 국왕 앞에 설 수 있었다. [손민호 기자]

브루나이 공보처 직원 페기란(왼쪽)과 본지 취재기자. 이슬람 전통 의복을 갖춰야 국왕 앞에 설 수 있었다. [손민호 기자]

음식을 누가 만드는지 궁금했다. 왕실에선 비밀에 부쳤는데, 의외의 제보를 받았다. 브루나이에서 식품 유통업을 하는 한국인 사이먼 최가 “궁전 안에 하얏트 호텔 식음 부서가 상주하고 있으며 하얏트 호텔 측에서 궁전의 모든 연회를 책임진다”고 귀띔했다. 하리라야는 궁전에서 열리는 연회 중 가장 큰 행사다. 해마다 12만 인분의 음식을 준비한다고 한다. 브루나이 공보처가 10일 보내온 통계에 따르면 올해는 사흘 동안 약 11만 명이 궁전에 입장했다.
 
국왕은 사진보다 왜소했다. 테니스·폴로·사이클 등에 능한 만능 스포츠맨이라고 들었는데, 얼굴에서 칠순 나이가 읽혔다. 행동에는 거침이 없었다. 성큼성큼 큰 걸음을 걸었다. 국왕 옆으로 첫째 왕자가 섰고, 다음으로 둘째·넷째·다섯째 왕자가 섰다. 셋째 왕자는 외국에 있다고 했다. 왕자 다음으로 국왕의 형제들, 이어 사위들이 섰다. 국왕에게는 왕자 5명과 공주 7명이 있다.
 
왕비와 여성 왕족은 옆방에서 여성 손님을 따로 맞았다. 궁전에 들어와서 나갈 때까지 남녀의 줄은 한 번도 섞이지 않았다. 공보처 직원의 안내에 따라 왕비 접견실도 들어갔다. 눈이 부실 정도로 방이 화려했다. 온갖 모양의 꽃무늬 장식이 방을 환히 밝혔다. 왕비 옆에 선 키 큰 젊은 여성이 맏며느리라고 했다. 이 방에선 오래 머무를 수 없었다.
 
인사를 마치고 나오면 선물을 줬다. 브루나이에선 국왕이 세뱃돈을 준다는 소문을 들은 적 있어 은근히 기대했었다. 그러나 궁전에서 받은 상자에는 카스텔라가 들어 있었다. 주브루나이 대사관 이상훈 영사가 “세뱃돈은 잘못 알려진 것”이라며 “국왕이 이따금 소외 계층에게 현금을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왕실 카스텔라는 부드러웠다. 절대 지존과 악수할 때 느꼈던 촉감과 비슷했다.
 
브루나이지도

브루나이지도

여행정보
브루나이는 엄격한 무슬림 국가다. 나라 안에 술·담배를 파는 곳이 없다. 술은 세관에 신고하면 1인 양주 2병과 맥주 12캔까지 갖고 들어갈 수 있다. 다만 공개된 장소에서 마실 수 없다. 담배도 세관에 신고해야 하며, 건물 주변에서 피울 수 없다. 브루나이달러는 싱가포르달러와 1대 1로 통용된다. 1브루나이달러=약 866원. 로열 브루나이 항공이 주 4회 인천~브루나이 직항을 운행한다. 비행시간 약 5시간 30분. 한국보다 1시간 늦다.  

 
[취재 협조=한·아세안센터]
 
반다르스르브가완(브루나이)=손민호 기자 ploveson@joon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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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