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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해야 할 일, 두려움·핑계 없이 하는 게 진짜 도전이다

[스포츠 오디세이] 강동석·윤승철 ‘모험담’ 배틀 
지난달 27일 서울 인사동 경인미술관 내 찻집에서 마주앉은 강동석(오른쪽)씨와 윤승철씨. 명예해군 1호인 강씨는 해군 정복을 입고 나왔다. 윤씨도 해병대 출신이다. [신인섭 기자]

지난달 27일 서울 인사동 경인미술관 내 찻집에서 마주앉은 강동석(오른쪽)씨와 윤승철씨. 명예해군 1호인 강씨는 해군 정복을 입고 나왔다. 윤씨도 해병대 출신이다. [신인섭 기자]

강동석(50)과 윤승철(30). 스무 살 터울인 두 남자는 처음 만났는데도 오래 같이 산 형제처럼 다정했다. ‘모험’과 ‘도전’이라는 DNA를 공유하고 있기에 형제라고 불러도 크게 잘못된 건 아니지 싶다. 강씨는 대한민국 최초로 1인용 요트를 타고 세계일주를 한 모험가이자 회계사다. 세계 4대 극지 마라톤을 완주한 윤씨는 무인도 탐험가 겸 작가다. 
 
강씨는 1994년 1월 14일 길이 30피트(약 9m)짜리 요트 ‘선구자 2호’를 타고 LA항을 출발해 3년 반 뒤인 1997년 6월 8일 부산항에 도착했다. 지구 한 바퀴 반을 도는 단독 요트 세계일주였다. 폭풍과 폭우에 맞섰고, 무풍지대에서 일주일간 옴짝달싹 못한 적도 있다. 사모아에서 부친의 부음을 접하고 몇 달 동안 주저앉아 술독에 빠져 지내기도 했다. 섬으로 찾아온 교민들에게서 성금 1만 달러를 받은 뒤 ‘흑인 폭동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교민들께 희망을 주겠다’는 목표를 되새기고 다시 바다로 나갔다.
 
미국연방은행인 Fed 감사팀에서 일하는 강씨는 매년 한 차례 조국을 찾아 자신의 얘기를 들려준다. 강씨의 스토리가 올해 3월 16일자 중앙SUNDAY에 보도된 뒤 “강연을 듣고 싶다”는 요청이 쇄도했다. 5월 말 귀국한 강씨는 보름간 머물면서 학교·군부대·기업체·교회 등에서 16차례 특강을 했다.
 
무인도선 바닷물 증류시킨 물 마셔
 
사막 마라톤에 참가한 윤승철. [중앙포토]

사막 마라톤에 참가한 윤승철. [중앙포토]

윤씨의 스토리도 2017년 1월 15일자 스포츠 오디세이에 “무인도보다 무서운 이 땅에서 살려면, 나만의 섬이 있어야죠”라는 제목으로 소개됐다. 그는 23세에 4대 극지 마라톤(사하라·고비·아타카마·남극)을 완주해 세계 최연소 극지 마라톤 그랜드슬램 기록을 갖고 있다.
 
귀국한 다음날 강씨는 윤씨를 만났다. 인사동길에서 사진 촬영을 하려 했는데 비가 오는 바람에 경인미술관 내 찻집으로 옮겼다.
 
두 사람의 근황부터 물었다. 강씨는 “Fed에서 14년째 일하면서 탐험 쪽은 접었어요. 에베레스트는 네팔 쪽으로는 가본 적이 없어서 한번 가 보고 싶기는 하죠. 요트요? 혼자 너무 오래 타서 지긋지긋하지만 여러 명 같이 하면 어디로든 또 가고 싶죠. ‘강동석과 함께 하는 요트교실’ 같은 걸 열어서 제 노하우를 전수해 주고 싶기도 하고요”라고 말했다.
 
윤씨는 “저는 미크로네시아와 팔라완 쪽 무인도를 다녀왔고요. 섬 봉사단체를 만들어 30명 정도가 매달 셋째 주 토-일요일 섬에 갑니다. 쓰레기 수거와 청소, 어르신들 진료하고 밭일도 도와 드리죠. 다음 학기엔 부산 해양대 대학원에 진학해 해양문화콘텐트를 전공할 예정입니다”고 말했다.
 
윤씨는 요트를 타기 위해 어떤 준비를 했는지, 면허증이 필요한지 등 궁금한 걸 물었다. 강씨는 “항해법과 기상학 등을 대학에서 수강했고 따로 공부도 했죠. 가장 중요한 건 경험입니다. 고기압 저기압 전선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그에 따라 기상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경험을 통해 체득해야죠. 미국에선 영업만 하지 않는다면 요트 면허증 같은 건 필요 없어요”라고 설명해줬다.
 
강씨는 윤씨에게 6박7일간 사막 마라톤을 하면 잠은 어디서 자는지 물었다. 윤씨는 “매일 도착해야 하는 포인트가 있는데 거기에 주최 측에서 텐트를 준비합니다. 일주일치 식량과 장비는 배낭에 넣고 뛰죠. 물을 자주 마시니까 물 무게도 만만찮아요”라고 알려줬다.
 
물 얘기가 나오자 물 만난 고기처럼 강씨의 눈빛이 반짝였다. “LA에서 하와이 갈 때 폭풍을 만났어요. 바람이 시속 100㎞는 되고 정말 산더미 같은 파도가 덮치는데 배가 산산조각 부서지는 줄 알았어요. 돛이 90도 이상 기울면 돛대가 부러지고 요트는 침몰할 수 있어요. 거의 90도까지 기울었다가 다시 올라오기를 반복하는데 사람 미치겠더라고요. ‘하나님 제발 살려주십시오. 정말 무섭습니다. 이번 한 번만 살려주시면 정말 열심히 살겠습니다’하고 싹싹 빌었죠.”
 
윤씨도 물 얘기에 동참했다. “사막에선 물을 벌컥벌컥 못 마십니다. 팩에 담은 물을 호스로 빨아서 혀만 적시죠. 무인도에서는 바닷물을 증류합니다. 나뭇가지를 모아 불 피우고 바닷물 담은 냄비에 빈 컵을 넣습니다. 냄비 뚜껑을 거꾸로 닫아 놓으면 끓은 물이 증발하다가 컵 안으로 떨어집니다. 그런데 시간과 수고에 비해 증류되는 물이 너무 적어요. 한번은 너무 목이 말라 바닷물을 조금 마셨더니 괜찮아요. 몇 번 더 마셨는데 나중에 극심한 통증이 오면서 죽을 것 같아요. 섬에 있는 코코넛 나무에 전에는 반도 못 올라갔는데 그때는 미친 듯이 올라가서 열매를 따 내려왔죠.”
 
‘무용담 배틀’이 점입가경이다. 강씨가 무풍지대에 갇힌 얘기로 또 선공을 했다. “적도 돌파할 때 무풍지대에 들어갑니다. 대서양에서 일주일 정도 갇혀 있었는데 바람이 정말 한 점도 안 불고 배는 꼼짝도 안 해요. 사우나에서 일주일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하루종일 얼음·팥빙수·아이스크림·부라보콘 생각만 했어요.”
 
강씨가 사람이 아무도 안 사는 진짜 무인도에는 가본 적이 없다고 하자 윤씨가 빙긋이 웃었다. “저는 한 달에 한 번은 가죠. 낚시를 그리 좋아하진 않지만 생존을 위해 물고기를 잡아야 합니다. 그냥 물에 잠수해 작살로 잡는 게 낚시보다 더 빠르고 스릴 있어요. 이 떨림이 낚시와는 비교가 안 돼죠. 좀 잔인하긴 하지만….”
 
물 무섭다고 수영 안 배울 건가
 
요트 세계일주 당시 강동석. [중앙포토]

요트 세계일주 당시 강동석. [중앙포토]

두 사람은 ‘모험과 도전이 실종된 시대’를 안타까워했다. 윤씨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사람들이 ‘넌 사막도 갔고 무인도도 갔으니 다음 도전은 뭐냐’고 물어요. 저도 그 동안은 뭔가 그럴싸한 걸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정말 해 보고 싶은 걸 하는 게 도전’이라고 정리했어요. 저는 진득하게 책상 앞에 앉아 공부하는 게 제일 힘들어요. 근데 대학원 시험을 위해 그걸 해야 했어요. 도전은 엄청난 게 아니에요. 정말 내게 필요한 일을 두려움이나 핑계 없이 해내는 게 진정한 도전이죠.”
 
강씨가 맞장구를 쳤다. “요즘 젊은이들 일자리 구하기 힘들잖아요. 저도 순탄한 길 걸어서 회계사 되고 Fed 감사관 된 게 아니에요. 회계사 되려고 목숨 내걸고 세계일주 한 것도 아니고요. 바다 한가운데서 돌고래를 만났을 때 느낌이 어떨까, 히말라야에 산소 없이 올라갈 수 있을까, 북극은 어떤 곳일까 이런 호기심이 모험에 나서게 한 거고, 회사에선 그걸 높게 쳐 주더라고요.”
 
강씨가 말을 이었다. “제가 겪은 고난, 그 속에서 배운 경험과 소통, 이런 게 사회와 직장 생활하는 데 엄청난 플러스가 된다는 걸 나중에 깨달았어요. 그래서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찾아 목표를 세우고 최선을 다해 도전하라.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라. 젊음이 좋은 건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하는 거죠.”
 
두 사람은 ‘도전’과 ‘안전’의 조화에 대해서도 생각을 나눴다. 안전은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가치다. 그러나 세상에 100% 안전한 건 없다. 도전과 무모함의 차이를 알고, 위험과 사고의 확률을 낮추는 게 중요하다. 윤씨가 말했다. “북유럽 놀이터에는 망치·못 같은 공구들이 있어요. 아이들이 안전하게 사용하도록 선생님이 충분히 설명해 줍니다. 그리고는 아이들에게 직접 해 보라고 하죠. 해 보면서 이렇게 사용하고, 이런 걸 조심해야 되는구나 느끼게 되는 겁니다. 물이 무섭긴 하지만 물이 무섭다고 수영을 안 배울 수는 없잖아요.”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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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