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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 칼럼] 호기심을 거세하는 교육에 희망은 없다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

인공지능 연구가 새로운 봄을 맞이하면서, 신경과학 분야에서는 호기심이 중요한 연구 주제로 떠오르고 있다. 생명과학분야 논문검색엔진 펍메드(PUBMED)에서 ‘호기심’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해보면, 지난 100년간 어림잡아 2만여 편의 ‘호기심’ 관련 논문이 출간된 것을 알 수 있다. 그중 2000여 편이 최근 2년간 출간됐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공지능과 구별되는 인간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호기심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에게 호기심을 넣어줄 수 있을까’ 같은 질문에 답을 하고 싶어서다. 
 

인간은 자극-반응 체계가 아니라
질문-대답 체계로 이 세상을 이해
호기심은 세상 이해하는 학습 기폭제
우리 교육은 호기심 없애는 암기 중심
스스로 질문하고 답 탐색하는 게 교육
인간적 삶 위해 주입식 교육 제고 절실

인공지능이 탑재된 페퍼나 휴보 같은 휴머노이드 로봇을 머릿속으로 상상해 보자. 그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행동할지는 쉽게 짐작이 간다. 사람이 뭔가를 물어보면 대답해주고, 발로 차려 하면 피하고, 버튼을 누르면 정보를 제공한다. 이처럼 인공지능 시스템은 자극에 반응하도록 디자인돼 있다.
 
사람은 어떤가? 어디를 가든 우리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낯선 장소라면 둘러보고, 물건이 있다면 만져보고 살펴본다. 누군가를 만나면 그에 관해 물어보고 서로를 이해하려 애쓴다. 자극이 오길 기다리거나, 입력에 대해 반응하도록만 만들어져 있지 않다. 이건 뭐지? 여긴 어디지? 이렇게 누르면 어떻게 되지? 너는 누구니? 같은 질문들을 쉴 새 없이 쏟아낸다. 스스로 자극을 찾아 나선다.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그 질문에 대답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한다. 다시 말해, ‘자극-반응 체계’로 작동하지 않고, ‘질문-대답 체계’로 살아간다.
 
우리는 왜 끊임없이 질문하는가? 그것이 왜 궁금한가? 곰곰이 생각해보면, 질문에 뚜렷한 이유나 목적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저 궁금할 뿐이다. 우리는 그것을 ‘호기심’이라 부른다. 더 흥미로운 건, 그 질문에 답을 알아내면 기쁘고 즐겁다. 해답 자체가 보상이 된다. 즉, 우리 뇌는 스스로 답을 던지고 그 질문에 답을 찾으면 기쁘도록 디자인돼 있다. 호기심의 보상은 해답이 주는 즐거움이지만, 이를 통해 우리는 ‘세상에 대한 이해’를 얻게 된다. 끊임없이 세상에 질문을 던지고 거기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 세상을 더 많이 이해한다. 그러면 다음 상황을 예측할 수도 있고, 새로운 상황이 벌어졌을 때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다.  
 
캘리포니아주립대 메티아스 그루버 박사와 그 연구팀은 ‘스스로의 호기심으로 학습을 하면 훨씬 더 오래 기억에 머문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호기심 어린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은 그에게 큰 기쁨을 주며, 보상 중추인 측좌핵의 도파민 시스템을 자극한다. 분비된 도파민은 기억의 중추인 해마에 더 오래 저장될 수 있도록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무엇이 지금의 인공지능과 인간을 구별 짓는가? 다양한 기준이 가능하지만, 그중 하나는 호기심이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무척 궁금해하는 존재이며, 그것을 이해하는 것에 큰 기쁨을 느끼는 생명체이며, 그것이 우리는 세상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는 성숙한 어른으로 이끈다.
 
무릇 공부란 무엇인가? 우리가 세상에 대해 가지고 있는 호기심을 해결해가는 과정이다. 우리는 평생 학습하는 존재이지만, 어른이 되기 전에 충분한 학습과 공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어린이, 청소년들은 공부를 ‘내가 궁금한 걸 스스로 해결하는 과정’이 아니라, 세상이 머릿속에 넣으라는 지식을 입력하는 과정으로 경험한다. 인간인 우리 아이들을 인공지능처럼 대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교실에는 질문이 없다. 그저 이해가 안 될 때만, 아니 선생님이 쏟아내는 지식을 제대로 입력하기 어려울 때만 확인 차 물어본다. 학생들이 스스로 만든 질문에 스스로 대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것이 진짜 공부인데 말이다.
 
학교는 내가 찾은 답에는 관심이 없다. 이미 입력해야 할 정답이 있기 때문이다. 내 친구의 생각을 내가 관심 가질 필요도 없다. 그건 시험에 안 나오니까. 똑같은 교과서의 지식을 머릿속에 실수 없이 입력하고 주어진 시간 내에 정확히 토해내는 시험을 공정하다고 믿는 세상에서, 청소년들은 나만의 질문을 던질 기회도, 그것을 흥미롭게 탐색할 시간도 박탈당한다. “제2차 세계대전을 막을 수 있었던 역사적 순간은 언제였을까?” “인간이 한순간 사라진다면, 500년 후 지구 표면은 어떻게 변할까?”에 답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경험해야 할 고민과 문헌 조사, 과학적 분석과 기발한 상상력은 과연 대한민국 청소년들에게는 사치일까?
 
“인공지능 시대,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교육해야 할까요?” 이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가치는 호기심 어린 학습을 통해 학생들이 스스로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를 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것이 평가의 공정성, 교사의 재교육, 교육예산 부족보다도 더 중요한 가치다. 그래야 학생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인간답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했던 아인슈타인이 세상에 던진 메시지를 우리는 아직도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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