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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곳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기생충'에도 보이나요?

기자
전새벽 사진 전새벽
[더,오래]전새벽의 시집읽기(36)
왼쪽부터 영화 '기생충' '어느 가족'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포스터. 세 영화에는 큰 공통점이 있다. 바로 주인공이 '비주류 인생'이라는 설정이다. [사진 네이버 영화]

왼쪽부터 영화 '기생충' '어느 가족'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포스터. 세 영화에는 큰 공통점이 있다. 바로 주인공이 '비주류 인생'이라는 설정이다. [사진 네이버 영화]

 
영화 '기생충'의 황금종려상 수상 소식을 듣고 역대 수상작 목록을 검색해 보니 본 영화가 많이 없어 아쉽다. 수상작이라고 해서 꼭 재미가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교양 차원에서 조금씩 챙겨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와중에 최근 수상작 몇 개는 관람했던 것이었다. 제목을 보며 어떤 영화였더라 하고 떠올려 보니, 흥미롭게도 '기생충'을 비롯한 최근 황금종려상 수상작에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었다.
 
2016년 수상작인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이런 내용이다. 목수로 평생을 살다가 배우자와 사별한 60대 남성 다니엘. 그는 심장병으로 인해 의사로부터 ‘일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는다. 그러나 복지센터에서는 그에게 ‘충분히 일할 수 있다’며 실업수당 지급을 거절한다. 마음이 답답한 건 둘째 치고 당장 돈이 필요한 다니엘은 이의를 제기해보려고 하지만 컴맹인 그에게는 전자민원조차 너무 힘든 일이다.
 
2018년 수상작도 살펴보자. 국내에도 많은 팬을 보유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은 상점에서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훔치는 부자(父子)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런 그들 앞에 한 소녀가 등장한다. 자초지종은 모르겠지만, 소녀에게는 당장 따뜻한 이불과 먹거리가 필요해 보이고, 오사무는 소녀를 집으로 데리고 간다. 집은 할머니, 이모, 엄마, 아들로 북적거리고 그들은 학대당한 소녀를 감싸 안는다.
 
'어느 가족'의 한 장면. 오사무 가족은 갈 곳도, 먹을 것도 없는 학대 받은 어린 소녀를 만나 집에 데려간다. 부유한 집안은 아니지만 식구들은 따뜻하다. 그들은 소녀를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사진 티캐스트]

'어느 가족'의 한 장면. 오사무 가족은 갈 곳도, 먹을 것도 없는 학대 받은 어린 소녀를 만나 집에 데려간다. 부유한 집안은 아니지만 식구들은 따뜻하다. 그들은 소녀를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사진 티캐스트]

 
이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얘기도 해본다(아직 보지 않으신 분들은 영화 관람 후에 읽어주시기를). 4인 모두 백수인 기택네는 인터넷 설치할 돈이 없어 좁은 집에서 와이파이 잡히는 곳을 찾아 헤매는 한편 피자 박스를 접어 푼돈을 번다.
 
어느 날 아들 기우에게 돈 벌 기회가 찾아온다. 친구가 유학을 가면서 하던 과외를 물려주고 간 것. 게다가 부잣집이란다. 기우는 사기성 짙은 말솜씨로 부잣집 사모님과 학생의 마음을 동시에 사로잡고, 그 김에 동생까지 그 집에 과외선생님으로 취업을 시킨다.
 
이 작품들의 공통점이 보이시는지? 바로 주인공들이 하나같이 비주류 인생이라는 설정이다. 그들은 약하고 무능하며 심지어 위험하기까지 하다. 그런데도 영화는 관객을 이들의 편으로 만든다. 그들에게 온정이 있기 때문이다.
 
'기생충'의 한 장면. 반지하에 사는 기택(송강호)네 식구들은 와이파이 기기를 살 돈도 없다. 비가 오면 집에 물이 차는 반지하에서 피자 박스를 접으며 겨우 살아간다. 그러던 중, 장남 기우(맨 왼쪽)를 시작으로 박 사장네 부자 동네에 다가간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기생충'의 한 장면. 반지하에 사는 기택(송강호)네 식구들은 와이파이 기기를 살 돈도 없다. 비가 오면 집에 물이 차는 반지하에서 피자 박스를 접으며 겨우 살아간다. 그러던 중, 장남 기우(맨 왼쪽)를 시작으로 박 사장네 부자 동네에 다가간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블레이크'의 다니엘은 싱글맘인 케이티와 친구가 된다. 각자의 처지는 어렵지만, 서로의 사정을 살펴주는 이들은 서로에게 큰 힘이 된다. 힘이 되지 못하는 것은 오히려 사회의 시스템이다. 사회안전망으로서 기능해야 할 실업지원센터의 그물망은 구멍이 너무 커서 다니엘 같은 인간들이 쑥쑥 빠져나간다.
 
다니엘은 끝내 심장병으로 사망하고, 케이티는 장례식장에서 그가 남기고 간 글을 한 편 읽는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라는 내용을 담은 그 글은 다니엘이 수당 지급 심사에서 낭독하려고 했던 성명서였다.
 
'가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오사무 가족의 구성원은 모두 절도, 유괴, 갈취, 매춘 등의 불법행위를 죄의식 없이 행하는 바닥인생들이다. 도무지 좋아할 수가 없는 인간들이다. 하지만 영화의 반전이 공개되면 관객은 비로소 이들이 모여서 하던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끝내 그들에게 마음을 내어주고 만다. 한편 영화는 결말을 통해 우리가 옳다고 믿는 오래된 관념 전반에 물음을 던진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한 장면. 다니엘(오른쪽)은 케이티(왼쪽)와 친구가 된다. 사회적 지원을 받아야만 하는 처지에 놓인 두 사람은 서로 공감과 위로가 된다. 하지만 허술한 지원망 탓에 결국 다니엘은 사망하고 만다. [사진 다음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한 장면. 다니엘(오른쪽)은 케이티(왼쪽)와 친구가 된다. 사회적 지원을 받아야만 하는 처지에 놓인 두 사람은 서로 공감과 위로가 된다. 하지만 허술한 지원망 탓에 결국 다니엘은 사망하고 만다. [사진 다음 영화]

 
'기생충'으로 다시 돌아가 본다. 기택 가족을 반지하로 몰아넣은 것은 비단 개개인의 무능력함뿐만이 아니다. 대박 수익을 약속하며 멋대로 가맹주들을 끌어모았던 프랜차이즈의 몰락, 그 책임은 아무도 지지 않았다. 영화 속에서 끝내 숨을 거두는 ‘기정’의 모습처럼, 이런 사회 안에서 가난한 자들의 삶이 비극으로 끝나는 것은 이미 기정사실인지도 모른다.
 
최근 황금종려상 수상작들의 공통분모는 바로 그 주제의식에 있다. 낙오자를 만들고 고아를 만들고 기생충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에 대한 문제 제기라는 주제의식이다. 그나저나 영화 얘기하다가 본업을 잊을뻔했다. 이쯤에서 이와 같은 주제를 다룬 시를 한 편 소개해야겠다.
 
오늘은 내 생일인데 생일 폭죽처럼 머리통이 터지고 갈비뼈가 부러지고 돈, 돈, 돈 우린 돈 게 분명해
(…)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울리는 알람이 있다고 믿는다 했다 꼭 사랑이 아니라도 울리는 알람이 있다는 말은 생략, 그건 좀 슬픈 이야기니까
(…)
우리는 사랑을 향해 동행할 수도 있었는데 늙은 저녁 서로의 외롭고 긴 외출을 기다려줄 수도 있었는데 가난한 내가 무작정의 우리로 확대될 수도 있었는데 대략 그 정도의 빚을 지고 싶었을 뿐인데
-안현미, 〈축 생일〉 부분. 시집 『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창비, 2014)』에 수록
 
‘돈, 돈, 돈 우린 돈 게 분명해’라는 시구에서 시인은 자본주의 속에서 몰락하는 인간성을 개탄한다. 소소한 행복을 기대했던 생일에조차 즐거움이 허락되지 않는 건, 도처에 돈 문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돈 없이는 행복할 수 없는 시스템 안에서 시인이 꿈꾸던 것은 무엇일까.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세 작품은 체제와 관념으로 발생하는 비극에 대해 날카로운 메시지를 전한다. 시인 안현미도 그러한 역할을 했다. 시인은 돈 없이 살 수 없는 시스템에 대해 한 마디 던졌다. 사진은 '기생충'의 한 장면. [사진 네이버 영화]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세 작품은 체제와 관념으로 발생하는 비극에 대해 날카로운 메시지를 전한다. 시인 안현미도 그러한 역할을 했다. 시인은 돈 없이 살 수 없는 시스템에 대해 한 마디 던졌다. 사진은 '기생충'의 한 장면. [사진 네이버 영화]

 
‘우리는 사랑을 향해 동행할 수도 있었는데’라는 시구에 단서가 있다. 다니엘이 케이티와 나누기 시작했던 것, 오사무 일행이 하고 있던 것, 기택 가족이 꿈꾸었던 것들이 전부 이 한 줄에 녹아 있다. 시집의 발문(跋文)을 쓴 한창훈 소설가는 안현미를 가리켜 “삼순이과(科) 여인네”라고 부른다. 그는 이것을 일 잘하는 여인이라는 뜻으로 썼다.
 
일은 타고난 머리가 좋아서 잘할 수도 있지만, 생존을 위해 억척스럽게 살아온 시간이 길기 때문에 잘할 수도 있다. 들은 바에 따르면 안현미는 후자에 가깝다. 그녀는 그 지난한 생활을 이어가는 데서 만족하지 않고 시까지 썼다. 시를 배우기 위해 어린 애를 업고 강의실을 찾아다녔다. 이러한 시 쓰기의 동기는 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이냐고 묻고 싶다.
 
아마 그녀는 알았을 거다. 자신이 체제와 관념에서 기인한 비극에 대해 한마디 해야 할 운명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만 치면 그녀는 봉준호와 같은 운명이다. 한데 영화는 주류산업인지 오래고 시는 여태 변방에 놓여 있어 나는 시인을 응원하기로 한다. 낮은 곳에 시선을 둘 줄 아는 사람이 되기로. 최근 황금종려상 수상작들을 보며 결심한 바 있기 때문이다.
 
전새벽 회사원·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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