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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의 시선] 성역과 우상이 깨지는 건 시간 문제

박재현 논설위원

박재현 논설위원

중국 진나라 법치주의 근간을 만든 것으로 평가받는 상앙의 변법(變法) 운동은 기득권을 깨는 것에서 시작했다. 급진적 개혁론자인 그는 문재인 정부의 표현을 빌리면 적폐청산을 진두지휘한 인물이다. 우리 정부의 직제로 치면 청와대 민정수석이나 검찰총장의 직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상앙은 “국가개조를 위해선 예외가 없는 법치가 필요하다”며 성역과 우상(偶像)을 하나하나 깨기 시작했다. 정치적 2인자였던 감룡은 물론 군주였던 진효공의 가족에 대해서도 법의 잣대를 들이댔다. 하지만 “왕과 국가의 권위를 해치려는 불순한 의도가 있었다”는 역공을 받고 그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나는 오늘 죽어 영원히 살지만, 당신들은 오늘을 살아 영원히 죽는다”는 말을 남긴 채….
 
2300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의 우상 깨기는 어떨까. 전직 대통령 두 명이 비리 혐의로 처벌을 받고, 직전 대법원장이 법정에 선 것을 보면 성역은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특히 사법부의 경우는 그 어떤 정부도 할 수 없었던 불가능에 가까웠던 수사를 완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법원의 입장에선 창설 70주년 만에 처음으로 경험하는 치욕이다. 대법원장 사무실에 음식물 냄새가 배어 나올 정도로 혼밥을 먹으며, 외부와의 접촉을 철저히 차단해 왔던 선배 대법원장들의 수도승 생활과 같았던 노력은 물거품이 됐다. ‘원장님’이 아닌 ‘대법원장님’으로 불러야 했던 사법부 수장을 평범한 시민의 자리로 되돌린 건 우상의 소멸이란 측면에선 또 다른 평가가 가능하다.
 
하지만 한쪽을 누르면 다른 한쪽이 튀어나오는 게 자연의 이치인가. 또 다른 성역과 우상들이 슬금슬금 태동하는 것 같아 불길하기 짝이 없다.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국제공항 입구에 천막을 치고, 기업체와 시민을 볼모로 파업을 일삼는 노동단체들의 모습엔 또 다른 특권이 느껴진다. 시청과 각종 관공서는 예사로 들어가 막무가내식으로 농성하고 검찰과 법원까지 점령하는 이들의 모습에 법치는 한낱 구호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낀다. 이러고도 사회개혁과 역사발전의 원동력을 자처할 수 있을까. 자본과 권력의 탄압이란 철 지난 구호를 언제까지 들어야 하나.
 
대통령과 가족에 대한 비판은 자유롭지만 대가를 감수해야 한다. 진보 진영과 이 정부를 지지하는 일부 언론의 공격은 사상의 자유로운 시장이라기보다는 사상의 통제를 강요하고 있다. 문 대통령 딸의 해외이주와 관련한 자유한국당의 진상조사단에 대한 비난은 위험 수위를 오르내리고 있다. 야당의 주장처럼 태국으로 나가게 된 과정에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건지, 아니면 “사실을 알면 음모론을 주장한 사람들이 창피해질 것”인지, 국민은 답답할 뿐이다. 대통령의 가족에 대한 언론의 비판을 아직도 국가 원수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건 아닌지도 궁금하다.
 
과거사진상조사단에 대한 기자회견을 자청하면서 일절 질문을 받지 않겠다고 해 나 홀로 기자회견을 감행한 법무부 장관의 태도엔 독선과 아집이 숨어 있다. 소통과 참여를 주장해온 이 정부의 촛불정신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다. 성역이 없어졌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은둔과 자제를 약속하며 해외로 나갔던 대통령 측근이 국무총리와 국회의장보다 더 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듯한 모습은 또 하나의 절망감을 안겨주고 있다.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에 자신의 사견을 아무렇게나 얘기하고, 선거법 위반 논란을 초래하는 행보도 어떤 비판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가. 정의를 독점하는 듯한 언행이 결국은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됐던 과거의 사례를 너무 쉽게 망각한 것 같아 안타깝다.
 
현 정부 출범과 함께 국정원 기조실장을 지냈던 신현수 변호사가 최근 귀국한 것이 법조계 인사들 사이에선 한때 화젯거리가 됐다. 국정원 살림을 책임지다 지난해 8월 사표를 내고 미국 로스쿨에서 수학 중이던 그가 방학을 맞아 잠시 들어오자 차기 민정수석 내정설이 떠돌았던 것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조국 수석을 비롯한 현 청와대 참모진에 대한 민심을 보여준다.
 
어느 정부나 위기를 맞는다. 그 위기는 대통령 가족과 측근들에서 비롯될 때가 많았다. 위기에 대처하는 방법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하게 모든 것을 털어놓는 것이다. 끝까지 놓을 수 없다는 식으로 마지막 끈을 부여잡고 있으면 위기 탈출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동안 우리는 수많은 권력자들이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대중들을 속이려다 침몰한 사례를 목격해 왔다. 성역과 우상이 깨지는 것은 시간의 문제였다. “모든 걸 놓았을 때 홀연히 행복이 찾아왔다”는 한 선사의 말이 새삼 떠오른다.
 
박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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