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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신기록 쏘고도 은메달···진종오 가슴에 한으로 남다


'사격의 신' 진종오가 사담기를 찾았다.

진종오는 사격 종목 최초로 개인 종목에서 올림픽 3연패를 달성한 세계적인 사격선수다. 올림픽에서만 총 6개의 메달을 목에 건 그는 양궁의 김수녕과 함께 역대 한국 선수 중 올림픽 최다 메달 보유자다.

진종오는 고교 시절 본격적인 사격을 시작해 지금까지 최정상의 자리를 꾸준히 지켜 오고 있다. 하지만 그에게도 어려움은 있었다. 비교적 늦은 나이게 사격을 시작한 데다 숱한 부상으로 선수 생명의 위기도 여러 차례 겪었다. 그가 위기를 넘기고 세계적인 사격선수로 거듭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진종오는 자신을 대표하는 ‘키워드’를 통해 ‘사격선수’ 진종오의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놨다.
 
전설의 M16
진종오의 올림픽 신화 뒤에는 남들보다 조금 늦은 출발에도 포기하지 않은 노력과 끈기가 있었다. 그는 사격 국가대표치고는 늦은 나이인 24세 때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다. 진종오는 군에서 사격에 눈떴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유명한 일화도 남겼다. 경찰청 체육단 출신인 진종오는 전설을 남기고 만기 제대한 것으로 유명하다. 입대 이후 사격 훈련 중 영점을 잡는 과정에서 M16 소총으로 9발을 쏴 모두 한가운데에 명중한 것이다. 이 이야기는 지금도 부대의 전설로 내려온다고 한다. 제대 이후 처음으로 국가대표에 발탁됐고, 2004 아테네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역전의 명수
아테네올림픽 이후 진종오는 뒷심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금메달을 코앞에 두고 딱 한 발을 실수해 은메달에 그쳤기 때문이다. 이후 진종오는 2008 베이징올림픽을 준비하며 절치부심했다. 결국 베이징올림픽에서 50m 권총 금메달을 목에 걸며 생애 첫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50m 결승 당시 막판까지 치열한 선두 싸움을 펼쳤지만, 마지막 발에서 0.2점 차이로 승리를 거뒀다. 이때부터 그는 뒷심 부족이란 말 대신 '역전의 명수'로 불린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까지 4번의 올림픽에 나선 그는 4개의 금메달과 2개의 은메달을 쓸어 담았다. 사격 종목 사상 최초로 개인 종목 올림픽 3연패를 달성했다.

 

노 카운트
사격은 ‘멘틀 싸움’이라고 한다. 그만큼 강한 집중력·끈기·인내심 등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외부적 요인으로 선수의 멘틀이 흔들려 경기를 제대로 치를 수 없는 상황도 있다. 공교롭게도 진종오는 이런 상황을 두 차례나 경험했다. 진종오는 2009 창원월드컵 10m 공기권총 본선에서 세계신기록을 기록했다. 결선에서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금메달이 유력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결선 경기에서 표적지가 오작동하는 바람에 진종오는 세계신기록을 기록하고도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에선 시험 사격 중 기계 결함이 발견됐다. 하지만 주최 측의 미숙한 대응으로 제대로 된 경기조차 치르지 못했다. 선수 생활 마지막 아시안게임이라고 생각하고 출전했던 터라 아쉬움이 두고두고 남을 수밖에 없는 대회였다. 올림픽의 영광부터 결코 잊을 수 없는 아쉬운 경기까지, 진종오 선수와 함께한 사담기는 13일 오후 11시 JTBC3 FOX Sports를 통해 방송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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