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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정의 문화탐색] 포스트휴먼 시대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강희정 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

강희정 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

슈퍼맨의 시대가 가고 포스트휴먼의 시대가 왔다. 주먹을 앞으로 내밀고, 붉은 망토를 휘두르며 하늘을 날아가는 초인 슈퍼맨의 인기는 ‘아들아, 아침은 먹고 가야지/ 아버지, 빈속이 날기 편해요’라는 희한한 노래까지 유행시켰지만 이제는 아무도 그에게 지구를 지켜달라고 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이름도 다 기억 못 하는 수많은 영웅이 생겼기 때문이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울트라휴먼이 대거 늘어나 영화에서조차 이들은 단체로 우주전을 벌이지 않는가?
 
절대악 타노스에 맞서는 초인들, 즉 로봇형 수트로 무장한 아이언맨, 늙지도 죽지도 않는 캡틴 아메리카나 초록 거인 헐크는 과거에 상상된 현대의 영웅들이다. 신체 일부를 기계화한 포스트휴먼이나 특수한 능력의 소유자 메타휴먼은 보통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해결해주는 욕망의 투사체이다. 인간의 욕구와 그 실현을 갈망하는 상상력이 결합한 존재들이다.
 
언제부터인가 요란해진 제4차 산업혁명의 정체는 갈피를 잡기 힘들지만, 생물학적 인간의 신체를 대체하는 첨단 보철(補綴)의 시대는 실감할 수 있을 정도이다.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길거리에서 의수, 의족을 파는 곳을 찾기 어렵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팔다리만이 아니라 주요 장기까지 기계 대체가 빠르게 진행 중이다.
 
인간과 기계의 경계를 넘어선 존재, 인간을 넘어선 초인간의 포스트휴먼 시대를 대비해 휴머니즘에 이은 포스트휴머니즘이 논의되고 있다. 한편에선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등 첨단기술의 혁신이 4차 산업혁명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하고, 다른 한편에선 포스트휴먼 시대에 휴머니즘이 없고, 기술혁명에 이루고자 하는 대의도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영화 ‘아이언맨’의 한 장면. 아이언맨은 인간 신체 일부가 기계화된 포스트휴먼 시대의 상징적 존재다. 이런 영화적 상상이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다. [사진 마블스튜디오]

영화 ‘아이언맨’의 한 장면. 아이언맨은 인간 신체 일부가 기계화된 포스트휴먼 시대의 상징적 존재다. 이런 영화적 상상이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다. [사진 마블스튜디오]

초인의 기대, 영생의 희구는 문명 이래 사라진 적이 없는 오래된 욕망이다. 인간도 아니고 인간이 아닌 것도 아닌, 신비한 능력을 가진 초인은 기실 낯설지 않다. 영화나 애니메이션, 소설 속의 초(超) 인간, 비(非) 인간을 생각해보라! 황금박쥐, 요괴인간부터 돌연변이를 다룬 뮤턴트, 엑스맨까지 메타휴먼도 다양하다. 아무도 없는 틈에 몰래 나와 집안일을 해준 우렁각시나 조선을 침입한 청나라 군사를 물리치는 데 기여한 박씨부인 역시 초능력을 지닌 메타휴먼이다.
 
전우치는 도술을 부려 탐관오리를 물리치고 그림 속으로 들어갔다. 978년 송(宋)에서 편찬된 『태평광기』 중 ‘곤륜노 마륵 이야기’가 전우치의 모티브라고 한다. 곤륜(崑崙, 인도네시아)에서 온 노비 마륵이 알라딘의 지니처럼 도술로 주인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이야기가 수백 년 뒤 조선에서 전우치로 재창조됐듯이 고전은 마르지 않는 상상력의 원천이다(『전우치전』은 영화와 TV 드라마로도 옮겨졌다). 재창조되고 현실화되면서 신화와 고전에서 발원한 상상력은 과학기술에 기대어 또 다른 욕망을 좇아 미래로 달려가고 있다.
 
인간은 끊임없이 꿈꾸고 도전한다. 그리고 돌아보며 절제한다. 날개를 달고 욕망의 창공을 날아올랐던 이카루스는 절제를 잃고 태양에 가까이 간 대가로 목숨을 잃었다. 완벽해 보이는 기술 혁신의 포스트휴먼 시대에도 모르는 새 깨진 장독이 나오기 마련이다. 콩쥐의 두꺼비로 이를 메워야 하지 않을까? 기술의 문제는 인간과 사회에 있다. 인간학이 절실하게 필요한 이유이다.
 
우리 현실은 어떤가. 4차 산업혁명의 깃발이 올라간 지난해 정부 학술지원연구비 총액에서 인문사회 학술지원금은 1.5%에 불과하다. 이는 인문학, 사회과학만이 아니라 경영학, 법학, 교육학 등 비이공계 지원금을 모두 포함한 것이다. 학술지원연구비 98.5 대 1.5. 이카루스의 날개 제작에 98.5의 힘을 쏟는 것이다. 포스트휴먼 시대를 준비한다는 정부의 4차 산업혁명 정책은 이토록 불균형하다. 거칠게 말하면 휴머니즘 없는 포스트휴먼 시대다.
 
영국의 과학철학자 버트란트 러셀은 20세기 초 “지금까지 과학은 세 가지 목적에 쓰였다”며 상품 총생산 증대, 더 파괴적인 전쟁, 예술적·보건적 가치가 있는 것을 사소한 눈요깃거리와 맞바꾸는 것을 꼽았다. 지혜로운 문명을 촉구한 러셀의 일갈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카루스의 비상(飛翔)을 위해서는 과학과 휴머니즘의 두 날개가 필요하다. 이카루스를 구해야지, 날개만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강희정 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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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