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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경의 미국에서 본 한국] 미국 여성 6명 대선 출사표, 여권 신장은 이제부터!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6월은 기념일이 많은 달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시(戰時) 유럽 동맹국들과 함께 노르망디 상륙작전 75주년을 기념했습니다. 전장에서 살아남은 마지막 생존자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아름다운 사진을 남겼습니다. 모순되는 이야기지만, 자연히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미래와 미국의 신뢰도를 향한 걱정스런 비관이 따라옵니다.
 
이번 달은 북한군이 남쪽에 기습 공격을 가해 한국전쟁이 비극적인 갈등으로 치닫게 한 지 69년이 되는 달이기도 합니다. 또 중국 천안문 광장에서 학생 시위대를 유혈 진압한 지 30년, 한국의 6월 민주항쟁이 큰 성과를 거둔 지 32년이 되는 달입니다. 1989년 6월 서울에 있던 저는 중국에서 2년, 한국에서 6년을 보낸 후 미국으로 돌아가 하버드대학교에서 공부를 하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당시 저는 한국과 중국의 커다란 변화를 목격했습니다. 두 나라에 일어나는 경제적·사회적·정치적 변화가 때로는 희망으로 가득했고 때로는 기대에 어긋났지만, 세계에 지속적으로 중대한 영향을 미칠 일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이달엔 앞서 말한 기념일들만큼 중요한 날이 있습니다. 100년 전인 1919년 6월 4일 미국 상원은 여성 투표권을 보장하는 수정헌법 제19조를 통과시켰습니다. 각 주(州)의 비준을 받는데 14개월이 더 걸렸지만 여성들은 미국 전역에 걸쳐 1920년 총선에서 첫 투표를 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 여성의 투표권은 투쟁 없이 쟁취한 것이 아닙니다. 여성들은 1919년 표결에 이르기까지 수년간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무시를 받으며 백악관 앞에서 조용히 배너를 들고 시위를 했습니다. 일부는 체포돼 감옥에 갇혔습니다. 당시 여성 선거권 쟁취를 위한 투쟁은 병적이고 위험하며 심지어 여성스럽지 못하다고 여겨졌습니다.
 
제게는 19세기 말에 태어나 20세기의 마지막 십 년을 경험하고 돌아가신 친할머니와 외할머니가 있습니다. 똑똑하고 야심 찬 이 여성들이 성장하면서 본인이 완전한 미국인으로 취급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힘든 시절을 어떻게 견뎠을지를 상상해봅니다. 그들은 끈질겼고 적극적으로 동참했습니다. 주어지기를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 나갔습니다. 그리고 딸과 아들에게 똑같이 어떠한 미래든 가능하다고 이야기해줬습니다. 자랑스러운 할머니들입니다.
 
저보다 십 년 앞선 1960년대에 국무부에 지원한 친구가 있습니다. 모든 조건을 통과하고 면접을 봤을 때 남성 면접관으로부터 “결혼하면 그만둬야 하는 걸 알고 있나요?”란 질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녀는 “네”라고 대답했고 몇 년 후 그런 질문을 받아본 일이 없는 남성 외교관과 결혼했습니다. 부부는 규칙에 도전했고 결국 모두 대사가 됐습니다.
 
지난 4일 워싱턴에서 한국 여성 기자단을 만났을 때 이 모든 것이 떠올랐습니다. 기자들은 미국 국무부의 ‘성평등을 통한 국가 경쟁력 제고’란 프로그램으로 방문 중이었습니다. 미국이 정치와 비즈니스 분야에서 어떻게 여성 참여를 독려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프로그램입니다. 반가운 동시에 궁금함이 생겼습니다. 성평등은 국가 경쟁력과 상관없이 추구해야 하는 목표가 아닐까요.  미국은 산업화된 민주주의 국가 중 특히 보육과 유급 육아 휴직을 거의 지원하지 않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치와 비즈니스 분야에서 높은 유리 장벽을 깨지 못했기에 이 주제에 겸손하게 접근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저는 정치·경제적으로 부상한 한국 여성들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생각해봤습니다. 전쟁 후 작은 가게를 꾸리며 아이들의 양육과 교육을 위해 고군분투한 분들, 가정법률상담소를 운영하며 법률적 권리가 전혀 없는 여성들을 도운 이태영 변호사 같은 선구자들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제가 젊은 시절 지냈던 당시에 비해 한국의 여권이 얼마나 신장했는지, 미국에서 할머니 세대에 비해 우리 세대의 여권이 얼마나 신장했는지 생각해봤습니다.
 
참으로 고무적인 이야기입니다. 현재 워싱턴에는 한국에서 온 여성 특파원이 그 어느 때보다 많습니다. 똑똑한 신임 한국인 외교관의 성별이 여성일 확률도 높아졌습니다. 지난해 미국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여성이 의회와 주지사 선거에 나섰습니다. 내년 대선에 출사표를 던진 여성은 6명이나 됩니다. 그러나 여전히 서울이나 워싱턴에서 열리는 회의는 ‘매널(맨+패널)’들로 가득합니다. 재능있는 여성 전문가가 있음에도 버젓이 남성으로만 연사를 구성합니다. 권위 있는 목소리의 조건에 어떤 보이지 않는 차별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인이든 미국인이든, 기자든 정치인이든 여성들은 이중 잣대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외모·호감도·전문성·자격 그리고 그 이상의 것들에 대해 은밀하게 퍼져있는 편견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아갑니다. 이것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과 미국에 국한된 문제도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중요한 문제입니다. 지금까지 이뤄낸 것들에 축하를 보냅니다. 하지만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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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