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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식사가 꽝이에요" 은밀히 다른 숙소 알려준 종업원, 왜?

기자
박재희 사진 박재희
[더,오래] 박재희의 발로 쓰는 여행기(23)
작은 마을의 학교의 아이들이 이방의 순례자가에게 열렬한 환영을 보내준다. 감정은 전염된다. 우리가 마음껏 기뻐해야하는 이유를 깨닫는 순간이다. [사진 박재희]

작은 마을의 학교의 아이들이 이방의 순례자가에게 열렬한 환영을 보내준다. 감정은 전염된다. 우리가 마음껏 기뻐해야하는 이유를 깨닫는 순간이다. [사진 박재희]

 
“오늘 숙박 가능한데 식사가 꽝이에요. 여기 묵으시면 후회하실 거예요.”
엥? 방이 있냐고 물었는데 이런 반응은 처음이다. 라바살(Rabacal)에 도착해서 숙소로 적당해 보여서 들어간 곳이었다. 양 갈래로 땋은 머리를 한 주근깨 여자에게 내가 순례자 여권을 내밀자 그렇게 말했다. 
 
순례자 숙소에서는 저녁과 숙박을 함께 해결하게 된다. 뜨거운 햇볕 아래 종일 걸었으니 꿀꿀이 죽 수준만 아니면 음식이야 뭐든 대충 씻고 당장 눕고 싶었지만 주근깨 소녀의 표정에서 인류애를 읽었다고 해야 할까? 정말 그랬다. 하루 종일 걷기만 한 가련한 순례자를 맛없는 음식으로부터 구해야 한다는 일종의 정의감이 서린 표정이다.
 
노골적인 동작으로 소녀는 등 뒤 중년 여자를 가리키며 ‘정말 요리를 못 하는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여인이 그 말을 알아들었으면 어쩌나 조마조마했는데 그는 소녀에게 다가와 뭐라고 물었고 둘은 심각하게 포르투갈 말로 몇 마디를 주고받았다. 주근깨 소녀는 재빠르게 메모지에 상호를 적어 내게 건넸다.
 
특별할 것 없는 하늘, 특별할 것 없는 구름과 바람이 가장 좋은 여행의 순간이 있다. [사진 박재희]

특별할 것 없는 하늘, 특별할 것 없는 구름과 바람이 가장 좋은 여행의 순간이 있다. [사진 박재희]

 
“골목 오른쪽으로 코너를 돌아가면 간판이 보일 거예요. 만약 거기 방이 없으면 여기로 오세요.”
이 정도면 엄연한 빼돌리기 아닌가? 주인이 평소에 못되게 구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버젓이 주인이 있는데 업장에 온 손님을 다른 곳으로 보내다니. 하여튼 대범한 소녀의 추천대로 돌아 나왔다.
 
라바살로 오는 길은 전형적인 시골길이었다. 포르투갈 길에서는 사람을 만나기가 힘들다. 폭염 아래 온종일 혼자 걸었다. 가방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기절하듯 잠에 빠졌다가 일어났다. 세탁하기에도 너무 늦은 시간이라 저녁을 놓치지 않으려고 서둘러 식당으로 내려갔다. 거기서 그 요리 못 한다는 여자와 마주쳤다.
 
“아까 우리 집에 왔던 순례자. 맞죠?”
주근깨 소녀도 옆에 있었다. 소녀는 두건과 앞치마를 벗으니 더 앳된 모습이다.
“혹시 순례길에서 만난 친구가 있나 해서 이리 왔어요.”
손님을 빼돌렸다는 것을 알면 소녀가 곤란해질까 봐 내가 친구를 찾아 왔다고 둘러대는데 소녀는 여유만만이다. 여자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우리 나라의 제주도를 연상시키는 풍경을 자주 만났다. 하늘, 돌, 키작은 풀과 고요해 보이지만 폭풍보다 거센 바람의 들을 지난다. [사진 박재희]

이베리아 반도에서 우리 나라의 제주도를 연상시키는 풍경을 자주 만났다. 하늘, 돌, 키작은 풀과 고요해 보이지만 폭풍보다 거센 바람의 들을 지난다. [사진 박재희]

 
“엄마도 자기가 요리한 건 맛없다고 안 먹어요. 이모가 요리를 잘하는데 온 길에서 좀 돌아가야 해서 여기로.”
“엄마? 그럼 아까 거기가 너희 집?”
“네. 어쨌든 동네에서는 여기가 제일 맛있어요.” 주인과 종업원이 아니라 모녀간이다. 클로에는 자기 엄마의 음식 솜씨가 너무 형편없다며 나를 다른 민박업소로 보낸 것이다.
 
코임브라(Coimbra) 방향으로 30km 남쪽에 있는 작은 마을, 라바살은 그런 곳이었다.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과 다 아는 것만 같은 곳. 마을 규모가 작기도 했지만 사람 간의 작은 몸짓 하나 주고받는 눈빛이나 말투까지 가족 공동체를 연상시킨다. 클로에의 소개로 온 곳도 말하자면 장래 클로에의 시댁이 될 수도 있는, 클로에 남자친구네가 운영하는 곳이라고 했다.
 
포르투갈의 시골 동네에서 아이들은 함께 자라고 친구와 연인이 된다. 딱 하나 있는 학교에 모든 아이가 함께 걸어 다니고, 마을 사람들이 가장 맛있게 빵을 굽는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엘리스 아줌마가 동네 빵집을 하며, 제 발로 찾아온 외지인 손님에게 맛있는 다른 식당으로 가라는 식당 주인들이 사는 마을. 이런 곳에서는 마을 공동체 운운하는 말은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미 공동체로 살아가고 있으니까.
 
해가 뜨기 전에 길을 나서면 여명에 눈이 익숙해진다. 동트는 시간을 늘여 아침을 보낸다. [사진 박재희]

해가 뜨기 전에 길을 나서면 여명에 눈이 익숙해진다. 동트는 시간을 늘여 아침을 보낸다. [사진 박재희]

 
클로에가 장담한 것처럼 저녁은 정말 맛있었다. 흔하게 먹던 생선과 감자, 빵과 야채수프였는데 무언가 다른 조미료가 들어갔는지 더 따스하고 더 풍부하고 더 맛깔스러웠고 지그재그 깎아 내온 멜론은 달콤하고 다정했다. 아마도 난 그런 식사를 두 번 다시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마음으로 집밥이라고 부르는 것이 있듯 라바살에는 마을 밥이라는 게 있었다. 그날 태어나 처음으로 마을 밥을 먹었다.
 
이베리아 반도의 대부분은 스페인이 차지한다. 마치 스페인에 등뼈를 대고 있는 것처럼 붙어있는 포르투갈을 여행하면서 난 이렇게 저렇게 두 나라 사람들의 차이를 감지했다. 다른 유럽국가에서 느끼기 힘든 느긋하고 순박한 매력이야 공통적이고 종교적 신앙을 불태우듯 축구에 열광하는 것도 비슷하지만 두 나라 사람들의 태도는 미묘하게 아니 확연히 다르다.
 
포르투갈 까미노에서는 산티아고에서 파티마까지 가는 순례자를 자주 만난다. 함께 걸을 수는 없지만 다른 방향, 같은 길을 걷는 순례길의 도반들이다. [사진 박재희]

포르투갈 까미노에서는 산티아고에서 파티마까지 가는 순례자를 자주 만난다. 함께 걸을 수는 없지만 다른 방향, 같은 길을 걷는 순례길의 도반들이다. [사진 박재희]

 
스페인 사람들이 발랄하고 왁자지껄했지만 포르투갈 사람들은 비교적 투박하고 무뚝뚝해 보인다. 스페인에서는 거의 통하지 않던 영어가 포르투갈에서는 의외로 잘 통했는데 오히려 말 수는 스페인 사람들보다 적었다. 일반화의 위험을 감수하고 내 생각을 정리해보자면 스페인 사람들이 더 상냥해 보이지만 포르투갈 사람들이 좀 더 실질적 도움을 준다고 할까.
 
예를 들어 모르는 길을 헤매고 있을 때 스페인 사람들이 모르겠다며 친절하고 난감한 미소를 던지고 떠나는 데 비해 포르투갈에서는 내가 표지판을 더듬고 있을라치면 영락없이 어디선가 사람들이 나타났다. 진지하고 뭉툭한 손짓 발짓을 하며 드물지 않게 가야 할 장소까지 직접 데려다주기도 했다.
 
“새벽에 출발하지? 이거.”
클로에 엄마가 종이에 대충 싼 것을 건넨다. 잘 가라든가 좋은 여행을 하라든가 그런 말 한마디도 없이 물건을 건네더니 성큼 돌아가서 무어냐고 물을 시간도 없었다. 숙소로 올라와서 펴보니 빵이다. 민박집 청년이 묻기에 아침 식사 못 하고 출발한다고 했는데 내가 아침을 거를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마을 모두가 알게 되었나 보다.
 
가장 단순한 재료의 빵과 가장 단순한 치즈 한장이 꿀처럼 달다. 포르투갈은 빵이 맛있기로 유명하다. [사진 박재희]

가장 단순한 재료의 빵과 가장 단순한 치즈 한장이 꿀처럼 달다. 포르투갈은 빵이 맛있기로 유명하다. [사진 박재희]

 
식사 중 마신 와인 때문인지 둘둘 말아 싸준 아침 빵이 정겹고 뭉클했다. 작디작은 이 공동체를 떠날 수밖에 없는 여행자라는 사실이 서글퍼지기까지 했다. 빵 귀퉁이를 잘라 입에 넣었다. 소박하고 따스한 맛. TV 없이 대화를 나누는 법을 아직 잃어버리지 않은 사람들이 사는 마을, 유명한 것도 하나 없고 관광지도 없는 라바살에서 이베리아를 걸어 여행하는 동안 먹었던 빵 중 가장 맛있는 빵을 먹었다.
 
코임브라는 산티아고로 가는 포르투갈 순례길에서 삼 분의 일쯤에 해당한다. 유럽의 학술과 예술의 중심지였고 포르투갈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 있는 코임브라를 향해 30여 KM를 걸어야 하는 날이다. 
 
캄캄한 새벽길을 나섰다. 라바살을 떠나는 아쉬움에 헤드 랜턴을 켜고도 나는 더듬거리는 마음이었는데 마을 개들은 모질게도 짖어댔다. 당장 뛰어나와 찢어놓기라도 하겠다는 듯 지나는 사람에게 고함을 지르는 포르투갈의 개들은 여행이 끝날 때까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무명의 작은 마을을 떠나는 아쉬움을 등지고 해가 밝았다. 코임브라로 간다.
 
박재희 기업인·여행 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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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