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영호 변호사
12년 전 변호사로 나설 때는 누구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설레기도 했지만, 막연한 불안감에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소속 로펌으로 출근하고도, 한동안은 기다림이 길었다. 멋진 연기를 꿈꾸며 캐스팅을 기다리는 연기자 신세 같았다. 마침내 의뢰인과 대면이 이루어졌지만 일을 맡으려면 또 다른 관문이 버티고 있었다. 바로 보수 약정이었다.
약정은 할 때마다 어색하고 부담스러웠다. 쉽게 끝나기도 했지만 며칠씩 밀고 당기기도했다. 사안이 다양하거니와 의뢰인의 부담 능력도 천차만별 아닌가. 적정선 찾기가 여간 헷갈리지 않았다. 높여 부르면 의뢰인이 박차고 나갈 것 같았고, 낮춰 부르자니 함께 뛰는 다른 변호사들 눈치가 보였다.

법의 길 6/12
최선을 다하고도 실패하는 일도 있다. 기대에 못 미친 결과를 받아든 의뢰인이 바라는 것은 뭘까. 좋은 결과를 얻겠다고 힘들게 뛰는 과정을 쭉 지켜보며 ‘맡긴 일을 자기 일처럼 하고 있구나’라는 신뢰 아닐까. 그것은 의뢰인의 고충에 백 퍼센트 공감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할 테고, 그렇게 공감하려면 의뢰인의 말을 경청(傾聽)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불가피하게 여러 사건을 동시에 맡아 진행하는 상황이라면 하나하나에 몰입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경계해야 한다.
변호사가 된 지 몇 달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수개월 걸린 공방 끝에 다가온 선고일에 의뢰인 혼자 법정으로 나가도록 내버려 둔 일이 벌어졌다. 뒤늦게 알게 된 나는 깜짝 놀랐다. 수많은 회의를 통해 의뢰인에게 법률지식이나 법 절차 대응능력을 채워 주는 거로 변호사 역할이 끝났단 말인가. 징역형이 선고되면서 법정구속되는 일이 가끔 생기는 판에 어찌 의뢰인 혼자 극도의 긴장감을 감당하라는 말인가. 판사가 선고하는 결론을 그냥 듣기만 할 뿐, 변호사가 할 역할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본다. 좋은 결과가 나오면 의뢰인과 힘껏 포옹이라도 하고, 반대의 경우 진심 어린 위로를 해줘야 할 것 아닌가. 그런 공감으로 차원 높은 감동을 만들어 내는 거야말로 성공한 변호사가 되는 길 아닐까 싶다.
문영호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