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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설명서] '김학의 조사단'이 양재동 컨테이너를 습격한 이유는



■ 성공적인 컨테이너 박스 미팅

"아이고, 윤 회장님."

지난해 12월, 서울 양재동의 한 컨테이너 박스에 검사와 수사관들이 들이닥쳤습니다. 검찰 과거사 진상조사단에서 김학의 사건을 재조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건설업자 윤중천씨가 사무실처럼 오간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찾아갔는데 운 좋게 윤 씨와의 만남에 성공한 겁니다.

윤 씨는 진절머리가 난다는 표정을 지으며 좀처럼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합니다. 검찰 과거사위란 것이 생겨나 언론에서 '김학의 사건'을 다시 들추고 있단 건 알았지만, 거기까지 찾아오리라곤 생각 못했던 겁니다. 일반적인 검찰 수사팀과 달리,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에겐 강제수사권이 없었습니다. 휴대폰 번호를 조회할 권한도 없어 어렵게 윤씨 번호를 구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합니다.

그래서 윤 씨의 '아지트'로 알려진 곳으로 찾아가 정면돌파하기로 한 겁니다. 2013년, 2014년 두 차례에 걸친 '김학의 사건' 수사 기록 검토를 마친 조사단은 '윤중천의 마음을 열고 입을 여는 길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가장 기초적인 질문도, 기본적인 추궁도 없었던 과거 검찰 조서는 구멍 투성이였고, 이를 채울 수 있는 사람은 윤 씨뿐이라는 확신이 들었던 겁니다.

 
△ 윤중천씨와 조사단의 첫 만남이 이뤄진 컨테이너 박스

윤중천 씨의 별장이 있는 '강원도 원주 태생' 검사, 그리고 해병대전우회장까지 지낸 윤 씨를 무장해제시킬 '해병대 출신' 수사관. 조사팀 구성원 면면은 나름 승산이 있었습니다. 윤 씨의 마음을 얻기 위한 설득 작업이 펼쳐졌습니다. 강원도 사람들 사는 이야기, 해병대 사람들 이야기로 겨우 말문을 텄다고 합니다. 대면식을 마친 조사단원들은 어렵게 다음 만남 약속을 잡고 컨테이너 박스를 빠져나왔습니다.

그렇게 윤 씨는 조사단 관계자들을 여러차례 만나 이야기 나눴습니다. 강남의 한 호텔에서, 그리고 또다른 조용한 공간으로 옮겨가며. 조사단원들이 때마다 역할을 나눠 대화를 이끌어 나갔답니다. 당장 윤 씨가 휴대폰 번호를 바꾸고 잠적한다면 손쓸 방법이 없는 상황.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스러운 조사를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윤 씨가 녹음을 하지 말라고 못박을 때엔 수사관들이 종이에 속기를 하는 방식으로 조사가 진행된 적도 있다고 하니까요. 저희 취재기자들도 사건 핵심 관계자 입에서 이른바 '방언'이 터지면 추궁없이 숨죽이고 듣기만 할 때가 있는데, 그런 분위기였을 것이라 짐작합니다.

이 과정에서 윤 씨는 김학의 전 차관과의 각별한 인연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냈습니다. 월남 가정에서 자라 외로움이 많았던 김 전 차관과 친해질 수 있었던 계기. 김 전 차관에게 어디 손 벌리지 말고 열심히 일하라는 취지로 돈다발을 준 적도 있다는 이야기. 과거 검찰 기록에선 찾을 수 없었던 두 사람 사이의 내밀한 이야기들이었습니다.

 
 

■ 형이 거기서 왜 나와?

윤 씨 이야기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검사들의 이름이 언급되기 시작했답니다. 과거 골프장에서 함께 어울렸던 검사들과의 추억을 풀어내기도 했단 겁니다. 어떤 검사에겐 돈을 챙겨준 적도 있고, 어떤 검사와는 둘도 없는 사이로 서울 술집에서 자주 어울렸다는 주장들이었습니다. 검찰 인맥을 과시하는 듯하면서도, 내용에서 묻어나는 디테일 때문에 흘려들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과거 경찰 조사 단계에서 짧게 언급됐던 검찰 관계자들에 대해 묻자 친분을 인정하는가 하면, 나아가 함께 어울린 또다른 검사들 이름까지 나오기 시작한 겁니다.

 


"내가 어렸을 때 검사가 꿈이었어. 그래서 검사들이랑 어울리는 걸 좋아했어."

갈수록 농도가 짙어지는 윤 씨 진술 때문에, 조사를 이어가던 검사들은 매우 심란해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조사에서 나온 이름을 빠짐없이 보고서에 남기는 것이 옳은 일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순간도 여러번이었다고 합니다. 나중에는 조사단 관계자가 면담에서 언급된 전직 검찰 관계자와 통화를 한 뒤 의심쩍은 부분을 곧바로 윤 씨에게 전화해 물어보면 사실관계를 바로잡아줬을 정도였다는데요. 상당 부분 마음을 터놓았던 걸로 보입니다.

물론 윤 씨는 서울동부지검 청사에 나와 일부 진술을 뒤집기도 했습니다. 조사단원들이 다같이 둘러앉아 녹음기를 켜고 조사하려 하자 진술 태도가 바뀐 겁니다. 하지만 이후 김학의 전 차관의 '야밤 출국 사건'으로 수사단이 꾸려졌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수사가 시작됐습니다.

 
 

■ 검찰의 원죄, 그리고 고해성사

수사단 출범 초기 한동안 진상조사단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윤 씨가 조사단 면담 보고서에 적힌 내용을 부인해버린 겁니다. 수사단은 한동안 애를 먹어야 했습니다. 당시 일각에선 조사단 면담 내용이 조서로 작성되지 않아 증거능력이 없는데도, 과거사위가 수사 의뢰를 했다는 창의적인 비판도 나왔습니다. 그런데 만약 진상조사단이 증거능력 있는 조서를 작성할 권한이 있었다면 '수사 의뢰'가 아니라 '기소'를 했어야 마땅한 것이었겠지요.

'뇌물 혐의'로 수사 권고한 것 자체가 별건 수사라는 취지의 질타도 있었습니다. 김학의 수사단은 출범 엿새 만에 김 전 차관의 자택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았습니다. "김 전 차관에게 수천만원을 준 적 있다"는 진술이 담긴 조사단 면담 보고서도 영장 청구서에 첨부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과거 두 차례 '봐주기 수사'를 거치면서 이뤄졌을 증거 인멸, 그리고 공소시효에 발목을 잡히면서도, 수사단은 이를 모두 극복하고 김 전 차관을 구속해 재판에 넘겼습니다. 6년 전 검찰 수사팀이 철저하게 피해갔던 '뇌물 혐의'를 적용한 결과였습니다.

 


이번 수사의 시작은 윤중천씨가 진상조사단에서 한 '말'이었습니다. 수사단은 과거 검찰이 하지 않았던 계좌추적과, 과거 검찰이 확보하고도 외면했던 윤 씨의 다이어리 등을 꼼꼼히 분석해 이를 입증해냈습니다. 윤 씨가 2008년 성접대 여성으로부터 받아내려던 1억원 빚을, '성접대 폭로'를 두려워한 김 전 차관의 만류로 받지 못한 것도 뇌물로 판단했습니다. 6년 전 검찰은 하지 '않았던' 것들입니다.

과거 검찰 수사팀은 김학의 전 차관의 차명폰 번호를 확인하고도 그 명의자들을 조사하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그 번호는 성폭행 피해 주장 여성이 김 전 차관 번호로 저장해둔 것이기도 했습니다. 진상조사단은 이 점에 주목해 해당 차명폰을 개통했던 최모씨 등을 수차례 조사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최 씨가 김 전 차관의 통신비를 대신 내줬을 뿐 아니라, 김 전 차관과 친한 법조인들과 함께 주기적으로 만나는 등 심상치 않은 친분이 있었단 정황을 확인했습니다. 이 내용을 넘겨받은 수사단은 추가 수사로 단서를 확보하고 최 씨에 대한 설득을 거듭했다 합니다. 결국 최씨가 김 전 차관의 카드값과 술값을 내줬던 두번째 스폰서였음을 밝혀냈고, 추가 뇌물 수수 혐의를 적용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수사는 김 전 차관의 핵심 혐의를 은폐했던 검찰의 '원죄'를 국민 앞에 고해성사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김학의 수사단' 수사 결과 발표 이후 비판의 화살을 검찰 과거사위로 돌리려는 노력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2013년 경찰에 대한 청와대의 수사 외압 의혹을 무혐의 처분하자, 기다렸다는듯이 "수사의뢰가 잘못됐다"는 주장을 폅니다. 윤중천 씨와 유착 의혹이 제기된 전직 검찰 고위 관계자들은 억울하다며 소송전에 나섰습니다. 당분간 공격은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감히 검찰의 '흑과거'를 들추는 일은 두번 다시 입에 올리지 못하도록 필사의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 검찰 캐비닛은 또 열려야 합니다

물론 검찰 과거사위는 철저하게 검증되어야 합니다.

먼저, 구조 문제입니다. 법무부 산하에 심의 기구인 과거사위를 두고, 대검찰청 산하에 조사 실무 기구인 진상조사단을 따로 둔 것은 불통과 갈등의 단초가 되었습니다. 기록을 직접 못 보는 위원회가 조사 실무를 맡은 조사단에 의견을 내는 과정에서 '부당한 간섭'이란 주장이 나왔습니다. 보고 내용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위원회는 '부실 조사'를 지적하며 맞받기도 했습니다. 검찰의 권한 남용 의혹에 대해 '최초의 검증 작업'을 벌이겠다 공언했지만, 법률이 아닌 '훈령'이라는 약한 법적 근거 위에 위원회를 설치한 배경도 의문입니다.

구성원도 깜깜이였습니다. 법조 출입 기자들마저 조사가 끝날 때까지 조사단원 전체 명단을 알 수 없었습니다. 위원회와 조사단 구성원 선발 과정이 투명해져야 합니다. 조사 대상 사건 선정 과정도 구체적인 기준과 함께 공개되어야 그 결론에 많은 국민이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독립성을 보장한다는 명목으로 법무부와 대검 모두 조사 과정을 무책임하게 방치하진 않았는지도 반성해야 할 대목입니다.

진상조사단은 '책임자'가 없는 조직이었습니다. 교수, 변호사 등 민간위원이나 적어도 차장급 검사가 '조사단장' 자리에서 외풍을 막아내고 조사단을 조율하는 역할을 했어야 합니다. 조사단장 없이 조사단원들이 팀별로 묶여 각개전투를 벌였습니다. 그러다보니 내부 조사단원인 검사들이 선후배 검사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가해진 부당한 방해와 압력을 오롯이 감당해야 했습니다. 한 검사는 과거 근무연이 있는 선배 검사를 장시간 조사한 뒤 "그 자리 영원한 것 아니니 잘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취지의 폭언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권한도 부족했습니다. "과거 수사 관련 아무런 기억이 없다"며 조사에 불응한 현직 검사에게 어떤 불이익도 줄 수 없었고, 추가 수사 기록 열람을 요구하면 1달이 넘게 걸린 게 조사 현실이었다고 합니다. 전화번호 조회 권한도 없어, 조사단원이 과거 수사자료에 적힌 주소로 무작정 찾아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린 경우도 있었습니다.

정식 공보 체계와 룰이 없었습니다. 이번 진상조사단의 미숙한 공보 및 오보 대응 방식은 논란을 낳았고 조사단 내부 갈등, 위원회와의 충돌로 이어졌습니다. 언론이 검찰 수사를 취재하듯 제대로 취재할 수 있는 환경도 마련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조사 결과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절차와 방향이 올바른지 언론이 감시할 수 있도록 정보가 제공돼야 합니다. 공식적인 공보 권한과 기준을 정해놓은 뒤 그에 대한 책임도 물을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합니다.

뼈아픈 검증을 통해 틀을 다져나가야 할 것입니다. 정권이 바뀌어도 지속될 수 있는 제도로 자리잡아야 합니다. 검찰의 수사는 냉혹한 '사회적 부검'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긴장감. 언제든지 검찰 캐비닛은 국민 앞에 활짝 열릴 수 있다는 두려움. 이것이 검찰 조직의 상식이 되는 날까지 검찰의 '흑과거 진상조사'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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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