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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잘 살 권리와 사회적 사랑

오민석 문학평론가 단국대 교수·영문학

오민석 문학평론가 단국대 교수·영문학

“목숨을 부지하고 사는 게 왜 그렇게 힘든지 알아? 가솔린이 다 떨어진 채로 달려왔기 때문이야.” 수전 손택의 일기에 나오는 말이다. (알랭 바디우가 『윤리학』이라는 책에서 인용한) 18세기 프랑스의 생리학자 비샤의 말에 따르면, 생명이란 “죽음에 저항하는 기능들의 합체”이다.
 
이런 점에서 새들도, 짐승들도, 꽃들도, 인간들도 모두 생명의 동지들이다. 분주하게 먹을 것을 실어나르는 개미 떼, 부산하게 꽃들을 찾아다니는 벌들, 먹고 살기 위해 쉼 없이 일하는 사람들의 행위는 모두 “죽음에 저항”하는 삶의 방식이다. 자신도 모르게 몸에 내장된 생명의 신호가 모든 생물로 하여금 먹을 것을 찾아 움직이게 한다. 이 행동을 중단할 때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음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먹는 행위’에는 본능과 치열함과 슬픔의 냄새가 난다. 정신이 숭고한 고통의 시간을 견디고 있을 때조차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육체의 허기는 우리를 저 높은 곳에서 지상으로 다시 끌어내린다.
 
어느 해 여름, 캠핑장에서 화톳불 앞에 둘러앉아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는 가족을 본 적이 있다. 밤은 점점 깊어가고 새까만 하늘엔 소금밭처럼 별들이 쏟아져 내리는데, 나는 엉뚱하게도 지구 밖 멀리에서 어떤 절대적인 시선이 이것을 내려다보고 있는 상상을 하였다. 생판 모르는 남들이 만나 가족을 꾸리고, ‘살기 위하여’ 열심히 일하고, 먹고, 섹스하고, 자식을 낳고, 늙어가고 병들며, (생의 명령에 따라) 다가오는 죽음에 악착같이 저항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얼마나 처연하고 장하며 아름다운가. 캠핑에서 돌아간 후, 그 집의 가장은 천천히 더 늙어갈 것이고, 아이들은 자라 또 다른 가정을 꾸릴 것이며, 그들도 ‘먹고 사느라’ 운명의 마지막 순간이 올 때까지 생명의 명령에 순응할 것이다.
 
그러나 때로 생명의 “가솔린이 다 떨어진 채로 달려”가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며칠 전에도 80대 부부와 50대 자녀가 빚더미를 피해 자신들의 승용차 안에서 세상을 버렸고, 쪽방촌에 사는 한 60대 남성이 신도림역에서 철로에 몸을 던졌다. 생명의 “가솔린”이 오로지 돈인 현실처럼 인간을 비참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해고는 살인”이라는 노동자들의 슬로건이 엄살이 아니라 절박하고도 ‘끔찍한’ 현실인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어느 생명이 죽고 싶을까. 동력이 다 떨어져도 생명의 세포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살기 위하며 몸부림친다. 그런 세포들의 총계인 하나의 몸이 무수한 세포들의 본능을 거부하며 죽음을 향해 갈 때, 한 우주가 무너진다. 그 어둠의 깊이는 아무도 알지 못할 것이다. 짧은 시간을 살아가면서 생명체는 무수한 위험과 공포의 시간에 직면한다. 이때마다 생명체는 오직 ‘살아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명령을 거역하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러므로 모든 생명은 ‘잘 살’ 권리가 있다. ‘잘 살 권리’는 살려고 몸부림치는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시스템 안에서만 지켜진다. 그러나 이런 시스템은 인류 역사상 단 한 번도 ‘거저’ 주어진 적이 없다. 잘 살고 싶은 생명체들이 스스로 나서 자신들의 숭엄한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 한, 시스템은 늘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는 소수에 의해 가동되어왔다. 힘겨루기에서 밀려난 다수의 개체들은 늘 생존의 위협을 받는다. 부채는 늘어나고, 벌어도 벌어도 생계는 나아지지 않으며, 근심이 사라진 ‘평온한 저녁’은 늘 저 멀리 있다. “내가 노동할 때 나는 집에 있지 않다”는 마르크스의 명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안정된 생계를 보장하는 노동은 즐겁다. 그 노동의 현장이 바로 나의 집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계를 해결해주지 않는 현장노동자의 ‘진짜’ 삶은, 노동이 끝나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노동을 끝내고 돌아오는 집이 바로 그 공간이다. 그런데 그 집이 늘 생존의 불안과 공포와 그로 인한 불화로 가득 차 있다면, 그 생명은 어디로 가야 할까. 생명의 열차에서 뛰어내리는 생명들은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다. 우주가 사라지는 공포를 거쳐 알 수 없는 암흑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 일일까.
 
사회적 계단의 저 밑바닥에서 더 갈 곳이 없어 어두운 저 너머로 가는 사람들의 소식을 듣는 일은 이래서 견딜 수 없이 괴롭다. 그들의 “가솔린”이 다 떨어지기 전에 손을 내미는 촘촘한 사랑의 그물에 이념의 욕설을 가져다 붙이는 사람들이 있다. 모든 생명은 그 자체 귀하고 숭고하다. 그리고 그것을 잘 지키는 일은 사상과 이념과 그 모든 철학을 넘어서는 일이다. 그것이 사회적 사랑이다.
 
오민석 문학평론가·단국대 교수 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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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