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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칼럼] 권력자는 부지런한 게 미덕이 아니다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 칼럼니스트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 칼럼니스트

허풍쟁이 남편에 관한 우스개가 있다. “나는 큰 일만 결정하고, 사소한 일은 아내에게 맡겨 가정이 화목하다”는 이야기 말이다. ‘큰일은 무엇이고, 작은 일은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큰 일은 세계 평화라든지, 인권이라든지 그런 문제고, 사소한 건 집을 사고파는 거나 아이들 교육 문제”라고 한다.
 
크고 작은 게 문제가 아니다. 살아가면서 격에 맞지 않는 일을 하는 경우가 있다. 자기도 그것을 안다. 그런데도 갈등을 피하기 위해,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능력이 부족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자기 일’은 버려두고, ‘남의 일’을 한다.
 
가장 문제는 자기가 할 일을 모르는 경우다. 윗사람이 없는 조직의 책임자라면 지시해줄 수도, 대신해줄 사람도 없다. 업무에 공백이 생기고, 결국에는 터질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일수록 아랫사람의 일을 빼앗아 하면서 혼자 열심히 한다고 착각한다. 잔소리가 심하다. 누가 조언하면 자기 권위에 도전한다고 불같이 화를 낸다.
 
군사정부 시절 군인의 직급을 두 계단이나 올린 적이 있다. 그렇게 군의 목소리를 키웠다. 현명한 지도자는 힘이 센 공직자일수록 직급을 낮춘다. 대통령 비서실이 그렇다. 경제 부총리의 파트너였던 경제수석은 두 직급이나 낮은 차관급이다. 그런데 지금 청와대에는 과거의 그 ‘경제수석’이 여러 명이다.
 
지난달 30일 다뉴브 강에서 한국인 관광객을 태운 유람선이 침몰했다. 한국인이 무려 26명이나 사망·실종한 대형사고다. 그래선지 이날 오전에만 청와대에서 긴급대책회의를 네 번이나 열고, 대통령 지시를 6차례 공개했다. 국민의 생명이 걸린 일인데 발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나무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따져봐야 할 대목도 있다.
 
제대로 시스템으로 움직이고 있는가.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할 당시 백악관 상황실 가운데 자리에 앉아 작전을 통제한 것은 합동특수작전사령부 마셜 B 준장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구석에 앉았다. 조 바이든 부통령,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도 옆자리에서 지켜봤다. 작전을 가장 잘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준장이다. 빈 라덴을 사살할 결심을 하는 건 대통령이지만 작전은 그에게 맡겨야 한다.
 
세월호 당시 청와대는 해경에 ‘VIP 보고용 동영상’을 요구해 물의를 빚었다. 대통령이 시시콜콜 간섭하면 방해만 된다. 공(功)은 자기가 차지하고, 허물은 아랫사람에게 미루는 게 정치인의 습성이다. 세월호 유족을 위로한다며 팽목항에 가 ‘기념사진’을 찍은 정치인도 있다. 청산해야 할 ‘적폐’는 그런 것이다.
 
과잉 대응은 아닌가. 대통령의 지시가 여섯 번이나 발표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매달 경제동향보고회의를 주재했다. 그러나 관심을 보이고, 힘을 싣는 것과 비전문가인 대통령이 미주알고주알 좁쌀 지시하는 것은 다르다. 힘이 센 참모의 직급을 낮추듯 대통령도 입보다 귀를 열어야 한다.
 
‘촛불 정부’를 자임하는 건 이해하지만 ‘세월호 정부’가 되는 건 생각해 봐야 한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아도 침묵만 지키던 청와대가 관광선 사고에만 유독 과잉 대응하면 국민이 불안하다.
 
대일 관계는 참담하다. 화해·치유재단을 해체했지만 달라진 게 없다. 무얼 하겠다는 건지도 불분명하다. 아베 총리가 공식으로 사과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않겠다는 건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아베 총리와 악수조차 하지 않고 혼자 레이저 광선을 쏘아대다 임기 말에야 풀어보려 한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이불 속에서 우리끼리 만세를 부르면 뭐가 달라지나.
 
박 정부는 임기 말 사드 배치를 결단해 이 정부의 짐을 덜어줬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헤집어놓고 스스로 그 부담을 떠안았다. 그렇지만 아무 결정도 못 하고 양쪽에서 추궁만 당한다.  화웨이 문제로 우리 발등에 미·중 갈등의 불똥이 떨어졌다. 당국은 꿀 먹은 벙어리다. 북한 핵 문제가 아니라도 외교·안보가 걱정이다. 이런 국면에 외교부 장관이 다뉴브 강으로 달려가야 하나. 무얼 하겠다는 건가. ‘패싱 논란’만 확인해주는 것 같아 답답하다.
 
박근혜 정부 초기 일 년이 넘도록 비어있는 공직이 수두룩했다. 청와대가 모두 직접 챙겼기 때문이다. 부처에서 공기업의 인사안을 올려도 몇 달째 반응이 없는 일이 허다했다. 그래서 과연 인사가 잘 됐나.
 
노무현 정부의 한 장관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부처 인사를 할 때 청와대의 뜻과 장관의 의지, 담당 국장의 의견을 조금씩 다 반영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국장도 지휘가 되고, 장관을 따르게 된다고 했다. 권한과 책임을 나누는 것이다.
 
요즘 청와대만 바라본다는 말이 더 많이 나온다. 청와대에서 국·과장 인사까지 챙긴다고 한다. 인사권이 없는 장관의 영(令)이 설 리가 없다. 대통령이 10년도 넘은 성범죄 수사를 지시한다. ‘검찰 개혁’ 공약이 무색하다. 청와대 지시에 움직이는 장관이 부처를 장악할 수 있나. 권한이 없으면 책임도 없다. 장관을 주사로 만들어선 안 된다. 권력자는 부지런하다고 무조건 미덕이 아니다.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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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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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