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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웨이 꿈 키우는 6070들 “내 나이가 어때서”

‘더 쇼 프로젝트’ 모델 학원에서 워킹 수업 중인 시니어 모델 지망생들. 이날 수업의 의상 컨셉트는 ‘화려한 색감’ 또는 ‘블랙 앤 화이트’로 모두 각자 준비한 것이다. [임현동 기자]

‘더 쇼 프로젝트’ 모델 학원에서 워킹 수업 중인 시니어 모델 지망생들. 이날 수업의 의상 컨셉트는 ‘화려한 색감’ 또는 ‘블랙 앤 화이트’로 모두 각자 준비한 것이다. [임현동 기자]

“모두 긴장 푸시고요, 출발.” “남자 선생님들, 워킹 조금만 빠르고 터프하게 갈게요.” “여자 선생님들, 뒷걸음치지 마세요. 힐 신고 잘못하면 큰일 나요.”
 
지난 5월 30일 오후, 서울 청담동의 더 쇼 프로젝트 모델 학원에선 워킹 수업이 한창이었다. 강사의 호칭에서 알 수 있듯 런웨이를 걸어 나오는 이들은 50대부터 70대까지, 일명 ‘시니어 모델’ 지망생이다. 성급한 마음에 앞사람과의 간격도 틀리고, 무대 끝에서 하는 회전 동작도 서툴지만 꼿꼿이 허리를 편 자세와 표정만큼은 기성 모델 못지않게 진지했다.
 
올해 대중문화를 강타한 키워드는 ‘그레이 크러시’다. 1차 베이비부머(1955~1963년에 출생한) 세대 중 20대 뺨치는 열정으로 ‘멋지게 나이들기’에 열중하고 있는 이들을 일컫는다. TV예능에선 ‘할담비(할아버지+손담비)’ 지병수(77)씨, 유튜브에선 박막례(73)씨가 스타로 떠올랐다. 광고 모델 업계에선 순댓국밥집을 운영하다 지난해 모델학원에 등록해 광고모델로 데뷔한 김칠두(65)씨가 화제다.
 
덕분에 시니어 모델 학원도 성업 중이다. 인터넷 검색을 하면 수십 개의 시니어 모델 학원 광고와 블로그가 뜬다. 중앙대와 국민대 평생교육원에도 시니어 모델 과정이 개설됐다. 지난 4월에는 송파여성문화회관에서도 시니어모델 강좌를 시작했다. 대부분의 시니어 모델 과정은 4개월씩 초급·중급·프로 3단계를 거치는 1년 프로그램이다. 수업은 1주일에 1회. 하루에 서너 시간씩 자세교정과 워킹 연습, 이미지 메이킹과 포즈·연기를 위한 사진촬영 등으로 진행된다. 한 단계가 끝날 때마다 자체 패션쇼를 열어 실전 경험도 쌓는다.
 
단발머리가 튀는 김귀성씨, 생전 처음 수염과 머리를 기르고 찢어진 청바지를 입었다는 조연환씨, 아들의 워커를 빌려 신었다는 김종민씨.

단발머리가 튀는 김귀성씨, 생전 처음 수염과 머리를 기르고 찢어진 청바지를 입었다는 조연환씨, 아들의 워커를 빌려 신었다는 김종민씨.

흔히 시니어 모델 지망생의 최종 목표가 ‘제2의 김칠두’라고 생각하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더 쇼 프로젝트에서 만난 분들의 진짜 속내는 저마다 달랐다. 박윤정(61)씨는 “금속 관련 제조업체 경영자로 25년을 살다보니 여성스러움을 잊어버린 것 같아”, 위한나(58)씨는 “일과 공부에 찌들어 살다 지난해 큰 병까지 치르고 보니 이렇게 인생 끝나는 건가 싶어 ‘나 아직 안 죽었다’는 자신감을 위해”, 한진이(58)씨는 “연년생 두 아들이 대학에 들어간 후 갑자기 허탈감이 느껴져 재밌는 취미생활을 갖기 위해” 모델 학원을 찾았다고 했다.
 
수업 시작 후 겨우 5개월이 지났지만 이들의 만족감은 동일했다. 삶의 활력과 함께 인생에 큰 변화가 왔다는 것이다.
 
남기주(54)씨는 “갱년기 우울증으로 많이 힘들었는데 지금은 마음이 한층 젊어져서 절로 기운이 난다”고 했다. 권정숙(63)씨는 “워킹 수업을 하는 2시간 동안 계속 걷다보니 건강해지는 느낌이 들고 1주일을 잘 보낼 힘도 생긴다”고 했다. 윤지선(56)씨는 “평소 패션에 관심이 많아 옷차림이 많이 튀었는데 그만큼 타인의 시선 때문에 스트레스도 많았다”며 “여기서는 나를 마음껏 표현할 수 있어 너무 좋다”고 했다.
 
가족들과 잘 소통하고 대화도 많아졌음을 장점으로 꼽는 이들도 있다.
 
김정윤(70)씨는 “내가 즐거우니 집에 서도 늘 웃게 된다”며 “딸들은 모델을 시작한 나를 자랑스러워 한다”고 했다. 조연환(62)씨는 “인생 처음으로 수염과 머리를 길렀다”며 “20대 아들이 더 신나서 신발·액세서리를 빌려주고 새로운 스타일을 추천하는 덕분에 온 가족이 얘깃거리가 많아졌다”고 했다.
 
물론 이들에게도 애로사항은 있다. 바로 체력관리다. 1주일에 1회씩 꼬박 4시간 이상을 걷고, 수업에 집중하다보면 기운이 확실히 달린다. 걸으면서 운동도 되지만, 허리·관절 무리를 낳기도 한다. 평생을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지 못했던 이들이 갑자기 카메라 앞에서 울고 웃고 화내며 다양한 표정을 연기하는 일도 쉽지 않다.
 
또 시니어 모델 지망생이 모두 김칠두씨 같은 스타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시니어 모델을 찾는 광고 시장은 작고, 패션 무대는 턱 없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이들은 프로 데뷔보다 삶의 변화를 우선 즐기는 데 만족하고 있었다.
 
김종민(62)씨는 “자꾸 거울을 보며 자세·몸매를 체크하는 습관이 생겼고, 좀 더 젊어진 나를 상상하며 긍정적인 생각을 한다”고 했다. 이리사(62)씨는 “체력 관리, 몸매 관리에 더 신경 쓰게 되면서 건강해진 느낌”이라고 했다. 백정선(59)씨는 “젊어서부터 나를 표현하는 일을 해보고 싶었는데 용기가 없었다”며 “이번에 안 하면 5년 후 또 후회할 것 같아 도전했다”고 했다.
 
중앙대 평생교육원 시니어 모델 담당 주임교수인 김소영(코리아시니어모델 원장)씨는 “‘뚱뚱하고 키가 작아도 될까요’라고 묻는 분들이 많다”며 “시니어 모델은 몸매보다 이미지가 훨씬 중요하기 때문에 누구라도 도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나이 듦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내기 위한 방법으로 도전과 변화를 선택하는 분들이 늘고 있다”며 “요즘은 취미활동에 과감히 투자하는 분들이 많은데, 새롭게 뭘 배운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라 성취감은 더욱 크고, ‘나는 다르다’는 자신감은 즐거움과 에너지를 준다”고 말했다. 또 “특히 모델은 신체적으로도 많은 노력을 해야 하기 때문에 프로로 데뷔해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자기관리라는 이득을 얻을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덧붙였다.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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