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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가 옆자리에 앉아서 너무 싫다는 어린 여학생

기자
홍미옥 사진 홍미옥
[더,오래] 홍미옥의 폰으로 그린 세상(28)
잠깐 내 귀를 의심했다. 해사한 얼굴의 여학생은 아까부터 통화 삼매경이다. 출근시간대 서울과 경기지역을 오가는 빨간 광역버스는 여느 시내버스와는 다르게 아주 조용하다. 저마다 잠깐 잠을 자거나 휴대폰에 빠져있다. 그런 까닭에 여학생의 통화는 한자리 건너 앉은 내겐 거의 생중계 수준이었다.
"아침부터 진짜 재수 없어, 출근하는 꼰대가 옆자리에 앉아서 할 수 없이 맨 뒤로 왔어, 술 냄새도 나는 것 같은데 눈치 없이 옆자리에 앉는 거 있지 어휴."
 
이쯤에서 조심스레 주위를 살펴보았다. 다들 눈을 감고 있지만 저 소리를 못 들을 리는 없다. 내용이 점점 가관이다. 냄새도 나고 늙었단다. 그리고 왜 굳이 앉아서 가는 좌석버스를 타는지 그것도 불만이라며 웬만하면 집에서 쉴 것이지 돌아다닌다며 불만을 터뜨린다. 이런 통화를 거리낌 없이 큰소리로 하는 건 둘째 치고 내겐 그 내용이 놀라웠다.
 
화제의 드라마 '나의 아저씨' 장면. 삶의 무게를 버티며 살아가는 아저씨들이 홍콩영화를 보러 가던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 갤럭시탭 S3, 아트레이지. [그림 홍미옥]

화제의 드라마 '나의 아저씨' 장면. 삶의 무게를 버티며 살아가는 아저씨들이 홍콩영화를 보러 가던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 갤럭시탭 S3, 아트레이지. [그림 홍미옥]

 
어딜 가나 미움받는? 그래서 억울한? 나의 아저씨들
물어볼 것도 없이 그 여학생이 말하는 꼰대는 아저씨다. 퇴직을 코앞에 두었을 게 분명한 후줄근한 양복 차림의 아저씨, 간밤 회식자리에서 술잔을 기울였을 중년의 아저씨, 주말 아침이면 운동복을 입고 어슬렁거리며 동네 조기축구에 나가는 아저씨 등등. 조만간 '할배'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될 '중년 아재' 들일 것이다.
 
분명 대화 속의 주인공(?)일 듯한 중년 아저씨들이 몇몇 보인다. 그야말로 시간은 유수와 같아서 X세대라 불리며 상큼 발랄을 떠맡았던 세대들마저 어느새 아저씨 대열에 합류한 지 오래이니 5060 아저씨들이야 말해 무엇하는가. 분명 마음은 푸릇한 청춘이련만….
 
어린 학생들의 대화 속 아저씨들은 우스갯말로 서 있어도 앉아 있어도 가만히 있어도 불편한 존재 인가보다. 사실 아저씨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은 듬직하고 친절한 느낌이었는데 언제부턴가 부정적인 의미로 희화화되는 것 같다. 솔직히 그 '아저씨' 대신 '아줌마'를 갖다 붙여도 그리 이상하지 않다는 게 서글플 뿐!
 
그렇다면 푸근하며 사려 깊고 인정 많은 아저씨는 영화나 소설 속에서만 등장하는 것일까? 딸을 찾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던 영화 테이큰의 열혈 아저씨 리암 니슨이 있고, 잘생긴 외모와 친근함으로 일명 할리우드의 친절한 톰 아저씨로 불리는 톰 크루즈도 있다. 뭐 나열하자면 끝도 없다. 주디의 키다리 아저씨, 캔디의 앨버트 아저씨까지.
 
그간 문학이나 영화에서의 아저씨들은 믿음직하고 기대어 쉴 수 있는 잘생긴 바위 같은 이미지였다. 현실과는 너무도 동떨어지게 말이다. 물론 두 번 다시 보기 싫은 캐릭터들도 차고 넘치지만. 무거운 삶의 길목에서 위로가 되어주었던 드라마 나의 아저씨.
 
2018년 장안의 화재였던 드라마 '나의 아저씨'. 백상예술대상 작품상에 빛나는 수작이라는 평과 함께 평범하지만 거친 삶을 사는 아저씨들이 주인공인 드라마다. [사진 tvN]

2018년 장안의 화재였던 드라마 '나의 아저씨'. 백상예술대상 작품상에 빛나는 수작이라는 평과 함께 평범하지만 거친 삶을 사는 아저씨들이 주인공인 드라마다. [사진 tvN]

 
얼마 전 한가한 틈을 타 몰아본 드라마가 있었다. 2018년 장안의 화재였던 드라마 나의 아저씨다. 백상예술대상 작품상에 빛나는 수작이라는 평과 함께 평범하지만 거친 삶을 사는 아저씨들이 주인공인 드라마다. 버스에서 어린 학생 옆에 앉았다가 난데없는 비난 세례를 받았을지도 모르고 지난밤 회식에 마신 술 때문에 아침부터 눈치를 먹었을지도 모르는 그런 아저씨들의 이야기다.
 
등장인물들을 살펴보자면, 그럭저럭 직장생활에 적응하고 승진도 하지만 언제 잘릴지 모르는 흔한 동네아저씨(이선균 분)가 주인공이다. 자칫 천재감독이 될 뻔했으나 영화 한 편을 끝으로 빗자루를 들게 된 파마머리 아저씨(송새벽 분)와 가정도 사업도 땅굴을 파고 있는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나이 많은 아저씨(박호산 분)도 나온다.
 
그 흔한 애정 라인의 절절한 당사자들도 아니고 시청자의 눈 호강을 책임져 줄 비주얼들도 아니었다. 우스갯말로 회장의 숨겨진 아들인 본부장님. 실장님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내가 아침에 엿들은 험담의 주인공인 세상의 흔한 꼰대 아저씨와 닮아있었다.
 
그런데도 신드롬을 일으키며 많은 이들의 공감을 끌어내고 소위 대박 드라마가 되었다. 동네 어귀에서 언제라도 슬리퍼 차림으로 불쑥 마주칠 것만 같은 아저씨들이 시청자들을 감동케 한 포인트는 무얼까?
 
'알고 보면 착해!'는 드라마 속 대사만은 아닌 것을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서로를 통해 삶을 치유하는 박동훈과 이지안을 연기한 배우 이선균과 이지은. [사진 tvN]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서로를 통해 삶을 치유하는 박동훈과 이지안을 연기한 배우 이선균과 이지은. [사진 tvN]

 
세상을 향해 거칠고 치사한 불만을 내뿜기도 하지만 자신보다 약한 자들을 보듬어 주는 모습에 시청자들은 위로를 받았을 수도 있다. 사람에게 상처받고 아파하다가도 따뜻한 손을 건네주는 흔하디흔한 아저씨들의 이야기에 공감했을 것 같기도 하다. 시종일관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주인공의 기억나는 대사, “알고 보면 착해!” 사람들도 다 알고 보면 착하다는 말이겠다. 알고 보면 좋은 그런 보통사람들의 이야기는 드라마에서만 있는 일일까?
 
아침부터 호된 미움을 받았을 이름 모를 아저씨가 안쓰러워졌다. 누구의 남편일 것이며 든든한 아빠일 것이고 그 누구의 믿음직한 아들이기도 할 출근길의 아저씨. 그러고 보니 나의 남편도 어디 가서 미움받기 딱 좋을 나이의 아저씨다. 슬슬 관절도 약해지니 전철이건 버스건 자리 욕심도 부릴 것이다. 수시로 요즘 젊은것들은 어쩌고 하는 말을 할지도 모른다. 했던 말을 또 하기도 하고 자꾸만 되묻기도 할 게 뻔하다.
 
하긴, 아침부터 막말을 쏟아냈던 어린 학생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겠지. 그렇게 믿고 싶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각박해져 가고, 나이 든 사람들은 자꾸만 과거를 들먹이며 한탄하고 젊은 사람들은 그게 또 못마땅하다.
 
어느새 잠이 들었는지 이름 모를 아저씨를 흉보던 그 학생도 조용하다. 한 시간 여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시종일관 관통하는 이해와 배려, 그 따뜻한 시선으로 서로를 봐 줄 수는 없을까? 드라마 속 명대사처럼 우리는 알고 보면 착한 사람들일지도 모르니까!
 
홍미옥 스마트폰 그림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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