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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진짜 아프리카 알리자' 불쑥 떠난 케냐서 꿈 찾은 지리학도

2016년 3차 동남부 아프리카 유랑 중 나미비아 피시리버캐니언의 노을 속에서 찍은 사진.

2016년 3차 동남부 아프리카 유랑 중 나미비아 피시리버캐니언의 노을 속에서 찍은 사진.

택시기사였던 아버지는 쉬는 날이면 아내와 어린 아들을 데리고 어김없이 캠핑이나 당일치기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웃들은 ‘또 놀러 다니냐’고 혀를 찰 정도로 부모님은 여행 마니아였죠. 아들은 수많은 여행지에서 부모님과 함께한 경험들을 머리와 가슴에 깊이 새겼어요. 학생 땐 여행지의 기억과 관련 깊은 국사·한국지리 등 사회 과목을 유독 좋아했고요. 초등학생 때는 뜻도 모르면서 『삼국유사』 『조선왕조실록』 『택리지』 같은 책을 읽기도 했고, 남이 쓰다 버린 지리부도나 여행지에서 받은 관광 지도를 모으는 것이 취미였죠.
 
‘지리 덕후’ 손휘주(29)씨 이야기인데요. 그는 지난해 『동남부 아프리카-손휘주의 지리 포토 에세이』(푸른길)를 펴냈어요. 군 복무 후 복학을 앞둔 2013년 동부 아프리카의 케냐를 처음 방문한 이후 2016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동남부 아프리카 11개국을 다녀온 경험을 쓴 거죠. 지난해 5~7월 네 번째로 다녀온 아프리카 여행 후기 ‘지리학도의 지구유랑기-아프리카’ 연재는 지난 2월 마무리 지었습니다. 지금은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아프리카중동팀 연구 인턴으로 일하며 네 번째 아프리카 답사기의 출판 작업을 병행하고 있어요.
 
아프리카 첫 여행지 케냐에서 ‘하고 싶은 일’ 찾다
“지도와 지명 같은 지역 정보에 관심이 많았어요. 어린 시절의 여행 경험과 다양한 지리 정보가 제 속에서 겹쳐지면서 자연스레 지리 과목을 좋아하게 됐죠. 지리를 통해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인 ‘사회’를 만날 수 있었으니까요. 수능을 준비할 때도 지리 과목을 특히 열심히 공부했던 기억이 납니다.”
 
휘주씨의 초등학교 시절 꿈은 ‘지리학자’였어요. 사실 당시엔 그런 직업이 있는지조차 몰랐지만 좋아하는 과목인 ‘지리’에 전문가 느낌을 주는 ‘학자’라는 말을 붙였던 거죠. 경북 경주에서 태어나 대전에서 고교 시절을 보내고 건국대 지리학과에 입학했어요. 지리학도로서의 대학생활은 만족 그 이상이었습니다. 주말마다 서울이나 서울 근교로 나갔어요. 그야말로 원 없이 국내여행을 하면서 지리공부를 했죠. 
 
손휘주씨는 2015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부모님과 첫 해외여행을 했다. 케이프타운 희망봉에서 휘주(맨 왼쪽)씨와 그의 부모님.

손휘주씨는 2015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부모님과 첫 해외여행을 했다. 케이프타운 희망봉에서 휘주(맨 왼쪽)씨와 그의 부모님.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을 앞둔 때였어요. 불쑥 떠나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때 정한 여행지가 바로 아프리카 케냐였습니다. 당시에는 남은 20대를 어떤 일을 하며 보낼지 아무런 계획도 없었어요. 그런데 봉사활동과 답사를 하며 케냐에서 3개월을 지내는 동안 지리학도로서 제가 해야 할 일이 눈에 보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프리카에 대해 부정적 시각, 즉 편견을 갖고 있다고 느꼈고 그것이야말로 지리학도인 휘주씨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지리학도의 관점에서 아프리카의 진짜 모습을 사진과 글로 전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첫 답사 당시에도 그랬고 5년이 지난 지금도 그렇듯, 그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자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굳이 왜 아프리카냐’라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고 해요. 유럽·동남아시아 등 지구상에는  지리답사를 하기 좋은 곳이 셀 수 없이 많은데 말이죠.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지구의 모든 곳은 지리학의 연구 지역이 될 수 있죠. 아프리카의 지리가 가장 흥미롭다고는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아프리카의 경우 유럽·아시아·아메리카 등 다른 대륙에 비해 지속해서 답사를 다니는 사람이 적은 것이 사실이고 그만큼 정보도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아프리카의 이야기를 제대로 전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거예요.”
 
휘주씨가 아프리카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다른 대륙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느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럽에서는 게스트하우스나 술집이 아니면 그곳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많지 않아요. 저는 여행자일 뿐 분리된 느낌이 들었죠. 마치 요즘 서울의 아파트에서 옆집이나 윗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는 것처럼 말이에요. 하지만 제가 경험했던 동남부 아프리카에서는 사람들과 부딪히고 질문하고 대화하고 같이 걸을 일이 많았습니다. 식당에서 같이 밥을 먹거나 버스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 도미토리(공동 침실)에서 만난 사람들, 오솔길에서 함께 손을 잡고 걸었던 아이들과의 만남은 유럽이나 동남아시아에서의 경험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남아공 여행 후 부모님이 귀국하신 뒤 혼자 남아 남부 아프리카 6개국을 답사했다. 사진은 짐바브웨에 있는 빅토리아 폭포.

남아공 여행 후 부모님이 귀국하신 뒤 혼자 남아 남부 아프리카 6개국을 답사했다. 사진은 짐바브웨에 있는 빅토리아 폭포.

그는 아프리카에서의 경험이 소중했던 만큼 다른 사람들에게 아프리카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느끼게 됐어요. 2013년 동부 아프리카 1개국(약 3개월), 2015년 남부 아프리카 6개국(약 40일), 두 번의 답사를 통해 자신감을 얻었던 휘주씨는 세 번째 답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큰 결심을 했습니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아프리카 관련 책을 출판하겠다는 거였죠.
 
“아프리카 여행 중에 온라인으로 작업하는 환경도 어려웠고, SNS나 블로그로는 동남부 아프리카의 지리 이야기를 제대로 전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출판을 계획했어요. 직접 느끼고 경험한 것, 현지 사람들로부터 들은 것, 아프리카 지역 연구자나 지역 활동가들의 기록을 통해 배운 것 등을 바탕으로 깊이 있는 동남부 아프리카 지리책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많은 이들의 응원에 힘입어 2016년 약 80일간 동남부 아프리카 7개국 유랑을 목표로 세 번째 답사를 떠났지만 책은 내지 못했어요. 답사 내용이 크라우드 펀딩 기획안을 충족시키기엔 부족했기 때문이었죠. 결국 3개월의 일정만 마치고 돌아와야 했는데요. 답사 중 자신의 지식과 역량에 한계를 느끼게 됐고, 다른 사람들의 귀한 마음이 담긴 후원금으로 시작한 프로젝트라 약속했던 결과물을 만들지 못할 거라면 최대한 빨리 돌아와서 후원금을 되돌려주는 게 옳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마침내 출간된 『동남부 아프리카-손휘주의 지리 포토 에세이』는 세 번의 동남부 아프리카 답사를 통해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를 정리한 책이에요. 휘주씨는 “크라우드 펀딩과 개인 SNS를 통해 저의 아프리카 유랑을 응원해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동시에 스스로 반성하는 마음으로 쓴 책”이라고 말했습니다.
 
2013년 케냐의 케리오계곡(Kerio Valley)를 답사하러 가는 길 위에서.

2013년 케냐의 케리오계곡(Kerio Valley)를 답사하러 가는 길 위에서.

좋은 대학 간다고 진로문제 해결 안 돼
스물아홉 살 휘주씨는 여전히 자신의 도전이 ‘미완성’ 또는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하죠.
 
“대학에 입학한 후로 구체적인 직업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던 적은 없습니다. 여행을 떠나거나 하고 싶은 무언가가 많았던 학생이었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어떻게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제가 이렇게 얘기하면 많은 사람들이 적잖이 놀랍니다. 수년에 걸쳐 아프리카를 답사하고 공부하는 모습은 마치 뚜렷한 목표 의식을 가지고 아프리카 지역 전문가를 꿈꾸는 것처럼 보일 테니까요.”
 
‘지리 덕후’ 휘주씨는 사진과 영상, 글을 통해 더 푸른 지구와 아름다운 세상에 기여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바로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으면서 하고 싶은 일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미 그 꿈을 이룬 것 같아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물론 아프리카 또는 세계 다른 지역과 관련된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다는 생각도 갖고 있어요.
 
입시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한국의 청소년들에게 휘주씨는 대입 이후의 자신의 삶을 내다보라고 조언했습니다.
 
“저는 매우 안전한 길을 걸어가는 학생이었어요.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가기 위해 수능 공부를 열심히 했던 아주 평범한 학생이었죠. 꿈이 분명히 정해져 있던 건 아니었어요. 좋은 대학교에 가면 모든 게 해결되는 것처럼 보여서 그랬을 뿐이죠. 다들 그렇게 말하니까요.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대학생이 된 이후부터가 정말 자신을 알아가고 길을 찾아가는 시점인 것 같아요. 그때부터 봉사·여행·아르바이트 등 다양한 일을 해볼 수 있으니까요.”
 
2013년 케냐 카카메가(Kakamega)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발의 위생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의료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손휘주씨.

2013년 케냐 카카메가(Kakamega)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발의 위생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의료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손휘주씨.

진로를 계획할 때도 높은 연봉의 직업을 찾는 것보다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보거나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것이 더 좋은 방법임을 강조했다. 
 
“중요한 건 자신이 한국에서 몇 번째로 공부를 잘하느냐가 아닙니다. 사람의 인생이 공부로 순위가 매겨지는 것이 아니거든요. 더 중요한 건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또는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을 하는지를 자신이 직접 판단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변의 어른들을 한 번 둘러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어떤 직업을 선택한 선배가 웃으면서 일하는지, 어떻게 살아가는 가족이 화목한지, 어떤 길을 걷는 사람이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사는지를요.”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이용해 소규모 후원을 받거나 투자 등의 목적으로 인터넷과 같은 플랫폼을 통해 다수의 개인으로부터 자금을 모으는 것을 말한다.
 
글=김은혜 꿈트리 에디터  
 
※’자기주도진로’ 인터뷰는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발행하는 자유학기제 웹진 ‘꿈트리(dreamtree.or.kr)’의 주요 콘텐트 중 하나입니다. 무엇이 되겠다(what to be)는 결과 지향적인 진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겠다(how to live)는 과정 중심의 진로 개척 사례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틀에 박힌 진로가 아닌, 스스로 길을 개척해 나가는 진로 사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현재의 성공 여부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서 행복을 찾고, 남들이 뭐라 하든 스스로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멋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나의 길’을 점검해 보시기 희망합니다. 꿈트리 ‘자기주도진로’ 인터뷰는 소년중앙과 협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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