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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들은 붓을 놓아야 했나...우리가 잘 몰랐던 그때의 화가들

1929년에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한 뒤 주목 받았던 여성 화가 정찬영.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1929년에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한 뒤 주목 받았던 여성 화가 정찬영.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 1896~1948)은  알아도 다른 여성 화가 정찬영(1906~1988)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20세기 초중반에 일찍이 주목받은 또 다른 여성 화가다. 당시 인물 채색화와 화조화로 이름이 높았던 이영일(1904~1984)의 제자였고,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릴 만큼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는데 어느 순간 그의 이름이 잊혔다고 한다. 그토록 전도유망했던 정찬영은 왜 그렇게 사라졌을까. 
 
정찬영의 그림 몇 점이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는 '근대미술가의 재발견1:절필시대'(이하 절필시대)전시에서 공개됐다. 우리 미술사에서 저평가된 근대기 작가를 재조명하는 전시로, 정찬영을 포함해 백윤문(1906~1979), 월북화가 정종여(1914~1984)와 임군홍(1912~1979), 한국 현대미술의 개척자 이규상(1918~1967)과 정규(1923~1971) 등의 작가들을 소개한다. 각기 의미 있는 작품 활동을 해오다가 각기 다른 이유로 그 활동이 '미완'으로 마무리된 이들의 작품을 살펴보는 자리다. 
 
여성이 '그림'을 그린다는 것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이중 유일한 여성인 정찬영이다. 조선미술전람회 동양화부 최초의 여성 특선 작가인 그는 "가정을 이루더라도 작품 활동은 계속한다"는 조건을 걸고 결혼했을 정도로 당찼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게 녹록지 않았다.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그는 끝내 붓을 놓았다. 
 
1906년 평양에서 태어난 정찬영은 평양 서문여고를 졸업하고, 여학교 교사로 활동하다가 1926년 당대 저명한 수묵채색화가였던 이영일 밑에서 그림 수업을 받았다. 1929년 조선민술전람회에 입선했고, 1930년 제국대학 약학대학 출신의 경성약학전문학교(서울대 약학대학 전신) 교수인 식물학자 도봉섭(1904~?)과 결혼했다. 처음엔 결혼 이후에도 그림을 그렸고, 1935년까지 각종 공모전에서 상을 받았다.  
 
 강승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은 "20세기 전반의 여성 교육이 현모양처 교육이었고, 정절과 순종, 근면, 성실 등의 규범을 강조했다"며 "정찬영이 여성으로서 화가가 되고, 공모전에서 활약한 것은 당시 시대 상황에서 매우 선구적이고 이례적인 일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찬영은 1937년 제16회 조선미술전람회에 '공작'을 출품, 입선한 것을 끝으로 붓을 놓았다. 그는 1933년 『신가정』과의 인터뷰에서 그림과 가사를 병행하는 일의 어려움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결혼 전에는 그야말로 그림에 전심전력이었지요. 그렇지만 지금은 살림이 복잡해지고 애기까지 있고 보니 그림 그리는 마음이 삭갈려서 도무지 열중되지 않습니다(…)." 
 
아들을 잃고 접은 화가의 길  
정찬영, '공작'(1935, 비단에 채색, 144x49.7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정찬영, '공작'(1935, 비단에 채색, 144x49.7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정찬영, '한국산유독식물'중. 1940년대, 종이에 채색,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정찬영, '한국산유독식물'중. 1940년대, 종이에 채색,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1939년 둘째 아들을 병으로 잃으면서 그는 화가의 길을 완전히 접었고, 1940년대 남편 도봉섭이 한국의 유독식물에 대한 연구를 계획하자 식물 세밀화를 그렸다. 도봉섭이 납북된 뒤 정찬영의 그림은 『한국식물도감』에 삽화로 사용됐다. 이후 정찬영은 홀로 네 자녀를 양육하며 여러 가지 일로 가족의 생계를 짊어지다가 1988년 세상을 떠났다. 
 
이번 덕수궁관 전시에 나온 것은 1935년에 그린 '공작'의 초본과 완성작, 그리고 남편 도봉섭의 책을 위해 그가 그렸던 식물세밀화 여러 점이다. 배원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공작' 완성작에 대해 "극도로 화려하고 세밀한 묘사에도 불구하고 색채와 농담, 공간의 배치 등이 균형을 이루고 있어 우아한 격조가 있다"고 말했다. 배 학예연구사는 이어 "정찬영은 비로 짧은 기간 활동했지만 채색 화조화가로서 (미술사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며 "그렇지만 30대 초반에 화가로서 기량이 한창 무르익어갈 시기에 그림을 포기했다. 안타깝게도 이는 당시 모든 여성의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근대기 작가 더 발굴·연구돼야 
현재까지 정찬영에 대한 연구는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이 2000년에 쓴 평론 1편이 있을 뿐이다. 김홍희 전 서울시립미술관장은 2003년 근대기의 여성 화가들을 다루면서 정찬영을 1930년대의 수묵채색화가로 다룬 바 있다. 윤범모 관장은 "1980년대부터 근대기 작가들 발굴 작업을 해오던 터에 유족과 연결돼 그의 생애와 작품을 정리할 수 있었다"며 "정찬영은 1930년대 채색화가로는 독보적이었다"고 말했다. 윤 관장은 "정찬영은 활동 기간이 10년밖에 안 돼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작가 역량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며 "하지만 이번 전시를 계기로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더 많은 작품이 발굴되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백윤문·정종여·임군홍·이규상·정규 
 정종여(1914~1984), '지리한 운조도'(1948년, 종이에 수묵담채, 개인소장).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정종여(1914~1984), '지리한 운조도'(1948년, 종이에 수묵담채, 개인소장).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이 밖에도 이번 전시에서는 우리가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근대 미술가들을 만나볼 수 있다. 채식인물화로 개성적인 화풍을 완성한 백윤문의 '건곤일척'(1939)도 눈길을 끄는 작품 중 하나다.  
 
 정종여와 임군홍은 월북하는 바람에 남한의 미술사에서 잊혀졌다. 정종여는 많은 '지리산운조도'와 같은 산수화와 풍경 스케치를 남겼으며, 파격적인 채색화법으로 '진주 의곡사 괘불도'를 남겼다. 김예진 국립미술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지리산운조도'를 가리켜 "대형 화폭과 거대한 산에 압도당하지 않고 대담한 필묵법과 과감한 구도로 작가 특유의 필력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임군홍이 북으로 가기 전에 그린 '가족'. 그의 아내 홍우순은 이후 광장시장에서 채소와 과일을 팔면서 당시 자녀를 양육하며 그의 작품을 보관해왔다고 한다.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임군홍이 북으로 가기 전에 그린 '가족'. 그의 아내 홍우순은 이후 광장시장에서 채소와 과일을 팔면서 당시 자녀를 양육하며 그의 작품을 보관해왔다고 한다.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임군홍은 1930년대 중반에 일찍이 중국 한커우에 정착해 약 10년간 광고사를 운영하면서 한커우와 베이징을 오가며 풍경화를 그렸다. 당시 한국 화단에서 보기 드문 강렬한 색채로 화폭에 중국의 이국적인 풍경을 담아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가 서울 명륜동 자택에서 납북되기 직전에 그린 '가족'이란 작품이 특히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규상, '구성'(1959년, 합판에 유채, 개인소장).[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이규상, '구성'(1959년, 합판에 유채, 개인소장).[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이규상은 1948년 김환기, 유영국과 함께 우리나라 최초의 추상미술 단체인 '신사실파'를 결정하며 추상회화의 1세대로 활동했지만 안타깝게도 남아 있는 작품이 10여 점에 불과하고 주변의 증언 외에는 생애에 대한 기록도 남은 게 거의 없다. 
 
박미화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은 "이규상은 술을 좋아했고 주사가 있었다는 얘기가 공통으로 전해진다"며 "1963년 수도화랑에서 개인전을 했으나 이후 재산상 문제, 건강 악화, 과음 등으로 문제를 겪고 46세에 세상을 떠났다"고 말했다. 박 학예연구관은 이어 "이규상은 비록 적은 작품을 남겼지만, 대상의 재현이 아닌 순수 추상의 세계를 구현하는데 전력함으로써 한국 추상화의 정착과 확장에 큰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정규, '노란새'(1956년, 종이에 목판화,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정규, '노란새'(1956년, 종이에 목판화,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정규는 서양화가로 출발해 1953년에 서양화, 1958년에 목판화, 1960년에 도자기 전시를 열었던 '전방위 예술가'였다. 일본에서 서양화를 배우고 돌아와 판화로 관심을 옮기고 판화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했고, 이후엔 도자의 제작과 보급을 위해 애썼다. 이렇듯 다양한 장르에서 실험적인 활동을 했으나 하나의 장르에 몰두하지 못해 미술사에서 그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다. 김예진 학예연구사는 "정규는 회화, 판화, 도자, 비평 외에도 장정과 삽화 작업도 활발히 했다"며 "이번 전시에서는 대표적인 자료들만 소개했지만, 앞으로 이에 대해서도 별도의 조사와 연구가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9월 15일까지.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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