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울 원전본부에 있는 신고리 3ㆍ4호기 전경. [한국수력원자력]](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09/19/2e5027e7-5f7c-48f2-a097-6086a030a322.jpg)
새울 원전본부에 있는 신고리 3ㆍ4호기 전경. [한국수력원자력]
2013년 여성 최초로 최신 원전인 한국형 신형 경수로(APR1400) RO 면허를 딴 이경은(32) 한수원 새울 제1발전소 발전팀 차장의 업무 일지를 들여다봤다.
![부산 기장 고리 원전 홍보관에서 포즈를 취한 한수원 이경은 차장. [한수원]](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09/19/e38bbcae-ee54-44c1-9ebe-b3996db0a0d7.jpg)
부산 기장 고리 원전 홍보관에서 포즈를 취한 한수원 이경은 차장. [한수원]
PM 08:00, 밤 출근
그래도 나는 이 일이 하고 싶었다. 2010년 한수원에 입사해 처음 만난 선배들은 입버릇처럼 “기왕 한수원에 입사했으니 RO 자격증을 따서 운전팀에서 일하라”고 조언했다. 맞는 얘기로 들렸다. 실기 시험을 앞두고 ‘시뮬레이터(모의 훈련장)’실에서 한 달쯤 살았던 것 같다. 2013년 응시한 직원 97명 중 12명만 RO가 됐다. 여성 RO는 내가 처음이라고 했다.
PM 10:00, 아궁이 불 때기
‘멍’ 때리는 시간도 많지 않으냐고? 그랬으면 좋겠다. 1시간마다, 30분마다 꼬박꼬박 점검해야 하는 ‘숙제’가 많아 쉽지 않다. 바닷물 온도는 왜 그리 자주 바뀌는지. 화장실 갈 때도 동료에게 “잠시 살펴달라” 부탁하고 빨리 다녀와야 할 지경이다.
AM 00:00, 창살 없는 감옥
10명 안팎 동료와 주고받는 ‘원전 유머’가 유일한 낙이다. 오늘 저녁땐 영양사 아주머니가 급식 인원을 제대로 산정하지 못해 앞 근무조가 급식을 못 받았다고 한다. 우리는 “아주머니 ‘로카(loca)’ 맞았다”며 깔깔 웃었다. 로카가 뭐냐고? 원자로를 냉각할 때 배관이 깨지는 등 불시에 일어나는 사고다.
![신고리 3호기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이경은 한수원 차장. 원전 운전실은 보안 문제로 촬영할 수 없어 별도 사무실에서 인터뷰했다. [한수원]](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09/19/0cf41c06-79a6-4b05-acd0-36f71c786f7d.jpg)
신고리 3호기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이경은 한수원 차장. 원전 운전실은 보안 문제로 촬영할 수 없어 별도 사무실에서 인터뷰했다. [한수원]
AM 02:00, 도시락
“대학에 원자력 공학 전공자가 많이 줄었다더라. 안 그래도 ‘3D’ 업무인데 우리가 마지막 RO 되는 것 아냐?”
“원전을 더 짓지는 않더라도 최대 2075년까지 가동하기로 한 원전 23기를 조종할 사람은 있어야 할 텐데 말이야.”
실제 RO 지원자가 크게 줄었다고 한다. RO 한 사람을 키우려면 적어도 6~7년 걸린다. 그런 소중한 자원이 줄고 있다니. 원전 비중을 줄이고 재생 에너지를 늘리는 건 가야 할 방향일 수 있다. 하지만 지어놓은 원전이 모두 멈출 때까지 안전하게 운영하는 것 역시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AM 04:00, 나는 원전 조종사다
집으로 가는 길을 비추는 가로등 불빛이 유난히 환해 보였다. ‘오늘 밤 내가 원전을 안전하게 돌린 덕분에 내 가족, 친구도 좀 더 편히 잠들 수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에 뿌듯했다. 그래, 나는 대한민국 원전 조종사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