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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대학별곡 "고대 사발식? 그거 본지 5년 됐어"

1993년부터 약 26년동안 서울 고려대 안암캠퍼스 앞에서 파전집을 운영해 온 이순이(62ㆍ사진)씨가 5일 오후 영업준비를 하고 있다. 김다영 기자

1993년부터 약 26년동안 서울 고려대 안암캠퍼스 앞에서 파전집을 운영해 온 이순이(62ㆍ사진)씨가 5일 오후 영업준비를 하고 있다. 김다영 기자

“요즘 대학생들은 예전 같지 않아요. 한 5년 전부터는 사발식도 안 하더라고.”

[2019 대학별곡]②
캠퍼스 터줏대감들이 말하는 달라진 대학가
"요샌 술사주는 졸업 선배도 없어
그래도 고연전 땐 밤새 마셔"

 
고려대의 막걸리 문화를 대표했던 식당 ‘고모집’의 사장 이순이(62ㆍ여) 씨가 털어놓은 말이다. 지난 5일 오후 찾은 고모집은 테이블과 의자가 새것으로 교체된 것만 빼면 10여년 전과 전혀 달라진 것 없는 모습이었다. 붉은 간판과 낡은 메뉴판은 시간이 멈춘 듯한 인상을 줬다. 다만 옛날이었다면 한참 학생들로 붐볐을 식당 안은 한산한 모습이었다. 장사 준비를 마친 이씨는 학생들을 기다리며 TV를 틀었다.
 
이씨는 ‘1대 고모’ 한정숙씨로부터 지난 1993년 가게를 인수한 뒤 26년 동안 고려대 앞을 지켜왔다. 고대 출신 유명인사들이 인터뷰에서 언급하는 술과 토론이 있는 대학 시절의 낭만 대다수가 이곳에서 이뤄졌다. 고려대의 과거 신입생 환영식 문화인 ‘사발식’을 하는 장소였으며, 평일 저녁에는 중년이 된 고대 졸업생들이 오랜만에 들러 고추 튀김에 막걸리잔을 기울이는 추억의 장소였다.
 
술 자체를 마시지 않아…선후배 술 사주는 문화도 사라져  
그러나 요즘 대학생들의 음주문화는 180도 달라졌다고 한다. 이씨는 “우선 술을 많이 안 마신다”며 “예전에는 돈이 없어도 몇천원짜리 안주 하나 놓고 학생증까지 맡겨가면서 술을 마시곤 했는데 이제 그런 학생들은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고대의 전통으로 불렸던 사발식도 본 지 오래라고 했다. 그는 “올해는 한 번도 사발식을 본 적이 없다. 한 5년 전부터 거의 없어진 것 같다”며 “신입생 환영회를 비롯해 동문회 모임도 많이 줄어든 것 같다”고 했다.   
고모집 사장 이순이씨가 5일 오후 6시쯤 한산한 식당에 앉아 학생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김다영 기자

고모집 사장 이순이씨가 5일 오후 6시쯤 한산한 식당에 앉아 학생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김다영 기자

 
이씨는 “예전에는 시험 기간과 상관없이 학생들이 저녁이면 모여 술을 먹었는데 요즘은 시험 기간이면 정말 손님이 하나도 없다”며 “옛날보다 대학생들은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술은 자연스레 멀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예전에는 학생들이 날이 더우면 더위를 식힐 겸 막걸리와 맥주를 찾았는데, 이제는 날이 더워지면 더 술을 먹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자연스레 고모집의 손님도 크게 줄었다고 한다. 10~20년 전에는 방학만 아니면 고모집은 늘 막걸리를 마시는 고대생들로 붐볐다. 그는 “그건 옛날이야기”라고 잘라 말하며 “어제도 총 5명 두 테이블 받았다”며 “예전에는 5~6명이 와서 막걸리를 10병씩 마시며 왁자지껄하게 떠들던 분위기였다면, 이제는 2~3명이 조용히 모여 막걸리 한병을 가볍게 나눠 마시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이씨는 또 취업에 성공한 선배들이 취업을 준비 중인 후배를 찾아와 술을 사주던 문화도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 10년 전에는 취업한 선배들이 학교를 찾아와서 후배들을 데리고 막걸리를 한잔씩 사주며 취업 정보를 교환하고 힘을 북돋워 주는 문화가 있었다”며 “최근에는 그런 선후배 간의 문화도 사라지고, 취업이 워낙 안 되다 보니 잘 돼서 후배들 술 사주러 오는 선배도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문을 닫은 고모집 맞은편 나그네파전 건물에 임차인을 구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나그네파전은 31년 전통의 안암동 터줏대감이었다. 김다영 기자

지난해 9월 문을 닫은 고모집 맞은편 나그네파전 건물에 임차인을 구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나그네파전은 31년 전통의 안암동 터줏대감이었다. 김다영 기자

 
'고연전'만은 예외…재학생보다 졸업생 손님이 많아지는 추세  
그래도 여전히 가을철 열리는 ‘고연전(고대·연대 체육대회)’ 만은 예외라고 한다. 이씨는 “1년 중 유일하게 고연전 할 때만 학생들이 마음 놓고 술을 마시고 식당도 손님들로 북적거린다”며 “그날은 아주 특별하게 밤을 새워 술을 마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제 추억을 찾는 졸업생 손님들 비율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했다. 그는 “졸업한 선배들은 자주 온다”며 “모임이 있을 때면 50대에서 60대까지 연령대도 다양한 졸업생들이 찾아온다”고 했다. “그 시절 선배들은 술값을 계산해주는 문화가 있었던 터인지, 먹다가 후배들 술값을 계산해주고 가는 경우도 있긴 하다”고 말했다.
 
“졸업생들 찾아와 ‘고모’부르면 힘, 끝까지 자리를 지킬 것”
최근에는 고대생들의 음주가 잦아들고 고모집이 없어졌다는 잘못된 소문까지 퍼지면서 손님들의 발걸음도 더 줄었다고 한다. 지난해 9월에는 맞은편에서 31년 동안 운영됐던 막걸리집 ‘나그네 파전’마저 문을 닫았다. 
 
이씨는 “그래도 졸업생들이 찾아와 ‘고모 잘 있었냐’고 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며 “찾아주면 반갑고 그 재미에 장사하며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10일 전쯤에 문과대 졸업생들 10명 정도가 와서 고모집이 없어진 줄 알았는데 아직 있다고 좋아하며 먹고 갔다”며 “없어졌으면 너무 서글펐을 거라는 학생들 말에 장사를 접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제 내가 장사를 해 봐야 몇 년 하겠냐”며 “그래도 여기서 장사한 게 30년인데 힘이 닿는 데까지 이 자리를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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