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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툭튀’ 소방수 하재훈, 4단계 시스템 야구의 성공 사례

이태일의 인사이드피치
신예 마무리 투수 하재훈(29)이 디펜딩챔피언 SK의 고공비행을 이끌고 있다. 하재훈은 지난 4일 고척 키움전에서 시즌 14번째 세이브를 기록했다. 5월 이후 실점 없이 평균자책점 ‘0’의 행진을 펼치고 있는 그는 10세이브 이상을 기록한 투수 가운데 평균자책점이 가장 낮고, 유일하게 홈런을 하나도 허용하지 않았다. 지금의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리그에서 손꼽히는 마무리 투수로 인정받는 것은 물론 프로 데뷔 첫해 올스타 출전도 가능해 보인다.  
 
지난해 이맘때만 해도 하재훈의 이름은 과장을 조금 보태 일부 야구 관계자만 알았다. 그가 지명을 받은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아서 1군에서 활약할 것이라고 기대한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그리고 그가 고교시절부터 내내 잡았던 방망이를 손에 쥔 타자가 아니라 포수를 향해 공을 던지는 투수로서 1군 무대의 주역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 전문가는 아예 없었다. 심지어 본인도 전혀 생각지 못했던 활약이다.  
 
일본 독립야구단 도쿠시마 인디고삭스에서 중견수로 활약한 하재훈 선수가 지난해 8월 20일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kt위즈파크에서 열린 2019 KBO 신인 드래프트 트라이아웃에서 스윙을 하고 있다. [뉴스1]

일본 독립야구단 도쿠시마 인디고삭스에서 중견수로 활약한 하재훈 선수가 지난해 8월 20일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kt위즈파크에서 열린 2019 KBO 신인 드래프트 트라이아웃에서 스윙을 하고 있다. [뉴스1]

‘갑툭튀(갑자기 ‘툭’ 하고 튀어나온)’로 불리는 하재훈은 어떻게 리그 최강 마무리가 될 수 있었나. 그 과정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가 주전 선수가 되고, 챔피언 팀의 마무리 투수가 되는 과정에는 이른바 ‘강팀의 조건’으로 불리는 4가지 단계를 제대로 밟아가며 그를 키워낸 구단의 체계적인 육성시스템이 있었다. 그리고 그 ‘시스템 야구’는 지금 KBO 리그 모든 팀이 지향하는 강팀의 운영방식이다.  
 
전 두산 베어스 운영팀 핵심멤버 정희윤 스포츠산업경제연구소 소장은 지난해 11월 『강팀 만들기』라는 책을 펴냈다. 그는 이 책에서 프로야구 원년부터 기록과 통계에 의한 팀 운영에 주목해 온 자신의 관점을 최대한 살려서 강한 팀이 되기 위한 필수조건들을 지적했다. 그 가운데 우리가 핵심으로 눈여겨볼 조건이 스카우트-육성-좋은 지도자-시스템 운영으로 이어지는 4단계다.  
 
흔히 ‘시스템의 힘’으로 일컫는 그 4단계는 시대와 사람이 바뀌더라도 구단의 운영 기틀과 일관성이 변하지 않는다는 기본 가치를 추구한다. 현재 프로야구 정상급의 팀인 두산, SK 등이 일찌감치 추진해 정상급의 전력을 이룩한 비결이며 2011년 아홉 번째 구단으로 합류한 NC도 그 모델을 추구하고 있다. 하재훈 케이스를 통해 SK가 그 4단계를 밟아 가는 과정을 돌아보면 우리 구단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바램, ‘강한 시스템 만들기’의 지혜를 발견할 수 있다.  
  
#스카우트
 
4단계 시스템

4단계 시스템

메이저리그 전통의 명문이자 최근 10년간 주목할 만한 성공을 거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존 모젤리악 야구운영부문 사장은 카디널스의 성공이 “뛰어난 스카우트와 선수 육성이라는 전통적 사고방식에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스카우트와 육성이라는 두 항목은 “좋은 선수가 강한 팀을 만든다”는 진리처럼, 팀 전력 구성의 핵심이자 출발이다. SK는 2009년 포수 겸 외야수로 미국(시카고 컵스 마이너리그)에 건너간 하재훈에게 꾸준히 관심을 가졌다. 모든 팀이 해외파 유망주에 관해 관심을 놓지 않지만, 특히 외국인 선수 스카우트 과정에서 마이너리그를 떠돌던 하재훈을 직접 보고, 공을 들였다. 그리고 그가 손목부상(2013년) 이후 타자에서 투수로 전향해 2015년 16경기에 등판에 3승을 거뒀고 27이닝에서 삼진 29개를 기록할 수 있었던 빠른 공을 가졌다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  
 
하재훈은 2015년을 끝으로 미국 생활을 정리했다. 그러나 곧바로 국내 드래프트에 참여할 수 없었던 그는 일본 독립리그(도쿠시마 인디고삭스)에 건너가 월급 80만원 정도의 보수를 받고 선수 경력을 이어갔다. 2016 시즌 중 잠깐 일본 프로야구 야쿠르트 스왈로즈에 입단하기도 했지만, 1군에서는 8경기밖에 뛰지 못했다. 그리고 그때 하재훈의 포지션은 중견수였다.  
 
이 시점 SK는 허정욱, 현철민 두 스카우트를 일본에 보내 하재훈의 상태를 파악했다. 이후 국내 복귀를 꿈꾸던 하재훈은 2017년 8월 해외파를 대상으로 한 KBO 트라이아웃에 참가했으나 자유계약 선수 시점이 2년을 넘지 않아 2018년 지명 대상 자격을 얻지 못했다. 그는 재수 끝에 2018년 9월 열린 2019년 드래프트에 참여했다. 고교 졸업 후 함께 미국에 건너간 이대은(kt), 윤정현(키움) 등과 함께였다. 그리고 그를 전체 16번째 순위로 지명한 구단은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SK였다. 그런데 당시 그를 지명하는 스카우트는 “투수, 하재훈”이라는 낯선 포지션과 함께 그의 이름을 불렀다.  
  
#육성
 
SK 유니폼을 입은 하재훈은 훈련을 위한 장비를 지급받으면서 송태일 육성팀장에게 “배팅 장갑을 왜 주지 않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자신이 당연히 타자로서 입단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구단의 판단은 달랐다. 스카우트 과정에서 그가 가진 강한 어깨와 성격이 투수로서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육성팀에서는 오히려 투수로서 자신감이 없었던 하재훈을 설득했다. 2018년 11월 마무리 캠프 과정에서 그들은 하재훈의 구위를 면밀히 측정했다. 다른 기존 투수들에게 뒤지지 않는, 충분히 의미 있는 숫자가 나왔다. 그렇게 구단과 선수는 투수로서의 확신과 자신감을 키워 나갔다.  
 
그리고 염경엽 단장이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첫 전지훈련인 올해 2월 미국 플로리다 캠프에는 ‘투수 하재훈’으로 참가했다. 그때 구단의 판단은 ‘서두르지 않고 1년 정도를 투수로 적응할 수 있게 관리해 주며 경기에 내보낸다’였다.  
  
#좋은 지도자
 
패스트볼

패스트볼

손혁 투수코치와 염경엽 감독은 리그에 정평이 나 있는 지도자들이다. 이들은 하재훈의 기량을 면밀하게 판단했고 그 능력에 맞는 옷을 입혔다. 캠프에서 시속 155km의 빠른 공을 던진 그에게 구단이 건넨 옷은 ‘1이닝 불펜투수’였다. 그렇지만 핵심 전력이라기보다는  
 
‘1년 뒤를 보고 이번 시즌에는 최대한 적응하게 한다’였다. 코칭스태프는 서두르지 않았지만 하재훈은 진도가 빨랐다. 시즌 개막을 불펜에서 시작해 곧바로 필승조에 투입됐다. 그는 나가면 무실점으로 막아 냈고, 4구원승 4홀드를 기록했다. 그 과정에서 주전 마무리 김태훈이 흔들렸다. 그다음 카드로 생각했던 정영일도 잦은 부상으로 믿음을 주지 못했다. 예상보다 빨리 하재훈에게 마무리라는 중책이 주어졌다.  
 
#시스템에 의한 관리  
 
지난 5월 23일 LG전. 경기는 1:1 동점을 이룬 채 9회를 맞았지만 하재훈은 불펜이 아닌 덕아웃에 있었다. 이전 2경기 연속 세이브를 기록해 이날은 일찌감치 ‘휴업’을 통보받아서였다. 구단은 투수로서의 경험이 적은 하재훈을 3일 연속 마운드에 오르게 하지 않는다. 그리고 타자 상대에 있어서도 가능한 빠른 승부를 통해 투구수를 늘리지 않기를 주문한다. 충분한 휴식과 무리하지 않는 운영이 필요한 시점이며 그런 원칙을 지키는 운영이 선수와 구단 모두에게 현명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다.  
 
그리고 또 하나, 전력분석팀은 하재훈의 강점을 극대화하기 위한 보조재로 그의 주무기 빠른 공을 살릴 수 있는 ‘높은 스트라이크의 효과’를 분석해 전달한다. 하재훈은 시속 155km에 이르는 빠른 공을 위주로 유리한 카운트를 잡은 뒤 다시 빠른 공을 타자의 가슴 높이로 던져 헛스윙이나 플라이볼을 유도하는 스타일이다(표 참조). 그리고 그 패턴은 구단 전력분석팀에서 전달하는 분석 리포트를 통해 선수 본인의 충분한 이해와 납득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하재훈의 스카우트부터 투수가 되는 과정, 지도자들이 그를 리드하는 역량, 그리고 구단이 그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부분은 구단과 선수의 이상적인 사례를 보여 준다. 물론 다른 구단에도 이런 케이스가 충분히 있다. 시대와 사람, 환경이 바뀌어도 그 시스템에 의해 현명하게 운영되는 팀. 이는 우리 사회와 국가의 필요와도 맞닿아 있다.
 
이태일 전 중앙일보 야구전문기자
중앙일보 야구전문기자를 거쳐 인터넷 네이버 스포츠실장을 지냈다. 프로야구 NC 다이노스 대표이사로 7년간 재직한 뒤 지금은 데이터업체 스포츠투아이 대표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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