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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국의 꿈 버려라” 하토야마 전 총리의 고언

탈대일본주

탈대일본주

탈대일본주의
하토야마 유키오 지음
김화영 옮김
중앙북스
 
“유사점은 우리를 공통 기반으로 모아주고, 차이점은 우리에게 서로에 대한 매력을 느끼게 한다.”(톰 로빈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는 일본 정치의 대립 축으로 ‘대’일본주의(大日本主義)와 ‘탈(脫)’대일본주의를 제시한다. 그가 보기에 일본은 메이지 시대 이후 줄곧 ‘대’일본주의를 지향했고, 패전 이후에는 ‘경제대국에서정치대국으로’의 형태로 지속해 왔다. 지금 일본에게는 종전대로 ‘대’일본주의 발상을 기반으로 한 정치대국(그레이트 파워)을 목표로 할 것인지, ‘탈’대일본주의 발상으로 중규모 국가(미들 파워)로의 길을 새롭게 걸어갈 것인지 두 가지 선택이 있다.
 
미국과 일본은 뜨거운 밀월관계를 맺고 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새 책 『탈대일본주의』에서 일본이 지나친 미국 의존에서 벗어나 동아시아 이웃국과 가까워져야 한다고 제안한다. 지난해 6월 백악관에서 만난 아베와 트럼프. [중앙포토]

미국과 일본은 뜨거운 밀월관계를 맺고 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새 책 『탈대일본주의』에서 일본이 지나친 미국 의존에서 벗어나 동아시아 이웃국과 가까워져야 한다고 제안한다. 지난해 6월 백악관에서 만난 아베와 트럼프. [중앙포토]

아베 정권의 ‘대’일본주의와 대립되는, 하토야마의 ‘탈’대일본주의 외교 정책을 요약한다. ① 중국을 가상의 적으로 지목하는 것을 중단한다. ②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을 추진한다. ③ 주일미군기지를 단계적으로 축소하며, 주둔군 지위협정의 전면적 개정을 시도한다. ④ 미국의 최고 동맹국이라는 배경을 바탕으로 한, 정치 대국이 되려는 길을 단념한다. ⑤ UN 상임이사국 가입을 추진하지 않으며, 다국간 국제 협조주의에 입각한다.
 
한국 사람의 눈으로 일본을 들여다볼 때, 과연 하토야마의 주장은 현실성이 있는 걸까. 일본에서 다수파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까. 국제정치구조 속에서 실현 가능할까. 하토야마가 총리로 재임 중일 때는 어떤 노력을 기울였을까.
 
책의 서문은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시작한다. 총리 부임 직전(2009년 9월) 하토야마는 ‘나의 정치철학’이라는 한 논문에서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을 설명하면서 글로벌리즘의 그늘을 솔직하게 기술했다. “그래서인지 일부 미국인에게 반미적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하토야마는 “총리 시절 글로벌리즘적인 내외 정책을 조금이라도 바꿔보고자 했으나 뜻하던 대로 되지 않았고, 결국 짧은 재임 기간(2009년 9월~2010년 6월)을 보낸 뒤 총리직에서 물러나게 됐다.” 논문에 주목했던 나는 그해 10월 13일 한국 내 인터넷 언론에 발표한 ‘멀고 먼 하토야마의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환영과 함께 의문을 제기했다.
 
첫째,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 결여됐다. 둘째, 과연 일본이 미·일 동맹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느냐. 셋째, 동아시아공동체의 구성국으로 미국이 빠진다는 것을 미국이 용납할 수 있겠느냐. 넷째, 일본과 중국 사이의 동북아 주도권 싸움이 구상을 어렵게 할 것이다. 다섯째, 이상주의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책의 일본판 출간이 2017년 4월. 그리고 한국어판이 출간되는 2019년 6월. 의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2009년과 비교했을 때, 세상은 변했다. 한국이 변했고, 일본이 변했고, 중국도 변했고, 미국도 변했다. 그 사이 ‘동아시아공동체 구상’도 상당히 정교해졌다.
 
하토야마의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은 ‘우애’라는, 얼핏 보기에 상당히 윤리적인 개념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이때의 ‘우애’는 프랑스 혁명의 슬로건인 ‘박애’다. 설명을 빌자면, “일본의 자연과 전통에 자부심을 가지면서도 세계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 요컨대 자립과 공생을 목표로 하는 우애의 정신이야말로 성숙기 일본의 시대정신”이라는 것.
 
뿌리를 찾자면, 하토야마의 ‘우애론’은 조부 하토야마 이치로 전 총리에게서 비롯됐다. 1953년 조부는 ‘극단적인 좌익과 우익 이념을 피하는 우애 혁명’을 주창했었다. 당시로써는 일종의 제3의 길이었던 셈.
 
하토야마 유키오

하토야마 유키오

체계화시켜가는 대안이 “글로벌리즘과 내셔널리즘의 중간인 지역주의(regionalism, 열린 지역주의)”. 일본의 단독 중심주의가 아니라, 그렇다고 글로벌리즘에 대한 예찬은 아니며, 글로벌로는 좀처럼 해결할 수 없는 일을 가까운 이웃 나라와 대화하고 협조함으로써 평화를 유지하고 빈곤이나 양극화 등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해가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한 출발이 ‘탈’대일본주의다. ‘대’일본주의의 환상을 버리고 ‘탈’대일본주의의 길을 가자는 것이 전편을 관통하는 주제. 하토야마는 “‘탈’대일본주의는 필연적으로 동아시아공동체의 길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후속 절차로 ‘동아시아 안전보장회의’ 창설을 일본외교의 새로운 목표로 제안하는데, 기구는 일본 오키나와나 한국의 제주도에 두자 한다.
 
하토야마의 주장은 일본 주류에는 철저히 반한다. 일본 내에서 하토야마는 소수파이자 이상주의자로 평가받는다. 그런 평판이 구상의 가치를 깎아내릴 순 없다. 한국에는 5000만의 사람이 있고, 5000만의 생각이 다르듯, 일본에는 1억 2700만의 사람이 있고, 각기 생각이 다를 것이다.
 
거기서 같고 바른 생각들을 모아 공감을 이끌어내고, 다른 생각을 존중하면서 토론을 통해 공동의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정치와 역사의 책무가 아니겠는가. 정치는 때론 이상주의자가 만들어간다. 이상주의자야말로 정치의 텃밭이다.
 
최재천 일대일로연구원 명예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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