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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합의 과정 법정서 증언 못해"…사법행정권 남용 재판 딜레마

최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재판에 증인으로 채택된 한 판사가 ‘재판부 합의 내용은 증언할 수 없다’고 밝힌 가운데, 현직 부장판사가 이에 동의하는 의견을 제시했다. 재판부의 합의 과정 비공개는 사법부 독립 차원의 문제로, 이를 법정에서 증언하는 건 위법이라는 취지다.

 
판사봉 [중앙포토]

판사봉 [중앙포토]

 
"재판 합의 공개되면 법관 공격받을 것"
7일 법조계에 따르면 김시철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법원 내 헌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에게 한 통의 e메일을 보냈다. 김 부장판사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한다고 규정한 헌법 제103조와, 심판의 합의는 공개하지 않는다고 규정한 법원조직법 제65조의 상호관계 등에 관해 제게 문의하는 경우가 있어 관련 판시 내용이 담긴 행정법원 판결을 게시하겠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달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부장 박형순)가 ‘재판 합의는 공개할 수 없다’고 한 판결을 예로 들었다. 해당 사건에서 소송을 낸 A씨는 공갈 유죄로 징역 1년6개월 형을 선고받은 뒤 재판부의 합의 과정이 담긴 ‘대법원 재판연구관의 심리의견서’ 등을 공개해달라고 했다. 당시 법원은 ‘심판의 합의는 공개하지 않는다’고 규정한 법원조직법 65조를 들며 이를 기각했다. 그러면서 “합의를 둘러싼 내ㆍ외부의 공격을 막고 법관의 양심과 증거에 따른 사법권 행사를 보장해 국민과 소수자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 거래' 밝히려면 판사들 증언 필요한데…
김 부장판사의 e메일은 최근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과 맞물려 파장이 커지고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이 재판에 개입했는지, 실제로 재판에 영향을 미쳤는지 규명하기 위해선 재판 합의 내용이 법정에서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달 임모 판사는 합의 내용 공개를 거부한다는 내용이 담긴 의견서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사건을 심리하는 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부장 윤종섭)에 제출했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명예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1심 재판부 주심 판사였다. 검찰은 행정처가 판결의 세부 문구까지 관여한 것으로 보고 있지만 주심 판사가 입을 닫은 것이다.
 
이에 대해 한 부장판사는 “판사가 합의 과정을 비공개 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며 “예외를 두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판사들이 검찰 수사에 불려가 재판 합의 과정을 줄줄이 이야기한 것부터가 잘못”이라고 밝혔다.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에서 벌어진 위법을 감추기 위한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 판사는 “판결이 나오기까지의 순수한 논의 과정을 밝히는 것과 판사들이 윗선의 부당한 지시를 받아 재판에 개입했는지를 밝히는 것은 결이 다르다”며 “법관의 독립이라는 당초 법의 취지에 오히려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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