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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혜원 부친 됐고 김원봉 안됐다···유공자 가른 北정권 기여도

문재인 대통령이 6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제64회 현충일 추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6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제64회 현충일 추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 정권 수립에 일조했던 독립 운동가 약산 김원봉(1898∼1958)이 독립 유공자 서훈을 받을 수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이 6일 현충일 추념사에서 약산을 거론하자 그에 대한 독립 유공자 서훈 논란이 불붙을 조짐이다. 문 대통령은 “광복군에는 무정부주의 세력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이어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돼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역량을 집결했다”고 말했다.
 
약산은 1919년 의열단을 조직해 국내 일제 수탈 기관을 파괴하거나 요인을 암살하는 무장 투쟁을 전개했다. 42년 광복군 부사령관에 취임했으며, 44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무위원ㆍ군무부장을 지냈다.
 
독립 유공자로 서훈받기에 충분한 공적이지만 문제는 광복 이후의 행적이다. 48년 월북한 그는 그해 8월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이 됐다. 같은 해 9월 국가검열상에 올랐다. 이후 노동상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등 북한 정권의 고위직을 거쳤다. 6·25전쟁의 공훈을 인정받아 김일성으로부터 훈장을 받은 경력도 있다. 그러다 58년 김일성의 연안파 제거 때 숙청됐다.
 
약산의 막내 동생인 김학봉씨는 2005년 약산의 독립 유공자 서훈을 신청했다. 또 적폐를 청산하겠다며 지난해 출범했던 국민중심보훈혁신위원회는 올해 초 보훈처에 “3ㆍ1운동 100주년을 맞아 김원봉 등 독립유공자로 평가돼야 할 독립운동가들에게 적정 서훈을 하라”고 권고했다.
 
약산 김원봉

약산 김원봉

 
그러나 현행 국가보훈처 내부 규정에 따르면 북한 정권 수립을 도운 독립 운동가는 유공자 서훈을 받을 수 없다. 보훈처는 지난해 독립 유공자 심사 기준을 ‘광복 후 행적 불분명자(사회주의 활동 경력자)’도 독립 유공자 서훈을 받을 수 있도록 바꾼 대신 ‘북한 정권수립에 직접 기여하지 않은’ 경우로 제한했다. 그래서 광복 후 남로당 활동 경력 때문에 그동안 여섯 차례나 독립 유공자 심사에서 탈락했던 손혜원 의원의 부친은 변경 심사 기준의 혜택을 봤지만, 약산은 해당이 안 됐다.
 
이 때문에 피우진 보훈처장이 3월 26일 국회에서 약산의 독립 유공자 서훈에 대해 “의견을 수렴 중이다. 가능성은 있다”고 답하면서도 “지금 현재 기준으로는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보훈처의 내부 규정에서  ‘북한 정권 수립에 직접 기여하지 않은’이란 문구를 뺀다면 약산을 독립 유공자로 서훈할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상훈법에 따르면 ‘국가안전에 관한 죄를 범한 사람으로서 형을 받았거나 적대지역(敵對地域)으로 도피한 경우(8조2항)’ 서훈을 취소하게 돼 있다. 보훈처의 내부 규정이 상위 법인 상훈법의 취지와 어긋나는 게 법적으로 어렵다.
 
이지수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독립 유공자 서훈은 대한민국의 건국에 공로가 뚜렷하거나, 국가의 기초를 공고히 하는 데에 이바지한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게 주는 건국훈장ㆍ포장 등을 뜻한다”며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아닌 북한 정권 수립에 공을 세운 약산을 독립 유공자로 서훈하는 것은 통일 이후에 고려해야 할 사항”이라고 말했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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