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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지하철에서 냄새가 난다면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한여름 냉방 제일 빵빵한 곳. 어디긴, 지하철이지. 요즘엔 지하철에서 빵빵한 게 하나 더 늘었는데 와이파이. 당근 공짜지, 여긴 한국이니까. 단군 이래 대한민국의 최고 성취를 꼽을 때 지하철을 빼면 곤란하다. 서울에 지하철이 없었다면 한국 현대사도 달리 쓰였을 것이다. 광화문 촛불집회는 훨씬 비루했을 것이다.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 걷거나 뛰지 말고 두 줄로 서라는 것이 그들의 계도다. 그러나 시민들은 여전히 꿋꿋하게 한 줄로 서서 민의를 표현한다. 가르치려 들지 마라. 대통령도 탄핵한 시민들이다. 지하철이 우리 시대의 광장이다.
 
일본 지하철에는 핸드폰 들여다보는 일본인들이 숙연하다. 운행 소음 빼면 절간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핸드폰에 분명 통화기능이 있으매 지하철이라고 이걸 묵히는 것은 교육칙어 가르침에 부합하지 않는다. 능률과 실질 숭상. 그래서 어제 먹은 김밥 품평과 오늘 만난 거래처 직원 정보를 동승 탑승객들과 기꺼이 공유함이 우리의 일상 미덕이다. 지하철은 공론장이다.
 
하나님 어쩌자고 이런 것도 만드셨는지요. 지하철에서는 가곡 ‘쥐’의 가사가 새삼스럽다. 구경 중의 최고 구경이 사람 구경이다. 게다가 요즘은 외국인들도 늘었다. 조물주는 어쩌자고 이렇게 다양한 능력을 지니셨는지요. 그래서 지하철은 열반묵상과 대중설법의 오백나한 합동친견장이기도 하다.
 
그 외국인들이 문제다. 지하철에 감복한 그들이 덜컥 눌러앉아 살겠다면 어쩔 것인가. 예멘 난민 오백 명에 사회 전복을 우려하던 곳이 한국이다. 슬기로운 민족의 지하철에는 대비가 다 되어있다. 그들에게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공항 연결 지하철은 운영 주체가 다르므로 환승하려면 환승게이트를 거쳐야 한다. 요금이 추가되지 않는다는 문장도 친절하다. 단, 한국어로만. 이방 중생 불만 누적에 영문 안내가 추가된 역도 있으나 여전히 한글 안내만 붙은 역이 즐비하다.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
 
이들을 좌절시키는 방어장치는 여러 겹 마련되어 있다. 한글로 ‘을지로입구’인 역이 영문으로 ‘을지로1가’다. 내려야 할 곳이 서로 다른 이름이니 굳이 묻지 말고 너희들이 알아서 생존하면 된다. 우리의 독창적인 표기법도 있다. ‘일원’역의 영문 표기는 ‘Irwon’이다. 대문자 I와 소문자 l이 이어졌을 때의 혼란을 세심히 고려했을 것이다. 그래서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어드(Illiad)’나 베르디의 오페라 ‘일트로바토레(Il Trovatore)’에 익숙한 자들이 여기서 무사히 내리기는 어렵다.
 
이런 은밀한 대비가 공개되면 국제사회의 지탄이 쏟아질 것이다. 그래서 한국인을 위한 탐험장치도 공평히 마련되어 있다. 지하철 2호선 순환방향 지칭의 절묘한 방법이 내선순환·외선순환이다. 이건 전동차 우측운행 정보와 거대한 폐곡선 이해의 공간 상상력을 동시에 요구한다. 묘미는 서울 지하철에 좌측운행, 좌우측혼용운행이 두서없이 섞여 있다는 것이다. 시계방향·반시계방향 지칭은 일반시민 지적 수준에 비해 너무 난이도가 낮을 것이다.
 
플랫폼에는 친절하게 비상탈출 안내도도 있다. 화재 시 공황상태에서 읽어야 하는 도면이다. 그런데 그 입체도는 건축 전공 겨우 삼십 년 경력으로는 파악할 수가 없다. 지하철 이용은 신체 건강 외에 공간지각력 증진에도 무척 좋다.
 
외국 지하철에도 사회적 약자 배려석은 있다. 그러나 한국처럼 절대적인 권위를 갖는 곳은 별로 없다. 한국의 권위는 나이다. 지하철 언쟁의 최고 기폭장치가 있으니, 얻다 대고 반말이야. 주민등록증 지참이 필요한 건 불심검문이 아니고 경로석 착석순위 결정근거이기 때문이다. 민쯩 까봐. 그래서 가끔 경험 있고 노련한 자들이 경로석에, 약삭빠른 자들이 노약자 보호석에 앉는다. 임시로 산달이 된 척 부스스한 여자들도 앉아가는 임산부 배려석도 등장했다.
 
아줌마가 먼저 앉으면 여섯 명, 나중에 앉으면 여덟 명. 장의자 모양 좌석이던 시절 서울 지하철 좌석 한 줄 정원에 대한 학생의 분석이었다. 정답은 럭키 세븐. 그런데 6인용 좌석이 서울에 등장했다. 사회변화의 증거다. 그 전동차의 비상전화 높이가 낮아졌다. 어린이나 휠체어 사용자의 손이 닿는 높이다. 이게 배려다. 누구나 결국 사회적 약자가 된다. 외국인도 약자다. 선진국은 소득 수준이 아니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로 계측된다. 그 측정 공간이 지하철이다.
 
뉴욕 지하철은 당신을 목적지까지 태워준다. 하지만 그 이상은 아무것도 기대하지 마시라. 어수룩한 유학생으로 당도했던 뉴욕에서 목도한 이 문장이 안내인지 경고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진실이었으니까. 여전히 낮에 냄새 진동하고 밤에 공포 엄습하는 곳이 뉴욕 지하철이다. 그러나 아무리 덜컥거리고 조명 껌뻑거리고 치안문제 생겨도 지하철 이용은 뉴요커의 자존심이다. 지하철이 도시고 도시는 뉴욕이라는.
 
이에 비해 한국 지하철은 안전도에서도 세계 최고다. 막차 탄 아가씨들이 두려워하는 건 폭력사태가 아니고 몰카 촬영이다. 뉴요커들은 이해할 수 없으리. 아참, 혹시 우리 지하철에서 냄새난다고 했던가? 그건 당신 발냄새지.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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