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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칼럼] “부친의 죽음 잊어도, 재산 손실은 잊지 못해”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 칼럼니스트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 칼럼니스트

하소연은 압축됐다. 간결함은 강한 전파력을 갖는다. 간절함이 퍼진다. “우리가 언제까지 당해야만 합니까. 우리 재산권은 우리가 지켜야 합니다.” 자유발언대의 연사는 파주에 사는 주부다. 주민들 반응도 간략하다. ‘투쟁! 투쟁! 투쟁!’
 
1일 저녁 파주 운정의 새암공원 시민집회 장면이다. 그 말들은 3기 신도시(고양시 창릉) 지정에 대한 항의다. 집회 주최는 운정신도시연합회. 이웃 일산신도시연합회가 합세했다. 주민 1500명(주최 측 추산)이 모였다. 일산 거주 주부도 발언대에 섰다. 3기 철회 촉구의 외침은 원색적이다. “3기 신도시 발표로 일산 주민은 피눈물을 흘리고 밤잠을 못 자고 있다.”
 
일산과 운정의 공동 집회는 집요하다. 5월 7일 정부의 3기 신도시 발표 후 주말 네 번째다. 집회장 인원 구성은 대체로 가족 단위다. 집회 시작 전 구석에서 40대 초반 직장인의 성토는 직설이다. “운정(제2기)은 아직도 신도시 기능을 구축하지 못했는데, 서울 바로 근처에 무슨 3기냐. 나의 하나뿐인 재산, 아파트 값 떨어질 것 생각하니 억울하다.” 집회장에서 재산권 방어의 결의가 다져진다.
 
그런 말들은 마키아벨리를 떠올리게 한다. “인간은 아버지의 죽음은 빨리 잊어도, 재산의 손실(che la perdita del patrimonio)은 잊지 않는다. 『군주론 17장』”  마키아벨리는 권력과 인간 본성의 관계를 해부했다. 그 은유는 어두우면서 교묘하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는 “재산 소유욕이 혈육 감정을 뛰어넘는다는 의미”라고 했다. 그의 해설은 이렇다. “예전부터 권력 운영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이 재산권이다. 통치자가 시민의 재산을 빼앗거나 손해를 끼치면 대중의 분노를 사고 원망과 저주의 늪에 빠진다는 경고”라고 했다.
 
인간 본성은 바뀌지 않는다. 『군주론』의 통찰은 시대마다 재구성된다. 지금 3기 신도시 사태에 적용된다. 집회장에서 불만의 소리가 터진다. “서울 강남 집값 잡는다고 엉뚱하게 일산, 운정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는 재산의 응축이다. 민심은 아파트 문제에 민감하고 역동적으로 반응한다.
 
일산은 분당과 함께 출발(1989년 1기 신도시)했다. 처음의 분양가는 비슷했다. 지금은 상당한 격차로 분당에 밀린다. 교통 인프라의 격차도 크다. 집회장 연사들이 지적한다. “일산은 신도시 중 출퇴근 전쟁이 가장 심하다. 경기도의 ‘도시철도망 구축 계획’에서 일산·파주는 이번에도 소외됐다. 반면에 성남 분당은 도합 8개의 철도 노선이 깔리게 됐다. 이런 차별이 어디 있느냐.”  
 
상대적 박탈감은 재산의 상실감을 키운다. 그 감정은 공유된다. 그 순간 집단 분노로 확산한다.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은 ‘미스터 부동산’이다. 그는 집값 잡는 사령탑이다. 그의 정책 세계는 어떻게 짜였을까. 그 속에 군주론의 미묘한 요소도 참작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곽준혁 박사(『마키아벨리 다시 읽기』 저자)는 이렇게 정리한다. “통치자가 시민에게 혜택을 주는 것보다 ‘이런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충고가 거기에 깔려 있다.”  
 
3기 신도시에 대한 대중의 반감은 유별나다. 신도시 지정 후 이런 규모의 후폭풍은 처음이다. 그 속에 마키아벨리 식 민심 분노와 원망의 늪이 생겼다. 그 함정에 문재인 정권은 빠지고 있다.
 
일산은 민주당 텃밭이다. 고양의 4개 지역구(일산 2+덕양 2곳)에 자유한국당 출신 의원은 없다. 신도시 정책책임자는 김현미(민주당) 국토부 장관이다. 그의 지역구는 일산서구. 그 옆이 유은혜 사회부총리 지역구다. 집회장에 “김현미 out”의 구호와 팻말이 널려 있다.  
 
김 장관은 지난달 23일 교통개선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대다수 주민은 실천 가능성을 믿지 않는다. 발언대에서 반발은 거세다. “성난 민심 달래려고 곶감 빼주는 듯한 교통정책은 일산 주민을 기만하는 적폐다.”
 
일산신도시의 첫 입주자인 이종면(전직 출판인)씨는 “청와대 586 운동권 출신 참모진은 아파트 재산 문제가 권력 운영에 얼마나 예민하게 작동하는지 모를 것”이라고 했다. 재산권 논쟁은 이념전선보다 자극적이다.  
 
그가 모은 현장 여론은 거칠다. “일산은 선거 때 민주당과 문재인 정권을 지지했으니까 손해를 감수하라는 조롱에다 지역이기주의라는 비난도 듣고 있다. 정치가 배은망덕이라지만 여기서 다선의원, 장관까지 하더니 이젠 주민들 뒤통수를 친다.” 그의 말은 집회 진행자의 외침과 어울린다. “우리가 가만있으니까 ‘가마니’로 보고 있다.” 배신감은 민심 이반을 재촉한다.
 
‘문재인 사람들’의 행태는 편가름이다. 적과 동지,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나눔이다. 그런 의식이 서울 집값을 잡겠다는 정책에 담겼을 것이다. 세상은 그런 시선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부작용과 역풍은 예상을 뛰어넘는다. 레이건의 언어(대통령 퇴임 후 1992년 연설)가 실감난다. “강자를 허약하게 만들어서 약한 자를 강하게 할 수 없다.”
 
집회는 결의로 마친다. “3기 신도시 철회까지 항의는 계속한다. 분노의 함성이 청와대까지 가도록 외칩시다.”
 
"와~” 하는 소리가 이어진다.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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