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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현충일]대뜸 소주 하자던 아들, 두달 뒤 입항식 손꼽았는데···

오늘 현충일 … 그 희생 기억합니다
홋줄 사고로 숨진 고 최종근 하사(사진 맨 앞)가 청해부대 파병 중 전우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 [사진 해군]

홋줄 사고로 숨진 고 최종근 하사(사진 맨 앞)가 청해부대 파병 중 전우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 [사진 해군]

“아들아, 짧은 22년 인생 향기롭게 살다 떠났구나.”
 
최근식(51)씨가 4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마지막으로 한 말이다. 그의 아들 고 최종근(22) 하사는 지난달 24일 해군 청해부대 최영함의 입항식 도중 홋줄(정박용 밧줄)이 풀어지는 사고로 숨졌다. 당시 해군 장병 4명도 다쳤다. 최근식씨는 통화에서 “종근이 제대에 맞춰 새 침구류를 준비해 놓은 방에 지금 향을 펴놨다”며 “이 향이 아들의 인생을 의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씨는 지난달 31일 아들의 사망신고를 직접 했다.
 
어떤 아들이었나.
“군 복무 중 아들 별명이 ‘긍정 비타민’이었다고 하더라. 원래 긍정적인 아들이었는데, 입대 후 아들 사진을 보니 한결같이 웃고 있었다. 내 아들이 ‘이렇게 긍정적이었나’라는 생각에 새삼 놀랐다.”
 
최 하사의 군 생활은 어땠나.
“아들은 해군이 돼 배를 타는 동안 힘든 내색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함정 생활을 좋아했고 자랑스러워했다. 2017년 8월 해군에 입대해 두 달 뒤인 10월 최영함에 전입했을 때 뛸 듯이 기뻐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아들이 해군에 입대한 건 오로지 배를 타고 파병을 나가겠다는 목표 때문이었다. 그러려면 훈련소에서 상위 20%에 들어야 한다고 했다. 군 생활 중 아들이 힘든 내색을 보인 건 그때가 유일했다.”
 
아들의 군 생활에서 무엇이 제일 기억에 남나.
“입항식 두 달 전쯤이었나. 통화하는데 대뜸 ‘아버지, 돌아가면 소주 한잔해요’라고 했다. 이 말에 만사 제쳐놓고 입항식만 손꼽아 기다렸다. ‘종근이가 어느덧 어른이 돼 나를 위로하게 됐구나’라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 입항식에 달려갔다.”
 
최 하사의 희생이 사회에 어떤 울림을 주면 좋겠나.
“주변에 밝은 기운을 전하는 아들이었다. 아들이 군 복무로 모은 월급과 수당이 1000만원 정도다. 내가 이 돈을 어떻게 쓸 수 있겠나. 모두 아들 모교(동국대 경주캠퍼스)에 기부할 계획이다. 그게 아들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최씨는 또 “아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해야 할 일이 또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발의된 ‘최종근 법’(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법률안)의 국회 통과다. 이 개정안은 국가 유공자 또는 그 가족에 대해 형법상 모욕죄 및 명예훼손죄 등을 범할 경우 해당 형의 2분의 1까지 가중 처벌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남성 혐오 성향의 온라인 커뮤니티 ‘워마드’가 최 하사의 죽음을 비하해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킨 게 계기가 됐다.
 
이 일이 중요한 이유는 뭔가.
“국가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국가가 최고의 예우로 보내줌으로써 유가족들은 슬픔을 빨리 치유하고 위로받는다. 사회가 제복 입고 헌신하는 사람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계속 슬퍼한다고 종근이가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 슬퍼만 하고 있을 수 없다. 종근이의 희생이 제복 입고 헌신한 이들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보탬이 되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 부부의 아들로 태어나 줘서 고맙고, 자랑스럽고, 또 미안하다. 이 말밖에 할 수가 없구나.”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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