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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칼럼] 한 방에 훅 가는 판에 한국 정부는 어디 있는가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트럼프 대통령이 화웨이에 십자포화를 날린 것은 제대로 시범 케이스를 고른 셈이다. 중국의 급소를 노려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에서 완전히 배제시켜 버렸다. 두 개의 결정타가 치명적이었다. 우선, 영국의 반도체 설계기업인 ARM이 화웨이와 거래를 중단했다. ARM은 일본의 손정의 회장이 인수한 기업이며, 중국 알리바바의 최대 주주인 손 회장은 중국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데도 미 상무부가 화웨이를 거래제한 기업으로 묶자마자 ARM은 즉시 거래를 중단했다. 미국산 부품이나 기술을 25% 이상 사용할 경우 외국기업이라도 미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수출통제개혁법 때문이다. ARM이 2004년 미국의 아티산컴포넌츠를 인수할 때 획득한 반도체 설계의 원천 기술이 이 조항에 걸린 것이다. 이제 화웨이는 스스로 스마트폰용 반도체를 설계해야 한다. 쉽지 않은 길이다.
 

미·중 분쟁에 새우 등 터지는 한국
기술 냉전·디지털 철의 장막 도래
진실의 순간, 운명적 선택 다가와
자칫 삐끗하면 한 방에 훅 갈수도

구글이 안드로이드 공급을 중단한 것도 치명타였다. 안드로이드 OS(운영체제) 없이는 유튜브와 구글맵이 불가능하다. 호환성과 안정성도 의심받아 스마트폰 수출이 어려워진다. 삼성전자조차 한때 자체 OS인 ‘바다’와 ‘타이젠’을 개발했지만 설 자리를 잃어버렸다. 화웨이의 런정페이 회장은 “미국 없이도 살아남을 수 있다”고 큰소리친다. 그러려면 애국심에 호소해 중국 시장에서 최대한 버틸 수밖에 없다. 문제는 내부의 적이다. 중국 스마트폰 시장 30%를 차지했던 화웨이가 휘청거리자 그 공백을 뛰어난 가성비에다 안드로이드 OS로 무장한 샤오미·오포·비보 3형제가 빠른 속도로 잠식하고 있다.
 
화웨이 사태는 미·중 무역분쟁이 관세 보복을 넘어 기술 냉전, 경제 전쟁으로 치닫는 신호탄이다. 중국은 희토류와 미 국채 매각 카드로 위협하지만 절대적으로 불리한 싸움이다. 희토류는 환경문제만 각오하면 미국·호주 등도 언제든 생산해낼 수 있다. 중국이 미 국채를 던지더라도 미 연방준비은행(FRB)이 2008년처럼 발권력을 동원한 자산(채권) 매입으로 대응할 수 있다. 중국으로선 무엇보다 일본과 영국 등이 미국의 봉쇄에 동참하는 게 뼈 아프다. 자칫 디지털 철의 장막에 갇힐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동안 화웨이가 기술 훔치기와 베끼기를 일삼았고, 중국 역시 거대한 자국 시장을 무기로 외국 기업에 기술 이전 등 불공정 행위를 강요해온 만큼 이번 기회에 중국의 반칙을 확실히 차단해야 한다는 국제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이번 싸움은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게 분명하다. 어차피 인공지능과 자율주행, 5G 같은 미래기술은 승자독식이다. 글로벌 패권의 분수령이 될 이번 기술 냉전은 미·중 모두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승부처다. 아이폰의 70%가 중국에서 생산되고 퀄컴 매출의 67%, 마이크론 매출의 57%가 중국에서 일어난다. 그럼에도 트럼프가 25%의 관세를 때리고 부품 공급을 차단하는 극약처방을 불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트럼프와 시진핑의 정치적 운명도 걸려 있다.
 
문제는 우리 기업들이다. 최근 화웨이 고위 임원들이 방한해 “반도체·OLED(유기발광다이오드)·카메라 모듈 등을 차질없이 공급해 달라”며 예방주사를 놓고 갔다. 중국 공산당 핵심 간부들도 잇따라 한국을 찾아 “중국 기업과 거래를 중단하면 보복 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압박했다. 중국 상무부는 아예 ‘블랙 리스트’를 예고했다. 중국 기업에 대한 봉쇄나 부품 공급 중단을 할 경우 제재하겠다는 것이다. 한국 기업은 미·중 양쪽의 눈치를 봐야 할 난감한 입장이다. 반사 이익에 곁불을 쬐기는커녕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질 판이다.
 
어제 중국 외교부는 한국 외교부 출입 기자들 앞에서 "한국은 올바른 판단을 해야 한다”고 위협했다. 사드 보복의 악몽까지 들먹였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 예방 외교가 중요하다. 그런데도 정작 우리 정부는 보이지 않는다. 정보도 없고 전략도 안 보인다. 청와대 정의용 안보실장은 지난해 3월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맥매스터에서 볼턴으로 바뀐 이후 사실상 대미 채널이 끊겼다고 한다. 대신 한·미 자동차 협상 때 멀베이니 예산국장(현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과 인연을 맺은 김현종 안보실 2차장이 대미 조율을 도맡는 분위기다. 대중 외교도 깜깜하다. 대통령의 최측근인 노영민·장하성 실장이 번갈아 주중 대사를 맡았지만 시진핑 주석의 6월 방한조차 오리무중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인형 같이 존재감이 없다”는 쓴소리나 듣는다.
 
미·중 사이에서 언제 운명적 선택을 강요받는 진실의 순간이 닥칠지 모른다. ‘안보는 미국-경제는 중국’이라는 기존 프레임으론 경제도 망치고, 동맹도 흔들리는 이중 위기에 빠질 수 있다. 정부가 “기업의 선택에 개입할 수 없다”며 마냥 책임을 떠넘기기도 어렵다. 지금은 청와대와 외교 라인이 대북 제재를 풀고 쌀 지원에 온통 매달려 있을 때가 아니다. 당분간 미·중 분쟁의 유탄을 피하는 데 모든 외교 자원을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줄을 서려면 정확한 정보와 냉정한 판단 위에 제대로 줄을 서야 한다. 자칫 삐끗하면 언제 한 방에 훅 갈지 모를 살얼음판이다.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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