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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기홀은 항상 탐험 중…청소년·재소자도 잊지 않죠

카네키홀 기금 마련 행사에서 연설 중인 길린슨 감독. [사진 카네기홀]

카네키홀 기금 마련 행사에서 연설 중인 길린슨 감독. [사진 카네기홀]

총 35년. 뉴욕 명문 공연장 카네기홀 수장인 클라이브 길린슨(73) 경영·예술 감독이 영국과 미국을 대표하는 예술 단체를 이끌어온 기간이다. 그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단장으로 21년간 일했고, 카네기홀 경영을 14년째 맡고 있다.
 
길린슨이 두 단체의 리더로서 해온 일 자체가 ‘예술 경영의 교과서’라 할 만하다. 런던심포니의 첼로 단원이던 그는 1984년 당시 오케스트라가 심각한 재정난에 빠졌을 때 단장을 맡은 이후 오케스트라를 단단한 단체로 키워냈다. 스타 지휘자와 협연자를 잇달아 무대에 세우고, 오케스트라의 자체 음반 레이블과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2005년 카네기홀 이사회는 “(길린슨이)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이끌며 매년 후원금 모금 등 재정적인 성과는 물론 교육 프로그램의 설계와 실행에서 탁월한 실력을 보여줬다”고 평가하며 그를 수장으로 영입했다.
 
카네기홀이 2012년 창단한 청소년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길린슨(맨 오른쪽). [사진 크리스 리(Chris Lee) 촬영]

카네기홀이 2012년 창단한 청소년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길린슨(맨 오른쪽). [사진 크리스 리(Chris Lee) 촬영]

그의 성공적인 행보는 현재 카네기홀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카네기홀의 티켓 판매 수익은 지난해 1755만 달러(209억원)였다. 2014년 1437만 달러(171억원)였던 것과 비교하면 꾸준히 올라가고 있다. 공연장 대표의 가장 큰 임무로 꼽히는 후원금 모금도 지난해 4110만 달러(490억원)를 웃돌았다. 그중 뉴욕 시 등 정부 지원금은 1%(43만 달러)다. 길린슨 감독의 리더십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최근 뉴욕에서 중앙일보와 만난 길린슨 감독은 “카네기홀은 내가 오기 전에 이미 세계 일류였다. 하지만 그대로 고립될 위험은 있었다. 나는 탐험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카네기홀 후원자(왼쪽)와 대담하는 길린슨. [사진 크리스 리(Chris Lee) 촬영]

카네기홀 후원자(왼쪽)와 대담하는 길린슨. [사진 크리스 리(Chris Lee) 촬영]

카네기홀 수익성을 높인 수장으로 꼽힌다. 하지만 처음에 공들인 일은 돈 되는 사업이 아니었다고.
“먼저 시작한 것은 음악대학 졸업생을 뽑아 훈련하고 직업을 찾아주는 펠로십 프로그램이었다. 졸업생들은 나중에 뉴욕 내의 공립학교에 음악을 가르치는 일자리를 얻었다. 또 무료로 참여하는 청소년 오케스트라 NYO(National Youth Orchestra)-USA를 만들어 거장 지휘자와 함께 연주하게 했다. 또 음악가들이 교도소 수감자들과 음악을 함께 만드는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카네기홀의 사회 참여 프로그램 비중이 매우 큰 것 같다.
“한 시즌(9월~이듬해 5월) 카네기홀이 기획한 공연이 170회라면, 사회 참여 프로그램 무대는 500여 회에 이른다. 카네기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아이들만 60만 명에 이른다.”
 
이토록 공익 프로그램에 비중을 두는 이유는.
“카네기홀을 맡았을 때 ‘카네기홀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대신 ‘음악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했다. 청중을 여행시키고 싶었다. 그저 그들이 좋아하는 곡을 듣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호기심을 자극해 새로운 걸 해보고 싶게 만들고 싶었다.” 그는 “단지 더 많은 사람을 공연장에 끌고 오는 것을 넘어서 주변 사람들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게 음악의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40년간 첼리스트로 활동했는데.
“경영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단장은 그저 내가 소속한 단체의 재정난을 돕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일을 하면서 음악에 대한 내 가치관을 남들에게 알릴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매력을 느꼈다.”
 
카네기홀 새 시즌 프로그램을 발표하는 길린슨(왼쪽). [사진 크리스 리(Chris Lee) 촬영]

카네기홀 새 시즌 프로그램을 발표하는 길린슨(왼쪽). [사진 크리스 리(Chris Lee) 촬영]

좋은 콘텐트를 위한 카네기홀의 전략은.
“무엇보다 대화를 중시한다. 연주자와 경영자는 서로 절실한 계획이 무엇인가를 공유해야 한다. 지난 시즌 피아니스트 유자 왕은 오랜 대화를 나눈 끝에 카네기에서 바이올린 듀오, 코미디 쇼, 독주 등을 다 했다. 그가 하고 싶던 것들을 이으면 연주자의 스토리가 만들어지고, 청중은 거기에 반응한다. 이것은 경영자인 나에게도 매력적인 계획이다.”
 
후원금을 늘리는 일이 특히 쉽지 않았을 듯하다.
“경영을 시작하기 전 내가 절대 해보지 않았던 두 가지 일이 자금 조달, 연설이다. 그런데 연설도 대부분 돈을 모으기 위한 일이다. 내가 하려는 일에 얼마나 절실한지가 후원금 모금의 성패를 가른다. 비전에 대해 강력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카네기홀의 혁신적 사업은 감독 혼자서 밀어붙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먼저 그의 상관이자 미국의 보수적 집단인 카네기홀 이사회를 설득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사회는 기부자들과 예술가로 구성돼 있다.
 
길린슨은 성공의 비결로 “모든 일을 동시에 시작하지 않은 것”을 꼽았다. 그는 “아이디어가 수없이 있었지만 각자 다른 시기에 시작했다”며 “한 프로젝트를 잘 시작하고 나면 다음 프로젝트 때는 이사진이 나를 좀 더 믿어줬다. 이렇게 서서히 신뢰를 쌓았다”고 말했다.
 
앞으로 계획은.
“더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당장은 하반기에 떠날 청소년 오케스트라의 유럽 투어를 준비 중이다. 음악으로 사람들의 삶에 진정으로 영향을 끼치는 것이 최종 목표다.”
 
카네기홀은 세계의 음악가들에게 꿈의 무대다. 이 상징적 공연장을 ‘탐험’이라는 키워드로 이끌어온 길린슨 감독은 이제 공연장을 오케스트라처럼 이끌고 전세계를 누빌 예정이다. 세계 일류도 얼마든지 더 도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카네기홀
철강 사업으로 부호가 된 앤드루 카네기가 1891년 맨해튼 미드타운에 세웠다. 아이작 스턴 홀, 잔켈 홀, 웨일 홀이 있다. 차이콥스키가 개관을 지휘했고 라흐마니노프·토스카니니·비틀즈 등 내로라하는 스타가 무대에 섰다.

 
뉴욕=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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