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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철의 이코노믹스] 시장은 기준금리 발언보다 채권시장 흐름을 본다

신뢰 필요한 금융통화위원회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경기침체의 그림자가 짙어지는 가운데, 종잡을 수 없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기준금리 조정 발언으로 금융시장이 거듭 흔들렸다. 기준금리는 경기변동에 순응해 선제적으로 조정돼야 나라 경제가 순조롭게 돌아간다. 정책금리가 거시경제 흐름과 엇갈려 조정되면, 금융부문과 실물부문이 엇박자를 내면서 경제 안정을 해친다. 이래서는 가계소비·기업투자 촉진도 기대하기 어렵다.
 
최근 금통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지난 2개월을 복기해보자. 한국은행 총재를 겸임하는 이주열 금통위 의장은 3월 25일 국회 업무보고 과정에서 “상황이 많이 나쁘다면 (금리 인하를) 검토할 수 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이틀 뒤인 27일 시장금리인 국고채 3년 금리가 1.80%에서 0.12%포인트 낮은 1.68%로 급락해 정책금리인 기준금리(1.75%)보다 더 낮아졌다. 금융시장의 비정상 증상인 ‘장단기금리 역전’ 현상이 벌어졌다. 다시 4월 1일에는 “지금은 기준금리 인하를 검토할 시점이 아니다”라며 정책 기조는 바뀐 것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자 국고채 3년 금리는 4월 19일 1.78%까지 치솟았다. 금통위 발언에 따라 금리가 춤을 추는 장면이다.
 
그러다 4월 25일에는 올해 1분기 실질성장률이 -0.3%로 발표되자 국고채 금리가 4월 30일에는 다시 기준금리 아래인 1.70%로 하락해 장단기 금리가 재역전됐다. 그러자 다음날인 5월 1일 금통위는 “한국경제의 기초체력 우려를 감지하지 못해 기준금리 인하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며 “채권시장이 앞서가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자 5월 2일 국고채 금리는 다시 1.74%로 올라 기준금리와 엇비슷해졌다. 마침 이 무렵 정부에서는 “한국경제 펀더멘털이 좋다”는 발언이 나왔다. 외환위기로 내몰렸던 1997년의 우울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펀더멘털 아닌가.
 
하지만 외국계 은행을 비롯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시각을 달리했다. 한국경제 성장률을 2%대 초반으로 하향 조정하면서다. 지난달 31일에는 국고채 금리는 1.59%까지 떨어지며 장단기금리 재역전 현상이 더욱 심화하고 있다. 금통위와 채권시장 사이에 줄다리기가 이어지며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사태가 벌어진 셈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금융정책 최고책임자의 논리적 타당성이나 통계적 근거를 알 수 없는 기준금리 관련 발언으로 채권시장이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덩달아 갈팡질팡했다. 부채에 시달리는 한계 가계나 영세 기업은 안절부절할 수밖에 없다. 거시경제 여건에 비추어 그처럼 높은 금리 급변동은 비상사태에서나 있을 법한 흐름이다. 오죽하면 “금융정책 당국이 한국경제 현장 상황을 모르거나 아니면 애써 외면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오는 지경 아닌가.
 
올해 1분기 설비투자는 전 분기 대비 10.8%나 줄었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 사태 이래 가장 높은 감소율이다. 예상 경제 성장률 2% 초반에다 물가상승률 0.5% 내외인 상황에서 정책금리 1.75%는 높아도 너무 높은데, 가산금리를 더해 정해지는 평균 대출금리는 올해 3월 현재 3.42%에 달한다. 시중은행 대출금리가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을 더한 값보다 크게 높은 환경에서 기업투자 증가를 바라는 것은 어이없는 일이다. 기업은 최소한 자본비용보다는 높은 이익을 낼 가능성이 보여야 투자를 늘린다. 이익은커녕 손실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투자가 늘어나길 바란다면 참으로 난감한 일 아닌가.
 
시장에서는 “중앙은행이 고리대금업을 할 리도 없고 그 까닭을 알 수 없다”며 답답해한다. 한국의 기준금리는 오로지 한국 경제가 원활하게 순환되도록 결정돼야지, 다른 목적과 다른 나라를 따라 정해지면 낭패가 뒤따른다. 저성장·저물가 상황에서 소비 수요가 줄고 있는데 고금리를 감당하면서 가계부채가 줄어들거나 투자가 늘어나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금통위의 우왕좌왕 립서비스와 기준금리 아래로 시장금리가 떨어지는 사태는 어떤 메시지를 주는지 생각해보자. 먼저 시장에서 ‘기준금리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헤아리지 못하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나라 경제의 순조로운 순환을 기대하려면 시장이 거시경제 여건 변화와 금융정책 방향을 예상할 수 있어야 한다. 금통위가 이 방향을 안내해야 바람직하다. 그러려면 금통위와 시장의 끊임없는 대화로 신뢰가 두터워져야 한다. 만약 시장의 예상과 달리 정책금리를 조정해 시장을 어리둥절하게 한다면 한국 경제는 내일을 기약하기 어렵다.
 
기준금리와 국고채 금리 역전이라는 비정상 상황을 볼 때, 금통위보다는 채권시장 시그널이 한국 경제의 미래 상황을 정확하게 내다보고 있다고 봐야 한다. 게다가 오락가락하는 발언을 보면서 정책금리 결정에 대한 금통위 주의·주장이 무엇인지 의문을 갖게 한다. 긴급 상황이 아니라면 시장금리가 정책금리인 기준금리 아래로 하락하는 ‘비정상 사태’는 있어서도 아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어야 한다. 기준금리보다 국고채 금리가 더 낮게 하락했다는 사실은 통화금융정책이 한국경제 상황 변화에 미리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무릇 정책은 시장을 이기려고 해도 안 되고 시장을 이겨서도 안 된다. 기준금리 결정에서 정책적 판단은 하나의 변수가 되기는 하지만, 무엇보다 거시경제 흐름에 따라 정해져야 마땅하다. 어느 나라든 시장 참여자 자신의 책임과 계산으로 정해지는 시장금리가 경제 현상을 판단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에서 정책당국보다 뛰어나기 마련이다. 시장에서 판단 착오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시장 자율 기능이 곧바로 작동해 오류가 교정된다.
 
실물과 금융부문의 연결고리인 금리는 가계소비·기업투자는 물론 국가 간 자금 유출입을 포함해 경제 전 분야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금리조정은 서둘러서도 안 되고 때를 놓쳐서도 안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거꾸로 시장이 금통위 눈치를 살피며 먼저 움직이는 모습이 자주 보이는데 정말이지 안쓰럽다. 금통위가 괜한 위엄을 부리기보다 경제의 참모습을 선제 반영해 시장을 순조롭게 순환하도록 하는 일이 금통위 위상을 진정 높이는 길이다. 경제 상황을 가장 신속하고 빠르게 전달하는 채권시장 시그널을 예의 관찰하고 존중해야 한다.
 
기준금리 기준 충실히 따라야
각국 중앙은행은 정책금리를 경제 상황에 맞게 조율하기 위해 테일러 준칙(Taylor’s rule)을 원용한다. ‘GDP갭’(잠재 성장률-실제 성장률)과 ‘인플레이션 갭’(물가안정목표-실제 물가상승률)을 통해 정책금리의 높고 낮음을 추정하는 방안이다.  
 
실제 성장률이 잠재 성장률보다 높거나 물가상승률이 물가안정목표보다 높은 상황이라면 기준금리를 올려 시장금리 상승을 유도함으로써 경기와 물가 안정을 도모한다. 반대일 경우 기준금리를 내려 경기를 진작시키려 한다. 만약, ‘기준금리의 기준’이 무시된다면 경기침체 또는 경기과열을 막을 장치가 없어진다. 2017년 11월과 2018년 11월 두 차례 이해할 수 없었던 기준금리 인상이 당시 경기후퇴 그림자를 고려했는지 많은 의문을 남기는 이유다.
 
시장금리는 자금 수요자와 공급자의 책임과 계산으로 정해지고 기준금리는 금통위에서 정책목표에 따라 결정된다. 시장과 금통위 간 일련의 줄다리기 과정에서 지난달 31일 국고채(3년)금리가 기준금리보다 무려 0.16% 포인트 낮은 장단기금리 역전 현상을 보였다는 점에서 시장의 집합적 판단이 한층 정확하고 신속했음을 알 수 있다. 저성장·저물가를 고려하면 현재 금리가 실질 고금리인데도, 이를 부인하려는 관성적 경향은 뿌리 깊은 고성장·고물가 타성 때문이다.
 
금융부문이 실물부문을 충실하게 반영해야 금융 불안정도 시장 기능에 따라 해소될 수 있다. 금융과 실물이 엇박자를 낸다면 중장기 금융 불안은 더 심각해진다. 가계부채 증가, 대기성 자금 부유 같은 금융 불안정 현상은 금통위가 장기간에 걸쳐 금리를 올릴 것 같은 신호를 계속 보낸 까닭도 크다.
◆신세철
전 금융감독원 조사연구국장. 『불확실성 극복을 위한 금융투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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