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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트렌드] 신진 디자이너, 고대 유적 그림 ‘꿀꺽’…분하면 유명해져라?

표절과 창작 사이, 패션 디자인
현대미술의 거장, 피카소와 마티스는 생전엔 자신의 작품을 따라 했다며 서로 각을 세웠다고 한다. 심지어 함께 집에서 식사할 땐 도용 당할까 봐 작품을 미리 숨겼다는 얘기도 있다. 창작자에게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지만 표절은 껄끄러운 사안이다. 문제는 창작물을 보호하는 저작권 등록 제도가 마련된 오늘날까지도 표절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패션업계가 디자인 도용 사건으로 또다시 들썩이고 있다. 유명 제품을 베끼는 짝퉁과 달리 이번에는 유명 디자이너나 브랜드가 잘 알려지지 않은 디자인을 무단으로 사용한 경우다.
 
최충훈 디자이너의 창작물 ‘행복한 음악’. [사진 최충훈 디자이너]

최충훈 디자이너의 창작물 ‘행복한 음악’. [사진 최충훈 디자이너]

이상봉 디자이너 측이 날염을 요청한 디자인. [사진 제보자]

이상봉 디자이너 측이 날염을 요청한 디자인. [사진 제보자]

“사장님~ 이상봉 디자이너 쪽에서 의뢰한 날염이 사장님의 디자인과 똑같아 보이는데 서로 이야기된 거예요?” 패션 브랜드 두칸을 운영하는 최충훈 패션 디자이너가 지난 2월 한 프린트 업체에서 받은 전화 내용이다. 최 디자이너는 프린트 업체로부터 이상봉 디자이너 측이 의뢰한 프린트 사진과 영상을 받아 보고 가슴이 철렁였다. 지난해 한국저작권위원회에서 저작권등록증 인증을 받은 자신의 창작물이었기 때문이다.
 
계약서 작성 요구 무시하고 써
최 디자이너는 이 디자이너의 컬래버레이션 제안으로 지난해 ‘2018 부천 만화축제 패션쇼’에 선보일 의상의 아트웍(삽화 일종)을 디자인했다. 최 디자이너는 아트웍 작품을 상업적으로 판매할 계획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계약서는 쓰지 않았다. 최 디자이너는 “쇼가 끝난 후 공식적인 계약서 작성을 요청했지만 ‘수고했다. 멋진 작품이 나올 거다’라는 이 디자이너의 애매한 대답뿐이었다”며 “이후 제 창작물과 같은 프린트 의상을 이 디자이너 측이 맞춤 판매를 진행한다는 제보를 지난 1월에 이어 2월에도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에 최 디자이너가 문제를 제기하자 이 디자이너는 “전후 사정을 알지 못했던 맞춤 관련 원단 담당 직원의 실수”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지난 4월 열린 ‘서울 365 이상봉 패션쇼’ 무대에 최 디자이너가 만든 아트웍이 그려진 신발들이 다시 올려졌다.
 
최 디자이너는 “이를 주변에 얘기 못 하고 속으로 앓고 있던 중에 내가 디자인한 신발 창작물을 이 디자이너가 자신의 무대에 또다시 올린 사실을 알고 모욕감을 느꼈다”며 “열정을 도둑맞은 기분이었다. 나 같은 피해자가 또 나오지 않게 세상에 알려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글로벌 명품 브랜드도 도마에
구찌에서 판매한 티셔츠. [사진 라예진 기자, 중앙포토]

구찌에서 판매한 티셔츠. [사진 라예진 기자, 중앙포토]

이 같은 무단 사용은 유명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구찌는 2017년 매출 기준 세계 2위 명품 브랜드 반열에 올랐다. 그 배경엔 중후하지만 고루했던 기존 디자인에서 벗어나 뱀·벌 모양의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호평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사르테아노의 시립 고고학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에트루리아 지하 무덤 벽화. [사진 라예진 기자, 중앙포토]

이탈리아 사르테아노의 시립 고고학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에트루리아 지하 무덤 벽화. [사진 라예진 기자, 중앙포토]

하지만 이탈리아 한 작은 도시 주민들은 이런 구찌의 성공 소식에 씁쓸한 웃음을 짓고 있다. 2017년 구찌가 공개한 의상들에 그려진 뱀 그림이 주민들이 사는 지역에서 발견된 고대 벽화와 같은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벽화에 나오는 뱀은 몸통 하나에 세 개의 머리가 달린 모습이다. 이 그림은 에트루리아 지하 무덤 벽화다. 이탈리아 토스카나주 시에나현에 있는 작은 마을 사르테아노의 시립 고고학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기자가 현장에서 구찌 의상에 새겨진 그림을 벽화와 비교해 보니 모양부터 색상까지 모두 같았다.
 
2017년 그래미 시상 식에 뱀 그림이 그려진 구찌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가수 샌 티골드. [사진 라예진 기자, 중앙포토]

2017년 그래미 시상 식에 뱀 그림이 그려진 구찌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가수 샌 티골드. [사진 라예진 기자, 중앙포토]

현장에서 만난 사르테아노 시장은 이에 대해 “2017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두 가수가 벽화와 똑같은 뱀 그림이 그려진 구찌 의상을 입어 화제가 된 것을 알고 있다”며 “구찌가 어떤 의도로 벽화를 따라 그렸는지, 의미는 알고 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한 주민은 “구찌 의상의 그림은 기원전 650년에 시작된 에트루리아 문명의 유산”이라며 “이를 관련 박물관이나 지역 사회의 이해를 구하지 않고 상업적으로 판매하고 있어 달갑지 않다”고 말했다.
 
나이키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지난달 파나마 원주민들이 나이키의 디자인 도용을 주장하자 나이키는 관련 제품 발매를 취소했다. 파나마의 한 원주민인 구나족은 자신들의 전통 문양 ‘몰라’를 나이키가 승인을 받지 않고 도용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나이키는 디자인 출처를 밝히지 않은 것에 사과한다는 내용을 밝히고 제품 발매를 중단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의 패션디자인학과 교수는 끊이지 않는 패션업계 표절에 대해 “다른 산업과 달리 패션디자인은 유행의 변화가 빠르기 때문에 이를 서로 따라가려다 다른 업체와 유사한 디자인을 내놓는 경우가 빈번하다”며 “하지만 색상·소재는 물론 세부적인 부분까지 따라 하는 것은 도용이며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하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박범일 글로벌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창작물은 저작권법에 따라 보호받는데 벌칙 조항 136조에 의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범칙금을 받을 수 있다”며 “저작권은 저작물을 창작할 때부터 발생하지만 표절·도용 같은 분쟁에 대비하기 위해 창작을 공표하는 저작권 등록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라예진 기자 raye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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