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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이 취객 집합소? 차라리 주취자 전용 의료실 만들라

기자
조용수 사진 조용수
[더,오래] 조용수의 코드 클리어(21)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응급의료센터 앞에 환자를 긴급 이송한 119 구급대 앰뷸런스가 대기하고 있다. 112는 의식이 없는 취객을 119에 인도하고, 119는 그를 데리고 응급실로 온다.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사진) [연합뉴스]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응급의료센터 앞에 환자를 긴급 이송한 119 구급대 앰뷸런스가 대기하고 있다. 112는 의식이 없는 취객을 119에 인도하고, 119는 그를 데리고 응급실로 온다.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사진) [연합뉴스]

 
살면서 한 번쯤 인사불성으로 취한 사람을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필시 아름다운 기억은 아니지 싶다. 땅바닥에 나뒹굴어 무릎이 까진다든가, 둘러업은 등 뒤에 토한다든가…. 부축 정도로 해결할 수준이면 양반이다. 몸을 완전히 놓아버린 경우 자리에서 일으키기조차 쉽지 않다. 어릴 적에 시체처럼 쓰러진 친구를 바래다준 적이 있는데, 혼자 힘으론 역부족이었다. 길바닥에 고꾸라진 녀석 곁에 쪼그리고 앉아, 술이 깨길 기다리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응급실에서 주사 부리는 취객들
그래도 죽은 듯이 쓰러져 있으면 난동 부리는 경우보다 낫다. 여기저기 시비를 걸고, 닥치는 대로 때려 부수면 답이 없다. 취해서 난동 부리는 사람이 하나만 생겨도, 십수 명 모인 술자리가 파투나기에 십상이다. 취객과 싸울 수도 없는 노릇. 말리려다 한 대 맞으면 하소연할 곳도 없다. 피하는 게 유일한 상책이다. 이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데, 심지어 응급실에서까지 주사를 부린다. 당장 생명이 경각에 달린 환자가 즐비한 곳에서.
 
믿기 어렵겠지만, 응급실엔 취객이 많다. 코가 삐뚤어진 채 거리에서 잠들면 종착지는 보통 집이 아닌 응급실이 된다. 신고가 들어오면 112는 의식이 없다며 119에 인도하고, 같은 이유로 119는 응급실로 달려온다. 만취 후 집에서 토하는 아들을 데려오는 어머니도 있다. 조금이라도 고통을 줄여주고자 하는 모정 때문이다.
 
술기운에 넘어지고 긁혀서 다친 사람은 치료를 이유로 응급실을 찾는다. 술을 빨리 깨겠다며 단순히 링거만 놔달라고 조르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응급실은 취객의 집합소다. 특히 야간에는. 대한민국 응급실의 정의를, ‘응급환자’와 ‘취객’을 보는 곳으로 바꿔야 할 판이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은 취객의 난동에 너그럽다. 살면서 한 번쯤은 술 먹고 응급실 신세를 질지도 모르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냥 남의 일에 나서기 싫어서일까? 아무튼 의사와 취객의 실랑이는 하루가 멀다고 일어나지만, 대다수는 묵묵히 자신의 진료 차례를 기다린다. 응급실 취객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조차 없다. 음주운전엔 단호한 처벌을 요구하지만, 응급실 취객에겐 너그러운 관용을 베푼다.
 
보라매병원 응급실에서 구급차 이송 요원들이 의료진의 통제에 따르지 않는 한 환자의 손발을 침대에 묶고 있다. 취객이 난동을 부리면 보통 4~5명의 의료진이 달려들어 진압한다. 그만큼 진짜 응급환자에게 가야 할 의료 자원과 의료진이 적어지는 것이다.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사진) [연합뉴스]

보라매병원 응급실에서 구급차 이송 요원들이 의료진의 통제에 따르지 않는 한 환자의 손발을 침대에 묶고 있다. 취객이 난동을 부리면 보통 4~5명의 의료진이 달려들어 진압한다. 그만큼 진짜 응급환자에게 가야 할 의료 자원과 의료진이 적어지는 것이다.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사진) [연합뉴스]

 
고백하건대, 나는 취객이 있으면 급한 환자에 대한 처방을 제때 내지 못한다. 능력이 부족한 의사라고 욕해도 별수 없다. 상처 난 얼굴을 닦아줬더니, 소독약을 뭘 썼냐며 시비 거는 취객이 있었다. 한 시간 넘게 모니터에 머리를 툭툭 들이받는 통에 다른 환자를 볼 수 없었다. 십수 명 모인 술자리도 단 한 명의 난동을 어찌 못하고 파투나는 법인데. 의료진이 무슨 수로 취객을 감당하겠는가.
 
한 명의 난동꾼을 말리겠다며 네댓 명의 의사 간호사가 달려들지만. 기실 그 의료진이 있어야 할 곳은 환자 곁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취객을 탓하지 않는다. 괜히 휘말려 시비 붙느니 조금쯤 참는 걸 기꺼이 감수한다.
 
응급실, 응급환자에게 돌려줘야
곱게 잠만 자다 술 깨서 돌아간다면 어떨까? 난동만 부리지 않으면 괜찮지 않을까? 하지만 이들도 의료 자원을 잡아먹는 건 마찬가지. 그들이 차지한 침상, CT, MRI실은 다른 뇌출혈이나 뇌경색 환자를 받아야 할 자리다. 한시가 급한 환자의 순번을 술 취한 사람이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응급실은 결코 술 깨기 위한 장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차라리 주취자 전용 의료시설을 만들자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그런 곳에서 누가 일할지 모르겠지만…. 응급실은 제발 응급환자에게 돌려주었으면 좋겠다.
 
조용수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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