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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과외 알바는 내 경험담, 사우나 있던 고급빌라였다"

'기생충'으로 한국영화 최초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을 29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났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기생충'으로 한국영화 최초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을 29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났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서스펜스의 대가 알프레드 히치콕도 초기엔 멜로‧코미디까지 찍다가 어느 시점부터 자신의 세계를 좁혀갔죠. 저는 이제 일곱 편째지만 어느덧 50대이고 뭔가 좋은 의미로 좁혀서 깊게 가야 하는 시점이 오지 않았나. 이번 영화 끝나고 어렴풋이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회 풍자 영화 ‘기생충’(5월 30일 개봉)으로 지난달 칸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차지한 봉준호(50) 감독의 말이다. 개봉 전 서울에서 만난 그는 “황금종려상은 워낙 쟁쟁한 거장이 많아서 꿈도 못 꿨다”면서도 “무슨 상이든 수상에 대한 욕심은 있었다. 한 번도 받아본 적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처음 받는데 좀 심하게 받았어요. 앞으로가 걱정이죠.” 들뜬 눈빛에서 설렘과 두려움이 동시에 묻어났다.  
 
'극한직업'보다 빠르다, 나흘만에 336만
영화 '기생충' 기택네 화장실에서 기정(박소담)과 기우(최우식) 남매가 와이파이를 찾고 있다. 정화조 압력 탓에 변기가 가장 높은 곳에 놓인 구조는 실제 여러 반지하를 조사해서 만든 것.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영화 '기생충' 기택네 화장실에서 기정(박소담)과 기우(최우식) 남매가 와이파이를 찾고 있다. 정화조 압력 탓에 변기가 가장 높은 곳에 놓인 구조는 실제 여러 반지하를 조사해서 만든 것. [사진 CJ엔터테인먼트]

그가 각본까지 쓴 이번 영화는 전원 백수 기택(송강호)네 가족이 IT기업 CEO 박사장(이선균)네 가족과 뒤얽히며 벌어지는 블랙코미디. 오늘날의 빈부 양극화를 반지하와 대저택 등 수직적 공간에 명징하게 새겨냈다. 할리우드 스타들과 영어로 찍은 SF 판타지 ‘설국열차’(2013) ‘옥자’(2017)에 이어 10년 만에 그가 한국 무대로 돌아온 복귀작이다.  
 
국내 흥행도 뜨겁다. 개봉과 동시에 박스오피스 1위에 올라 나흘 만에 300만 관객을 넘어섰다. 올해 초 개봉해 역대 흥행 2위가 된 영화 '극한직업'보다 하루 빠르고, 역대 흥행 3위 '신과함께-인과 연'(2018)보다는 하루 느린 속도, 봉 감독의 영화 중에는 935만 관객을 모은 '설국열차'와 비슷한 속도다. 
 
봉 감독이 말하는 '봉준호표 장르' 특징
영화는 기우의 대학생 친구 민혁(박서준)이 할아버지가 수집하는 수석을 기택네에 선물로 들고 오면서 시작된다. 주연 최우식과 실제 친구 사이인 박서준은 극중에도 절친한 사이를 연기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영화는 기우의 대학생 친구 민혁(박서준)이 할아버지가 수집하는 수석을 기택네에 선물로 들고 오면서 시작된다. 주연 최우식과 실제 친구 사이인 박서준은 극중에도 절친한 사이를 연기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할리우드 장르 법칙을 독특하게 비틀어 동시대를 풍자해온 그의 연출 스타일이 어느 때보다 뚜렷이 발현된 영화다. 칸에선 “봉준호가 곧 장르”란 평가도 나왔다.  
 
그는 “이번 영화에 대한 최초의 스파크는 잘 생각나지 않지만, ‘설국열차’를 하던 2013년 부자와 가난한 가족이 서로 침투하고 스며드는 얘기를 떠올렸다. 기생충이고 싶었던 사람은 없다. 자본주의 세상에 살면서 고통받는 우리 삶 자체를 담으려 했다”고 강조했다.  
 
스스로 생각하는 ‘봉준호표 장르’의 특성은. 
“우리 생활 속에 이미 여러 장르가 있잖나. 직장 분위기가 안 좋으면 오후 2시부터 호러가 됐다가 퇴근 후 연인을 만날 땐 멜로가 된다. 직접 장르를 의식하기 보단 그런 삶의 감정, 희로애락으로 접근하며 시나리오를 쓴다.”
 
과외·지하공간은 실제 경험 녹여내
전혀 마주칠 일 없을 것 같았던 두 가족은 기택네 장남 기우가 박 사장네에 과외 면접을 가면서 뒤얽히게 된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전혀 마주칠 일 없을 것 같았던 두 가족은 기택네 장남 기우가 박 사장네에 과외 면접을 가면서 뒤얽히게 된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두 가족 사이의 사건은 예측불허다. 결말을 미리 생각하고 써나갔나.
“예정된 운명을 향해 돌진하기보단 실제 각본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전개 속으로 순차적으로 써나갔다. 이 영화에선 부잣집 사람들도 악마는 아니고 가난하다고 천사표도 아니다. 명확한 악당이 없는데도 경제적 문제로 파국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노트북을 놓고 쓴 시간은 4개월 정도지만 6년 동안 숙성기간을 거치며 여러 잔상, 느낌이 침전되어 들어왔다.”
 
기택네 장남 기우(최우식)가 박사장 집에 고액과외 면접을 보러 가는 일화는 실제 경험담에서 따왔다고.
“동선이 겹칠 일 없는 사람들이 만나게 되는 계기 중 하나가 과외다. 저는 대학 때 중학교 남학생한테 수학을 가르쳤다. 맨날 애랑 놀다가 두 달 만에 잘렸지만(웃음). 철문을 삐그덕 열면 정원이 나오는 고급 복층 빌라였다. 2층에 사우나도 있고 신기했다. 처음 사모님 면담 때 느낌이나 대리석 바닥의 감촉, 넓고 싸한 적막감이 참고가 됐다.”
 
조여정이 부잣집 사모님 연교 역을 맡았다. 극중 계단은 등장인물들이 다양한 비밀을 만나게 되는 중요한 공간. 봉 감독은 한국영화계 거목 김기영 감독의 영향이 있었다고 말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조여정이 부잣집 사모님 연교 역을 맡았다. 극중 계단은 등장인물들이 다양한 비밀을 만나게 되는 중요한 공간. 봉 감독은 한국영화계 거목 김기영 감독의 영향이 있었다고 말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이층집에 대비되는 지하 공간은 단편 ‘지리멸렬’(1994) ‘플란다스의 개’(2000)부터 즐겨 썼는데.
“이번엔 모두 세트였지만, 두 전작은 실제 부모님과 살던 아파트 지하실에서 찍었다. 애들은 쓸데없이 여기저기 가잖나. 어릴 적 아파트 지하실에 가보면 주민들이 버린 가구나 가전제품으로 경비아저씨들이 그럴듯하게 만든 휴식공간이 있었다. 쾨쾨하고 어둡지만, 공간 자체는 아파트 1층과 똑같이 되게 넓었다. 냉장고 열어보면 음식도 쫙 있고. 제가 친구 없이 외톨이다 보니 만화 그리다가 혼자 그런 데 가서 상상을 많이 했다.”
 
낯설고 이상하게…창작자가 믿을 건 본능
영화 '기생충'에서 글로벌 IT기업 CEO 박 사장(이선균)의 막내아들 다송(정현준).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영화 '기생충'에서 글로벌 IT기업 CEO 박 사장(이선균)의 막내아들 다송(정현준). [사진 CJ엔터테인먼트]

극중 인간 관계에 동원되는 소재들이 수석‧모스부호‧인디언 등 생경하다.
“수석은 자연 속 상태와 다르게 동물로 치면 박제돼 죽어있는 돌이다. 모스부호는 젊은 세대는 잘 모른다. 이미 죽어있는 것들의 느낌을 지속적으로 다룬 것 같다. 왠지 그렇게 찍어야 할 것 같은 느낌? 창작자에게 믿을 건 본능밖에 없다. 제가 조금 분열적이어서 배우한테도 이상한 동작을 주문하고 ‘왜 저래. 너무 이상해’ 하면서 좋아한다. 낯설고 특이한 아이디어를 우리 배우들이 설득력 있게 소화해줬다.”
 
이번 영화에는 시각적 묘사가 힘든 요소까지 동원했다. 기택의 반지하에서 나는 ‘냄새’가 한 예다. 온도도 있다. 클라이맥스 장면에서 송강호가 불그죽죽한 낯빛으로 감정을 폭발시킬 수 있었던 건 한여름 40도 불볕더위와 강렬한 자연광 덕분. 송강호는 “약간이라도 구름이 끼거나 광량이 떨어지면 찍지 않았다”면서 “봉 감독과 홍경표 촬영감독, 스태프들이 한 쇼트, 한 쇼트 이뤄낸 성과”라고 감탄했다.  
 
'봉테일'? 컨트롤 악마 아닙니다
기택네 반지하엔 하루에 아주 짧은 시간 빛이 들이친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기택네 반지하엔 하루에 아주 짧은 시간 빛이 들이친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디테일에 대한 경탄의 의미가 깃든 ‘봉테일’이란 별명에 봉 감독은 “정교한 건 좋지만, 영화가 정교하려고만 찍는 것은 아니다. 저를 지나치게 ‘컨트롤 악마’로 보는 시선이 부담스럽다”고 털어놨다. 
 
그런 그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꼽은 장면은 이것이다. “눈이 막 오면서 산에 올라가는 장면을 되게 오래 기다렸다 찍었어요. 계절이 확 바뀌는 이질적인 이미지에 제가 집착했죠. 9월에 촬영을 대부분 마쳐놓고 내내 후반작업 하면서 기다렸는데 와도 금방 녹더라고요. 하도 지쳐서 2월 15일에 무조건 찍는다, 정 안되면 특수효과‧CG(컴퓨터그래픽) 준비하자고 산에 딱 갔는데 기적적으로 눈이 왔어요. 극도의 괴로움 끝에 짜릿함. 그래 이런 게 영화지, 싶었죠.”
 
#봉하이브 팬덤,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기생충'의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당시 트위터에서 해시태그 '봉하이브(#Bonghive)'로 뭉친 봉 감독의 팬덤이 만든 이미지.봉 감독과 황금종려상을 뜻하는 '팜오도르'를 합쳐 '봉도르'라 적혀있다. [사진 트위터 캡처]

'기생충'의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당시 트위터에서 해시태그 '봉하이브(#Bonghive)'로 뭉친 봉 감독의 팬덤이 만든 이미지.봉 감독과 황금종려상을 뜻하는 '팜오도르'를 합쳐 '봉도르'라 적혀있다. [사진 트위터 캡처]

“#봉하이브(BongHive), 모여라.” 
미국 매체 인디 와이어는 지난 1일 ‘기생충’이 오는 10월 미국에 개봉한다고 보도하며 이렇게 운을 뗐다. ‘봉하이브’는 봉감독을 지지하는 해외 팬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미국에서는 10월 무렵이 이듬해 초 아카데미시상식을 앞두고 후보 선정을 노린 작품들이 개봉하는 시즌. ‘기생충’이 한국영화 최초로 아카데미시상식 최종 후보에 오를 가능성에 힘이 실린다.  
 
봉 감독도 배우 송강호, 임권택 감독 등과 함께 이 시상식을 주관하는 미국 아카데미협회 회원이다. 그는 “저도 매년 투표를 하는데 외국어영화상 쪽은 선정과정이 좀 복잡하다”면서 “한국영화가 최종 후보에 오르면 기쁘지만 우리가 집착해야 할 일은 아니”라고 소탈하게 말했다.  
 
'마더' 김혜자 선생님과 한 작품 더 하고파
영화 '마더'에 출연한 배우 김혜자 [영화사 제공]

영화 '마더'에 출연한 배우 김혜자 [영화사 제공]

그는 장편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를 촬영했던 1999년을 기준으로 “올해로 연출 데뷔 20주년”이라며 “지금으로부터 20년 더하면 일흔 정도다. 감독이 정년이 정해진 건 아니지만, 전작보다 못하다는 소리를 듣는 건 공포스럽다”면서 “축구로 치면 폼은 어느 정도 유지한 상태로 끝내고 싶다”고 했다.  
 
차기작은 미국과 한국 각 한 작품씩 준비하고 있다. 칸영화제 당시 한국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선 올해 개봉 10주년을 맞은 ‘마더’(2009)의 배우 김혜자에게 오래 전 약속한 작품도 있다고 귀띔했다. 
 
“‘마더’ 92회차 마지막 촬영날 꽃다발‧선물과 함께 콘티 한 장을 그려서 서류봉투에 담아 드렸어요. ‘이걸 다음에 하셔야 해요 선생님’ 그랬는데 아이디어가 바뀌거나 막히기도 하면서 어느덧 10년이 흘렀어요. 김혜자 선생님 눈이 가까이서 보면 순정만화 여주인공 눈처럼 은하수가 있거든요. 최근에 뵈니 여전히 소녀의 기운을 뿜어내시더군요. 빨리 준비해서 선생님과 또 한 번 영화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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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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