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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고기 실컷 먹겠다던 10대 조희팔

조희팔의 10대는 어땠을까. 
 
조희팔은 경북 영천의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홀로 대구로 상경했다고 한다. “꼭 성공해서 가족들을 돌보며 돼지고기를 실컷 먹고 TV도 편히 보겠다”고 주변 사람에게 늘 말했다고 한다.  
 
조희팔 사기 사건이 모티브가 된 영화 '쇠파리' 포스터. [사진 한국영회인총연합회 대구경북지회]

조희팔 사기 사건이 모티브가 된 영화 '쇠파리' 포스터. [사진 한국영회인총연합회 대구경북지회]

조희팔 고향 마을의 한 주민은 기자에게 어린 시절의 조희팔을 이렇게 기억했다. “영리했어. 인사도 잘했지. 몸집이 작아서 주먹질 같은 나쁜 짓은 하지 않았어. 사기꾼이 될 거라곤 생각지 못했어. 조용하니 차분했던 아이였는데.” 아주 작은 시골 마을이지만 많은 주민이 그를 기억하지는 못했다. 동네 주민 말처럼 어린 시절 유별스럽거나 시끄러운 아이가 아니었다는 의미다.
 
대구에 온 10대의 조희팔은 공사현장에서 막노동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그러다 냉동식품 도매 업소에 취직해 일했다. 자판기에 과일 행상도 이즈음에 잠시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대에 들어서는 도박판을 돌아다니며 허드렛일을 했다. 영남권 최대 폭력조직인 ‘동성로파’ 행동대원들과 어울리기도 했다.  
 
대구 지역에서 영화 관련 일에 종사하는 한 감독의 이야기다. “조직폭력배들이 그를 동료로 끼워줄 정도는 아니었어. 선배들에게 인사를 잘하고 친구들에게 싹싹하고 재미있는 친구였지. 그러니까 진짜 조직폭력배가 일진이라면 희팔이는 그 주변을 얼쩡대는 인물 뭐 그런 정도였어. 분명한 건 거칠 거나 사납진 않았다는 거야.” 이때쯤에 조희팔은 자신의 인생행로를 바꾼 불법 유사수신업에 발을 담그게 된다. 국내 최초의 유사수신 사업체인 ‘SMK(숭민코리아)’에 들어가 일을 접하고 배웠다고 한다.  
 
4조원대 유사수신 사기범 조희팔(오른쪽)의 모습. [연합뉴스]

4조원대 유사수신 사기범 조희팔(오른쪽)의 모습. [연합뉴스]

조희팔의 납골묘는 경북 칠곡군에 있다. 그의 납골묘 비석에는 ‘창녕조공희팔가족지묘(昌寧曺公喜八家族之墓)’라고 쓰여 있다. 검찰이 조희팔 사망에 대해 재수사를 할 당시, 사건 피해자들은 “사망을 가장해 가짜 유골로 만든 묘”라고 주장했었다.  
 
대구=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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