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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00원 vs 1만8000원···수박 값 차이, 품질 때문 아니다

서울 송파구에 있는 가락시장에서 과일 경매가 진행되고 있다. [중앙포토]

서울 송파구에 있는 가락시장에서 과일 경매가 진행되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달 31일 롯데마트 서울역점. 무게 7㎏인 수박이 한 통당 9900원에 팔리고 있었다. 제휴카드로 결제하면 이 값을 받는데, 정상가는 1만1900원이었다. 이마트 왕십리점에서는 1만3800원이었다. 같은 날 서울 송파구 가락동에 있는 농산물 도매시장인 가락시장에선 수박 값(소매)이 1만7000~1만8000원으로 가장 비쌌다. 이곳에서는 따로 가격표가 없이 손님과 상인이 흥정하는 형태였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국내 대표적인 농산물 공영 도매시장인 가락시장의 가격 경쟁력이 대형마트보다 한참 뒤처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일보가 지난 한 달 동안 A대형마트와 가락시장(소매)의 수박 값을 비교했더니 가락시장이 한 달 내내 더 비싸게 판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수박 값이 가장 비싼 시점은 2주차(5월 6~12일)였는데 가락시장에서는 7㎏ 한 통을 2만400원(㎏당 2914원), A마트는 8㎏ 한 통을 1만6800원(㎏당 2100원)에 팔았다. 가장 저렴했던 5주차(5월 27~6월 2일)에 가락시장에선 1만7700원(7㎏), A마트에선 1만3800원(8㎏)이었다. 대형마트에서 평균 29.7% 저렴한 가격에 수박을 구매할 수 있었던 셈이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가 운영하는 가락시장은 전국 33개 농산물 도매시장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전체 거래물량의 40%를 소화한다. 금액으로는 한해 3조~4조원어치 농산물이 유통된다. 가락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은 전국 농산물 도매 거래가의 기준이 될 정도로 영향력이 막강하다.
 
그런 만큼 대다수 소비자는 가락시장에서 팔리는 농산물이 전국에서 가장 싸고 품질도 우수하다고 믿고 있다. 대형마트보다 비싸다는 사실을 납득하기 어려워한다. 지난 31일 시장에서 과일을 고르던 김영순(62·경기도 성남시)씨는 “가락시장은 전국 농산물의 집산지고, 마트나 재래시장도 여기서 물건을 떼다 파는 걸로 알고 있다”며 “도매시장 가격이 당연히 더 저렴해야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나 김장철처럼 대량으로 과일이나 채소 살 일이 있으면 가까운 마트 두고 꼭 가락시장에 갔었는데, 지금껏 헛수고한 것이냐”고 되물었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는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주요한 원인을 도매법인이 장악한 유통구조 때문으로 보고 있다. 김경호 서울농수산공사 사장은 “도매시장의 농산물 유통단계가 복잡하고 수수료 등 추가비용이 많이 발생해, 갈수록 농민과 소비자가 외면하고 있다”며 “유통구조를 바꾸는 게 해답”이라고 강조했다.
 
현행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에 따르면 가락시장과 같은 공영 도매시장에서 상품을 거래하려면 반드시 ‘도매법인’이 주관하는 경매를 거치도록 강제하고 있다. 도매상인도 도매법인의 경매에 참여해 낙찰받아야 한다. 농민과 도매상인이 직접 거래할 수 있는 품목이 일부 있지만 극히 제한적이라, 사실상 도매법인이 농산물 거래를 독점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도매법인은 농민과 도매상인 사이에서 경매를 주관하고 대금을 정산하는 역할을 한다. 이 과정에서 농민에게 거래 금액의 4~5%를 위탁수수료로 떼 간다. 서울시의회에 따르면 2017년 가락시장의 청과 도매법인 5곳에서 위탁수수료로만 1644억8400만원을 벌어들였다. 동화청과가 372억4200만원으로 가장 큰 매출을 올렸고 ▶중앙청과 356억원 ▶서울청과 345억원 등이었다.  
 
특히 이들은 20~30%대 높은 영업이익을 올리고 있다. 지난달 22일엔 동화청과가 연 매출의 두 배 수준인 771억원에 원양어업 업체인 신라교역에 매각됐다. 그만큼 수익성이 뛰어나다는 얘기가 된다.  
 
도매상인과 농민들은 도매법인이 단순 업무를 수행하면서 지나친 이윤을 가로채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신우 한국농산물중도매인연합회 사무총장은 “농민들이 이미 산지에서 가격을 정해 가져온 물건까지도 불필요하게 경매에 부쳐 정가를 올린다”며 “농민은 경매로 물건값이 올라도 위탁수수료를 떼이니 제값을 못 받고, 도매상인은 높아진 가격에 낙찰받아야 해 결국 소비자 가격까지 높아지니 생산자·상인·소비자 모두 손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중간에서 경매를 하는 도매법인만 돈을 버는 구조”라고 비판했다.  
 
독점적 이윤을 보장받는다는 지적에 대해 청과업계 관계자는 “관련 법에 따라 (회사를)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운영하고 있다. 수익률은 업계가 비슷한 수준”이라며 “오랜 노하우와 경쟁력에 따른 대가”라고 말했다.  
 
다른 도매법인 관계자는 "무게만을 기준으로 판매가격을 비교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라면서 "산지와 거리, 신선도, 당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도매법인이 거래액의 4~5%를 수수료로 받는데, 이게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린다고 볼 수 있느냐"고 주장했다.
 
경매가 필수 단계다 보니 유통 과정도 불필요하게 길어진다. 농민이 출하한 농산물은 도매법인의 경매를 거쳐 도매상인이 낙찰하고, 여기에 마진(10%)을 붙여 트럭상인이나 소매점주에게 판매한다. 간혹 도매상인이 일정량의 물건을 소매가로 직접 판매도 한다. 유통은 농민-도매법인-도매상인-소매상-소비자로 이어지는 다섯 단계다. 단계마다 위탁수수료·배송료·판매마진 등이 추가돼 거래금액 15% 안팎의 유통비용이 발생한다.  
 
반면 대형마트는 산지에서 농민 또는 영농조합·농협과 직거래하거나 계약재배 방식으로 물건을 들여온다. 유통과정은 농가-영농조합·농협-마트의 3단계 또는 농가와 계약재배한 물량을 곧바로 마트로 들여오는 2단계로 단순하다.   
 
도형래 롯데마트 채소팀 상품기획자(MD)는 “산지에서는 수집 경쟁, 마트에서는 가격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유통 단계를 줄이고 마진을 낮출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같은 비용에 판매해도 유통비용이 줄면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이윤이 더 돌아간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서울농수산공사는 가락시장의 유통구조를 다양화하겠다는 방침이다. 현재 도매법인의 경매를 반드시 거치는 것으로 일원화돼 있는데, 농민이 도매상과 직거래를 할 수 있는 ‘시장도매인’ 제도를 내년 도입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신장식 서울농수산공사 기획팀장은 “이미 일본·유럽 등 선진국은 시장도매인 위주로 도매시장 유통 구조를 개편했다”며 “농민에게는 출하 선택권을 주고, 유통 상인들의 경쟁은 촉진해야 가락시장도 활력을 찾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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