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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정 안되면 당분간 ‘현상유지’ 합의라도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배경 좋은 사진과 말의 향연만으로 끝내기엔 너무 아까운 기회다. 국제정세가 요동치는 가운데 이달 말(6월 28~29일) 주요 20개국(G20) 정상이 일본 오사카에서 만난다. 주요 국제기구 수장들도 함께한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뭐가 됐든 성과를 내놓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 분위기론 아마 웃음과 덕담에다 “깊은 우려” 몇 마디 덧붙이는 것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알맹이 없는 외교 이벤트다.
 
일본을 비롯, 지금 참여국 간 논의되는 의제를 보자. 세계경제 리스크 관리, 글로벌 불균형, 인프라 투자, 디지털 경제 등 면면이 화려하다.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현실과 동떨어진 느긋한 수사(修辭)다. 보통 때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사방팔방 번져 나가는 불길부터 잡아야 한다. 아름다운 미래의 청사진은 그 다음 따질 일이다. 화급한 일에 집중하자. 그리고 기대 수준을 낮추고 현실성 있는 부분만 추려, 오사카에서 마무리하는 것이 현명하다.
 
그 중 하나는 최소한 지금 상황을 더 악화시키지는 않기로 하는 합의다. 휴전이라 부를 것도 없다. 다툼을 그만두자는 휴전합의도 지금은 어렵다. 그 자체가 논쟁거리다. 그렇다면 현실적인 대안은 계속 싸우되 최소한 새로운 수단과 공세는 내세우지 않기로 의견을 모으는 것이다. 크게 두 가지 측면이다.
 
먼저 미·중 분쟁이다. 양국 갈등이 날로 새로운 경지에 이른다. 지난주만 해도 화웨이에, 환율에, 희토류에, 줄줄이 이어졌다. 계속 숨 쉴 틈 없이 주고받을 기세다. 이래서는 제대로 된 협상이나 타협을 기대하기 힘들다. 자존심 대결로 결국 벼랑 끝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일단 화기(火氣)를 죽이고, 한 템포 늦추어야 한다. 그래야 누가 이기든 접점을 찾는다.
 
그렇다면 당분간만이라도 새 조치는 자제하기로 양국 합의를 유도해 보면 어떨까. 1년 아니면 6개월 시한을 정해도 된다. 지금으로선 이것만 해도 의미 있는 성과다. 물론 두 나라의 결정이다. 그러나 분위기를 이끄는 건 다른 나라들 몫이다. 이번 G20 정상회의에서 18개국이 한목소리로 나선다면 이 정도는 이끌어 낼 가능성도 없지 않다. 서로 화해하고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최소한 앞으로 몇 달 만이라도 새로운 공세는 취하지 말자는 것이다. 일종의 ‘현상유지 (standstill)’ 합의다.
 
이를 설득하자면 18개국도 함께 짐을 져야 한다. 두 번째 측면이다. 이들도 정해진 기간 동안 새로운 보호무역 조치나 차별 조치를 취하지 않기로 약속하는 것이다. 역시 현상유지 합의고, 서로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아니니 이 정도는 바래볼 수 있다.
 
이렇게 일단 분위기를 진정시키자. 그래야 합리적인 논의가 가능하다. 미흡하나마 그리고 불안하나마 미·중 타협도 기대해 볼 수 있다. 설익은 내용이어도 양국 타협은 그다음으로 가는 디딤돌이 된다. 올 하반기 주요 계기에 여러 국가가 동의할 수 있는 그야말로 “쉬운 문제 (low hanging fruits)”에 대한 합의도 계산해 볼 수 있다. 이를 얼추 정리, 포장하면 내년 6월 카자흐스탄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의 가시적 성과물이 된다. 미미해도 괜찮다. 지금은 내용보다 합의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여기까지만 가면 급한 불을 끄고 새로운 출발을 기대해 봄 직하다. 지금부터 꼭 1년 남았다.
 
그래서 이번 G20 회의, 중요하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도 기여할 수 있다. 아니, 노력해야 한다. 지금 이 상황의 가장 큰 피해자 아닌가.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 11월. 당시 미국 워싱턴 G20 회의에서 정상들은 보호무역조치 ‘동결’에 합의했다. 12개월간이다. 기왕 들어온 건 그대로 두더라도 새로 뭘 하지는 말자는 취지다. 소박한 합의나 당시 분위기를 돌리는 데 기여하였다. 이 제안은 바로 우리나라 아이디어였다. 이번에도 비슷한 시도를 해 보면 어떨까.
 
20개국 중 우리는 여러 면에서 중간이다. 선진·개도국 양쪽에 한발씩 걸친다. 경험도 공유한다. 무엇보다 국제교역 질서 안정에 누구보다 이해관계(stake)가 깊다. 진정성을 보여줄 자산이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여건이다. 어차피 지금 국제여건이 바닥이니 잘 되지 않더라도 부담도 적다.
 
이번 회의는 한·일 현안으로 주목받고 있기도 하다. 양국 관계도 실타래처럼 얽혀 있다. 여기서도 우선 더 이상 상황이 나빠지지 않도록 합의하는 데까지는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양국이 서로 새로운 조치는 자제하고 먼저 지금 상황을 유지하는 내용이다. 6~12개월 시한을 정해 타협점을 찾자. 미흡하지만 첫 단추다.
 
여러 일들이 꼬일 대로 꼬였다. 도대체 답이 없을 때는 상황이 악화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도 대안이다. 오사카에서 이것 하나만 이루어도 성공이다. 공허한 사진과 외교적 수사보다 백번 낫다.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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