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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적 킬러 본능에 가성비는 덤…‘손의 시간’ 재깍재깍

체육철학자가 영국에서 본 손흥민 신드롬
지난 4월 17일 열린 맨체스터시티와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에서 토트넘 동료 요렌테가 4-3을 만드는 골을 성공시키자 손흥민이 주먹을 불끈 쥐며 기뻐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4월 17일 열린 맨체스터시티와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에서 토트넘 동료 요렌테가 4-3을 만드는 골을 성공시키자 손흥민이 주먹을 불끈 쥐며 기뻐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손의 시간’이 다가온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홋스퍼와 리버풀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2일 오전 4시(한국시간) 스페인 마드리드의 완다 메트로폴리타노에서 펼쳐진다. 토트넘의 에이스 손흥민(27)은 박지성에 이어 한국인 두 번째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나선다. 최근 절정에 오른 기량과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손흥민을 영국인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영국 러프버러대학교에 머물고 있는 체육철학자 김정효 교수가 ‘현지에서 본 손흥민 신드롬’을 주제로 기고를 보내왔다.
 
내일 오전 4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손흥민은 강하고 예쁘다.’
 
언뜻 모순어법처럼 들리지만 이 간명한 문장 이외에 영국의 손흥민을 적절히 표현할 길이 없다. 가장 터프한 경기인 축구의 직업선수에게 ‘예쁘다’는 형용사는 실례인지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손흥민의 미소는 영국인이 보아도 밝고 예쁘며 심지어 귀엽기까지 하다.
 
하지만 축구선수의 미소는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멋진 활약이 뒤따를 때 비로소 미학을 얻는다. 맨체스터시티와의 유럽챔피언스리그 준준결승 두 게임에서 손흥민이 터트린 결정적인 골들은 그의 미소가 더해지면서 짜릿한 전율과 감동을 몇 곱절 배가시킨다. 손흥민의 미소는 경기 내내 보여준 활약과 골의 가치를 더욱 달콤하게 만드는 그 무엇이다.
 
저돌적인 공격 본능 속에 숨겨진 해맑은 미소는 중독성이 강한 것이어서 자주 그리고 오래 보고싶게 만든다. 이것을 신드롬이라고까지 표현할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존재를 영국인에게 깊이 각인시킨 것은 분명하다. 손흥민에게 어린이 팬이 많은 이유도 날렵한 움직임과 현란한 드리블, 그림 같은 골 장면 이후의 그 착하디착한 미소가 주는 신비로움 때문인지도 모른다.
 
영국에 살면서 대놓고 손흥민을 칭찬하기는 좀 민망하다. “어제 그 골 봤어?”라고 묻는 건 왠지 자기자랑처럼 쑥스럽다. 대신 상대가 먼저 손흥민 이야기를 꺼내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한번은 우체국을 찾지 못해 초로의 영국인에게 길을 물은 적이 있었다. 대뜸 중국인이냐고 되물어 목소리에 힘을 주며 한국인이라고 했더니 “오오! 소니(sonny)의 나라, 그는 대단한 선수(He is a great player)”라며 중국인으로 착각한 자신의 실수를 정중히 사과했다. 손흥민은 아시아 출신의 고만고만한 선수가 아니라 이미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되어 있다.
 
손흥민을 형용하는 현지의 언어로 가장 빈번하게 쓰이는 단어는 ‘extraordinary’다. 손흥민은 ‘extraordinary’가 뜻하는 그대로 놀라우며, 드물게 비범한 선수다.  
 
유럽축구연맹(UEFA)이 공개한 챔피언스리그 결승 포스터. 손흥민(토트넘?왼쪽)이 살라(리버풀·가운데) 등과 함께 실렸다. [UEFA SNS]

유럽축구연맹(UEFA)이 공개한 챔피언스리그 결승 포스터. 손흥민(토트넘?왼쪽)이 살라(리버풀·가운데) 등과 함께 실렸다. [UEFA SNS]

잉글랜드의 국민이라면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독일을 완전히 침몰시킨 손흥민의 단독 드리블 슛을 잊지 못한다. 영국과 독일 간의 국민감정에 비추어 손흥민의 그 골은 믿을 수 없는 반전이었으며 카타르시스였다. 하물며 그 날렵한 동양인이 자신의 수도 북런던 ‘토트넘 홋스퍼’ 소속 선수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기쁨과 애착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내 주변의 영국 지인들은 그때를 손흥민의 대중적 인지도가 확산한 결정적 계기로 보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손흥민의 드리블은 호쾌함과 후련함의 이미지와 많이 결부되어 있다. 영국의 공영방송인 BBC에서도 손흥민의 드리블을 공영 PR에 삽입할 정도다. 손흥민은 어쩌면 영국 국민과 가장 가까이 앉아 있는 외국인인지 모른다.
 
손흥민에 대한 토트넘 팬들의 사랑을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전세계 토트넘 팬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와 올해의 골은 모두 손흥민의 몫이었고, 거기에 이의를 제기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게 쉬운 것 같아도 결코 그렇지 않다. 토트넘에는 잉글랜드 대표팀 주장이자 국민영웅 격인 해리 케인이라는 프랜차이즈 스타와 델레 알리, 에릭센 등 특급 선수들이 즐비하다.
 
무엇보다 손흥민의 팀 내 위상은 ‘가성비’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가성비란 싼값에 제대로 데려온 선수를 일컫는 말일 터이다. 이런 까닭에 손흥민을 데리고 있는 토트넘을 운 좋은 구단이라고 생각하는 영국인들이 많다. 프리미어리그가 이른바 ‘쩐의 전쟁’으로 흐른 지 꽤 오래 되었는데, 토트넘은 비싼 이적료와 연봉에 인색하면서도 톱 클래스를 유지하고 있으니 주목을 받는 건 당연하다. 그 주목은 대부분 감독인 포체티노와 손흥민에게 쏠린다.
 
그러나 이런 표면적인 이유보다 더 주목받는 손흥민의 매력 포인트는 기존의 아시아 선수에 대한 이미지를 뒤바꿔 놓은 창의적인 플레이 스타일이다. 그동안 영국인들이 생각하는 아시아 선수의 이미지는 ‘성실한 조력자’ 역할이었다. 열심히 뛰어다니면서 어쩌다 결정적으로 찔러 넣는 어시스트와 부상을 무릅쓴 투혼이 영국인들에게 투영된 아시아 선수의 전형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동아시아 선수의 근면과 성실은 장점이면서 동시에 창의성의 부족과 동의어로 연결된다. 영화로 치면 주연보다 조연이 어울리는 캐스팅이 상식이고 정상이었다. 이런 편견(영국에서는 이것을 ‘stereotype’라고 한다)을 손흥민은 보기 좋게 무너뜨렸다.
 
“손흥민은 순간적인 판단력과 몸놀림이 뛰어나며 도전적이어서 유독 큰 경기에 강하다” “그의 플레이는 선이 굵은 스타일과 창의적인 움직임으로 어린 선수에게 많은 영감을 준다”는 BBC 해설가의 지적은 BBC의 위상만큼 객관적이고 타당하다. 그렇다면 이런 강인함의 비결은 어디서 비롯하는 것일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닮고 싶은 소년시절의 꿈일 수도 있고 성공에 대한 야망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손흥민의 강함은 아무래도 부드러움에서 찾아야 할 듯싶다. 아기처럼 해맑은 미소가 부드러움의 외형이라면 참고 인내하는 ‘부동심’은 안으로 감추어진 부드러움의 핵심일 터이다. 손흥민의 이미지는 스타성이 풍부한 플레이 스타일과 더불어 공손하고 예의 바르며 흥분하지 않는 침착함과 냉정함이다.
 
영국은 훌리건의 나라며, 여전히 보수적이고 배타적인 성향이 강한 국민성을 보인다. 특히 축구에서 인종차별은 외국 선수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또 다른 투쟁이다. 인종차별은 다름과 차이를 열등과 멸시로 치환하는 저급한 행위여서 엄격히 금지되어 있으나 경기 도중 의도적으로 행해지기도 한다. 외국인 선수를 자극하고 흥분시켜 경기를 망치게 하려는 악의적 의도가 DVD 노래(동양인은 불법 복제 DVD를 판다는 내용)로 번지고 눈을 찢는 시늉을 만든다.
 
이런 환경에서도 손흥민은 한 번도 인종차별의 덫에 걸려들지 않았다. 흥분할 줄 몰라서가 아니라 감정을 자제하는 평정심이 그 덫을 매번 소용없게 만들었다.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를 남기고 퇴장을 당하자 미디어는 손흥민의 행위를 클로즈업하면서 일제히 ‘Unbelievable(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믿을 수 없는 것은 한 번의 발끈함이 아니라 그의 내면에서 다투어 왔을 자제와 인내의 정도가 아닐지. 세상 어디에도 이방인에게 관대한 나라는 없다. 하물며 축구가 축구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영국에서야.
  
BBC, 손흥민 드리블 공영 PR에 담아
 
영국의 스포츠 사회학자 줄리아노티의 지적대로 축구는 종족, 젠더, 세대, 계급이 씨줄과 날줄로 얽히면서 유럽 전체를 한 덩어리로 묶는 문화적 촉매제다. 유럽 국가에서 축구는 남성이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만들어가는 통로이며, 집단의 계급성을 확인하는 매체다. 남자는 축구를 통해 성 정체성을 확인하고 동료와 계급적 연대를 맺는다. 손흥민의 토트넘도 런던 북부 노동자의 피가 흐른다.
 
토트넘 팬들은 자신의 연고 팀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아 팀의 영광과 좌절을 함께 겪으며 일상을 영위하고 나이를 먹는다. 축구장의 광적인 응원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일종의 의식이 된다. 그리고 그 광적인 응원의 대상에 동양의 해맑은 청년이 포함돼 있다.
 
“Nice one sonny, nice one son” 이라는 손흥민의 단독 응원가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열리는 마드리드의 완다 메트로폴리타노에서도 울려 퍼질 것이다. 그 떼창의 도중에 손흥민의 슛이 그물망을 흔드는 짜릿한 순간을 상상해 본다. 무엇보다 골 세리머니 이후 하트를 그리며 해맑게 웃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 투명한 한국 청년의 미소를.
 
김정효 체육철학자·영국 러프버러대 방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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