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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연의 시시각각] 부시가 봉하마을 찾은 까닭은

최상연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미국 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의 사저 몬티첼로는 버지니아주 작은 시골 마을의 관광 명소다. 워싱턴 특파원으로 일할 때 찾았다가 고개를 갸우뚱했던 기억이 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로 시작하는 그의 ‘미국독립선언문’이, 자신이 부린 수백 명 흑인 노예들의 비참했던 생활상과 함께 나란히 걸려 있어서다.
 
툭하면 파리로 와인 쇼핑을 떠난 ‘강남 좌파’ 계열이었던 모양이다. 늘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말하면서도 만찬장에 흑인 노예들이 들락거리는 걸 꺼려 지하 저장고와 식당을 오가는 와인배달 기계를 발명했다는 설명이 있었다. 흑인 하녀와의 불륜은 미국 초기 큰 스캔들이었다. 낮은 천정에 유리창이 없던 어둠 속의 그 흑인 하녀 방이 처연했다.
 
미국의 다른 위대한 대통령들도 파고들면 허점이 많다. 링컨은 ‘위대한 해방자’라기 보다 그저 노예해방을 성사 시킨 노련한 정치가였다. 음모와 술수가 많았다. 신념과 의지론 공화당 대통령 후보를 놓고 다툰 윌리엄 슈어드가 한 수 위다. 링컨은 오히려 온건한 노선 탓에 후보로 선출됐다. 그래도 제퍼슨이 미국 건국, 링컨이 노예해방의 아버지란 업적이 훼손되는 일은 없다.
 
‘완벽한 우상’은 아닐지 모르지만 시대적 소명을 간파하고 관철시키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지역과 당파로 찢긴 나라를 ‘용광로 미국’으로 돌려 만든 게 이들 지도자의 관용의 리더십이다. 미국인들이 태생적으로 과거를 잘 잊고, 원수를 용서하는 유전자를 갖고 있어서가 아니다. 배가 가는 길을 정하는 건 바람이 아니라 돛의 방향이다.
 
제퍼슨이 당선된 가장 큰 이유는 남부 공화파의 이탈 없는 몰표 덕분이었다. 하지만 커다란 압력에도 불구하고 탕평 내각을 꾸렸다. 앞선 북부 연방파의 12년 집권 원칙을 이어갔다. 링컨도 그랬다. 남북전쟁이 끝난 뒤 전범으로 몰려 처형 당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공유하고 소통하고 관용으로 개방한 게 위기극복의 공통 처방전이다.
 
우린 거꾸로다. 욕하고 나누는 데서 에너지를 찾고 만든다. 아주 작아도 약점만 보이면 후벼 판다. 더욱 노골적이고 잦아진 대통령의 야당 비난이 다르지 않다. 엊그제는 기밀 유출을 비호한다고 야당을 꾸짖었다. 얼마 전엔 ‘독재자의 후예’를 거론했다. 같은 논리로 전 정부의 ‘캐비닛 기밀’도 까발리면 안되는 거였다. 또 ‘비상식에 기본이 안 된 독재자의 후예’와 청와대서 만난들 무슨 뾰족한 해법을 찾을 수 있을까.
 
국회 실종이 한 달을 넘었다. 뭐 예삿일이긴 하다. 20대 국회 여야 협상이란 게 법안 조율보다 국회 정상화를 위한 논의가 더 많았다. 이번엔 한국당을 뺀 여야 4당이 선거 제도를 강제로 바꾸고, 대통령의 공수부대 소리를 듣는 공수처법안을 강행 처리했기 때문이다. 마치 개혁의 요체인 것처럼 자랑하더니 지금은 ‘의원 정수 확대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딴소리다. ‘절대로 안 된다’는 반대 여론은 70%를 넘는다.
 
그러면 지금이라도 선거제 강제 변경을 철회하고 공수처법을 대통령의 막강한 권력에서 독립 시키는 쪽으로 바꾸는 게 정답일 텐 데 그럴 가능성은 없다. 모르고 밀어붙인 게 아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야당을 ‘국정 운영의 동반자’라고 선언했고 ‘무소불위 권력기관을 없애겠다’고 다짐했다. 그랬지만 자극하고, 제왕적 대통령을 강화하는 공수처 신설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개인적 약점은 있었다. 야당과 갈등도 많았다. 하지만 적어도 지지층만 바라보며 매달리진 않았다. 이라크에 파병하고 ‘독재자 후예’와 대연정을 제안했다. 그런 진정성이 부시 전 대통령을 봉하마을로 향하게 했을 것이다. 손해가 복이란 게 흘휴시복(吃虧是福)이다. ‘바보 노무현’이 간 길은 손해 보는 길이었다. 미국과 야당은 그 때와 다름이 없다. 그런데 문 대통령의 미국과 야당은 노 전 대통령의 그것과 왜 이리도 다른 것인지.
 
최상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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