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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현 기자의 컬처 FATAL] 봉준호와 로베르 르빠주…‘선을 지킨다’는 것

로베르 르빠주가 직접 출연하는 모노드라마 '887' [사진 LG아트센터]

로베르 르빠주가 직접 출연하는 모노드라마 '887' [사진 LG아트센터]

 
 
“하품 좀 작게 해주세요.” 살짝 졸다가 깜짝 놀랐다. 나도 모르게 졸면서 하품까지 했단 말인가.  
캐나다 출신의 세계적 연극 거장인 로베르 르빠주의 공연 ‘887’을 보다가 옆자리 관객에게 들은 소리다. 큰 소리로 하품을 한 것도 아닌데. 무릎 위에 전화기를 꺼내놓고 간헐적인 불빛과 알림음 테러를 하고 있는 사람에게 들을 말은 아닌 것 같았지만 참기로 했다. 하지만 일명 ‘관크’의 일종인 ‘하품충’이 된 것 같아 내내 신경이 쓰였다. 공연이 끝나고도 떠나지 않고 불꺼진 무대세트를 촬영하고 앉은 걸 보니 공연 매니어인 듯한 그녀는 웬 아줌마가 신성한 공연장에 와서 물을 흐리나 싶었을까. 평소 스칠 일도 없는 사람들이 꼭 붙어서 두 시간을 보내야 하는 곳이 공연장이구나, 새삼 깨달았다.  
 
공교롭게도 ‘887’은 이런 문화다양성의 개념을 떠올리게 하는 무대였다. 캐나다 퀘벡은 17세기 프랑스인들의 이주로 비롯된 곳이기에 프랑스계가 많지만, 18세기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 쟁탈 전쟁에서 영국군이 승리한 이래 영국의 통치를 받으며 프랑스어권과 영어권이 교차하는 독특한 문화 정체성을 갖게 됐다. 20세기 들어 주요 자본을 장악한 영국계가 사회지도층이 되고, 프랑스계는 하층민으로 머물면서 두 언어권 사이에 계층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작품의 키워드인 “Speak White”는 공공장소에서 프랑스어를 쓰는 사람들에게 영국계가 던지던 경멸적인 어조의 말이다.  
로베르 르빠주가 직접 출연하는 모노드라마 '887' [사진 LG아트센터]

로베르 르빠주가 직접 출연하는 모노드라마 '887' [사진 LG아트센터]

 
프랑스계 퀘벡인인 로베르 르빠주는 노화와 함께 대사를 잘 못 외우게 된 지극히 개인적인 사정에서 ‘기억’이란 주제를 택했다고 했지만, 무대는 1960년대 갈등의 역사 속 영국계 캐나다인에게 차별과 억압을 받아온 프랑코포니들의 절규와 문화적 저항이라는 비장한 울림을 담고 있었다.
 
캐나다 역사가 낯설게 와닿긴 했지만 커다란 큐빅을 빙빙 돌릴 때마다 거짓말같은 장면 전환이 펼쳐지는 무대는 몹시 예술적이었다. 프랑코포니가 모여 살던 퀘백의 작은 아파트를 미니어처 인형극 세트로 만들고, 첨단 영상기술을 동원해 혼자서 다양한 미장센을 만들어내는 르빠주는 마치 커다란 마술박스를 맘대로 주무르는 마법사 같았다.  
 
사실 르빠주는 ‘이미지 연극의 거장’으로 통한다. 퀘백의 예술가들은 문화적으로 영미와 프랑스의 변방이라는 자의식 탓에 늘 정체성이 화두였고, 르빠주는 영미와 프랑스 문학이라는 연극계 주류 텍스트를 배제한 채 테크놀로지를 적극 활용한 ‘멀티미디어 이미지 연극’이란 장르를 스스로 창시하기를 택한 것이다.  
로베르 르빠주가 직접 출연하는 모노드라마 '887' [사진 LG아트센터]

로베르 르빠주가 직접 출연하는 모노드라마 '887' [사진 LG아트센터]

 
그가 세계적 거장이 된 것도 가장 캐나다적인, 바로 자기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 낭송 행사에 초청받아 긴 시를 암송해야 했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캐나다의 역사를 교차시키는 구도는 전작 ‘달의 저편’에서 보았듯 일상이라는 소우주를 통해 역사라는 대우주를 비추는 르빠주의 시그니처다. 일상의 사소한 지나침을 거대한 통찰로 확대해 포착하는 것이 거장으로서의 면모랄까.
 
영화 '기생충' [사진 CJENM]

영화 '기생충' [사진 CJENM]

영화 ‘기생충’의 칸 황금종려상 수상으로 ‘젊은 거장’으로 등극한 봉준호 감독도 평범한 일상을 전혀 다르게 발견하게 만드는 능력이 과연 거장 다웠다. ‘봉테일’이라는 애칭처럼 디테일을 결코 놓치지 않는 그는 ‘기생충’에서 '반지하의 냄새'라는, 모두가 알지만 굳이 말하지 않는, 아주 사적이고 내밀한 소재를 영화의 주요 모티브로 삼았다. 사기꾼 가족이 펼치는 잔잔한 코믹소동극으로 시작해 ‘냄새’라는 날카롭고 예민한 도구로 인간 본성을 비추며 한편의 잔혹한 그리스비극처럼 끝나는 장엄한 엔딩이 거대한 울림으로 확대된다. ‘기생충’이라는 제목부터 벌레를 말한다기 보다 ‘맘충’ ‘틀딱충’ ‘하품충’처럼 자기와는 다른 집단의 사람들을 비하하는 요즘 사람들의 일상적인 언어습관을 패러디한 것인지 모르겠다. 작은 일상을 큰 통찰로. 바로 ‘거장의 예술’인 것이다.  
영화 '기생충' [사진 CJENM]

영화 '기생충' [사진 CJENM]

 
‘기생충’의 또 다른 키워드는 ‘선을 넘지 말라’다. 문화다양성을 외치는 시대, ‘선을 지킨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진지하게 고민해볼 만하다.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이 인간에 대한 예의와 존엄에 대해 건드리는 영화라면서 “기생이냐 공생 또는 상생이냐가 갈라지는 지점”이라고 했다. 낯선 사람과 별수없이 옆자리에 앉아 꼼짝없이 두시간을 버텨야 하는 공연장에서, 옆사람의 존재가 다소 거슬려도 예의를 지키는 것. 다양한 사람들이 선을 넘지 않고 공생할 수 있는 방법 아닐까. 하긴 거장의 공연을 보며 졸면서 하품까지 한 내가 먼저 선을 넘은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 '기생충' [사진 CJENM]

영화 '기생충' [사진 CJENM]

영화 '기생충' [사진 CJENM]

영화 '기생충' [사진 CJENM]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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