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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이 앞장서 감군 주장은 이 나라에서만 벌어지는 현상"

노무현 정부에서 초대 국방부 장관(2003년 3월∼2004년 7월)을 지낸 조영길 전 장관이 노태우 정부 때 시작된 군축 계획에 대해 “무엇인가 크게 잘못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 27일 출간된 저서 『자주국방의 길』(플래닛미디어 펴냄)에서다. 그는 “국가안보의 마지막 보루를 자처하는 군인들이 앞장서서 군대를 마구 줄이면서 그것이 국방개혁이고 나라를 위하는 일이라고 강변하는 것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이 나라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라며 이같이 서술했다.
 
2003년 계룡대에서 조영길 당시 국방부장관이 노무현 전 대통령(오른쪽) 옆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2003년 계룡대에서 조영길 당시 국방부장관이 노무현 전 대통령(오른쪽) 옆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조 전 장관은 29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천하가 태평해도 한쪽에서 묵묵히 최악의 사태에 대비하는 것이 군인의 책무이고, 본분”이라며 “이를 통해 자주국방이 뿌리내릴 수 있는 토양이 만들어진다”고 강조했다. 책에는 그의 이런 우려가 곳곳에서 눈에 띈다. 그는 “나라의 안보 상황이나 경제·사회적 여건의 변화에 따라 군비의 감축이나 복무연한의 단축을 논의하는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면서도 “다만 그것은 나라의 전반적인 운영을 책임진 정부와 정치인이 판단할 영역이지 군인들이 스스로 앞장서야 할 일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조 전 장관은 군축이 처음 논의되던 1989년 합참 전략기획국에 군비통제관실이 편성된 것부터 문제라고 지적했다. 책에서 “한쪽 방에서는 새로운 군사력을 건설하기 위해 밤을 새우고, 그 옆방에서는 만들어진 군사력을 축소하고 해체하는 작업에 열을 올리는 혼란스러운 상황이 일어났다”며 “건물을 세우는 건축 전문가와 그 건물을 해체하는 폭파 전문가들이 한 공간에 배치된 모양새”라고 꼬집었다. “당시 연구됐던 상호 군비통제의 이론들이 그 후 ‘일방적 감군’을 주장하는 일단의 국방개혁론자들에게 이용되면서 군 내부에 끝없는 갈등과 혼란을 야기하는 발단이 됐다”고 그는 지적했다.
 
2001년 청와대에서 열린 군 주요지휘관 회의에서 조영길 당시 합참의장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청와대사진기자단]

2001년 청와대에서 열린 군 주요지휘관 회의에서 조영길 당시 합참의장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청와대사진기자단]

조 전 장관은 노무현 정부 시절의 ‘국방개혁 2020’(2005년 연구 시작)에도 비판적이다. 당시 군 구조 개편안은 68만 명을 조금 상회하는 국군의 정원을 2020년까지 50만 명 수준으로 감축하는 것이었다. 조 전 장관은 이를 두고 “유사시 적의 공격 앞에 전선의 문을 열어주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며 “30년간 자주국방을 선도했던 합참이 군비감축을 주도하는 조직으로 그 기능이 변질되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조 전 장관은 책에서 당시 관련 비화를 털어놓기도 했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이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요청에 따라 남·북한 군사력 평가 작업을 실시했는데, 이때 한국의 군사력이 과도하게 높이 평가돼 2004년 초 합참이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는 내용이다. 결과적으로 국방부가 KIDA에 엄중 경고를 내리고 연구내용을 바로잡도록 지시했다. 1년 뒤 군 구조 개편안을 접한 그는 “NSC에서 왜 KIDA에 이런 자료를 요구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용자의 요구에 부응해서 군사력 평가, 분석과정에 편견을 개입시키는 행위는 연구 담당자들의 양식과 직업윤리에 직결되는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며 “KIDA에서 남·북한 군사력을 재평가하고 한국군의 군사력 지수를 부풀렸던 소동의 배경을 짐작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고 당시를 되돌아봤다.
 
책에는 보수 정권의 실책을 지적하는 대목도 있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연합사 해체에 따른 문제점, 일방적 군비감축의 위험성 등 지난 몇 년 문제를 해결할 기회가 찾아왔지만 정치적 동력이 부재했다”고 술회했다. 과거 정부에서 일방적으로 군비감축과 국방개혁을 주도했던 인원이 국방의 주요 지위를 점하면서 새 정부의 안보정책 기조가 혼란에 빠졌다는 것이다.
 
조영길 전 국방부장관의 저서 '자주국방의 길'. 이 책에서 조 전 장관은 자주국방이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과업"이라고 강조한다. [플래닛미디어 제공]

조영길 전 국방부장관의 저서 '자주국방의 길'. 이 책에서 조 전 장관은 자주국방이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과업"이라고 강조한다. [플래닛미디어 제공]

연평도 포격 당일 아침 북한서 전문 보냈지만 군 묵살 
조 전 장관은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포격 도발 때 세간에 드러나지 않은 일화도 공개했다. 당시는 서해 상에서 처음 진행되는 한·미 연합훈련을 위해 미군의 항모 조지 워싱턴함이 한반도 해역으로 이동하고 있는 민감한 때였다. 조 전 장관은 “이날 아침 북한은 그들이 자기들의 영해라고 주장해온 연평도 서남쪽 해상에 한국군이 사격할 경우 좌시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전문을 판문점을 통해 보내왔으나, 군에서는 이를 묵살한 것으로 알려졌다”며 “연평도의 해병부대가 적시에 경고를 받고 필요한 사전 대비책을 강구했더라면 불의의 기습을 당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기술했다.  
 
조 전 장관은 자주국방의 기틀을 세웠다는 점에서 박정희 정부의 공을 높이 평가했다. 책에는 “대구경 화포의 국산화와 지대지미사일 개발 등 국방과학기술력 강화, 최초의 연합작전계획 수립 등이 1970년대 한 사람의 고뇌에 찬 숙고와 추진력에 의해 동시적으로 이뤄졌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조 전 장관은 책에서 “통찰력과 결단력을 지닌 국가지도자 한 사람의 힘이 참으로 위대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망은 오로지 자주국방에만 매달리던 사람들에게는 거친 풍랑을 해쳐가던 작은 배가 갑자기 선장을 잃어버린 것과도 같았다”고 돌아봤다.
 
조 전 장관의 저서는 박정희 정부에서 시작돼 이명박 정부에서 끝을 맺는다. 조 전 장관은 통화에서 현 정부의 국방 정책과 평가는 “자신이 할 일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이 책이 정치적 목적을 띠기보다 후배 군인들에게 역사 참고서로 남겨지기를 바란다”고 알렸다. 조 전 장관은 통화 말미에 “군인들이 정치적 결단에 앞장서는 건 자주국방의 토양을 황폐하게 만들 수 있다”며 “지정학적 위치만 보더라도 우리에게 자주국방은 선택의 문제가 아닌 생존을 위한 과업”이라고 말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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