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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의 퍼스펙티브] 2015년 문재인 대표와 2019년의 문재인 대통령

박근혜와 문재인 경제 정책의 명암
2015년 3월 17일 청와대 여야 영수회담에서 문재인 새정연 대표가 ’경제 정책은 실패했고 총체적 위기“라며 ’이런 식으로는 경제를 살릴 수 없다“고 몰아붙이자 박근혜 대통령이 심각한 표정으로 메모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5년 3월 17일 청와대 여야 영수회담에서 문재인 새정연 대표가 ’경제 정책은 실패했고 총체적 위기“라며 ’이런 식으로는 경제를 살릴 수 없다“고 몰아붙이자 박근혜 대통령이 심각한 표정으로 메모하고 있다. [연합뉴스]

4년 전인 2015년 3월 17일의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문재인 새정치민주대연합 대표가 청와대에 마주 앉았다. 18대 대선에서 승자와 패자로 갈라진 뒤 2년 만의 첫 영수회담이었다. 박 대통령이 “경제가 크게 일어날 수 있도록 여야가 좀 도와달라”고 운을 뗐으나 문 대표는 미리 준비해온 원고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작심 발언이었다. “우리 경제가 너무 어렵다. 국민들 먹고 살기가 정말 힘들다. 정부의 경제 정책은 국민의 삶을 해결하는 데 실패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문 대표는 이어 “대통령께서 약속하신 경제민주화와 복지 공약은 파기됐고 오히려 재벌과 수출 대기업 중심의 낡은 성장 정책이 이어졌다. 그 결과 중산층이 무너지고 양극화가 극심해졌다”고 비판했다. “총체적 위기다. 이런 식으로는 경제를 살릴 수 없다”며 거칠게 몰아붙였다. 경제 라인 전체를 교체하라고 요구했다. 박 대통령도 처음에는 문 대표의 얼굴을 쳐다보며 듣다가 “실패” “파기”라는 표현들이 나오자 고개를 숙이고 심각하게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이날 공개된 사진 제목도 ‘발언하는 문재인, 메모하는 박근혜’였다.
 
지금도 문 대통령이 과연 4년 전처럼 모질게 몰아붙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양쪽의 경제 상황을 비교해보면 게임이 안 된다. 박근혜 집권 이후 경제 성장률은 2.3%→2.9%(2013년)→3.3%(2014년)로 상승했다. 영수회담 직전인 2014년의 신규 취업자는 무려 53만3000명이나 늘어나 외환 위기 이후 12년 만에 최고였다. 이에 비해 문 대통령 집권 이후 경제 성장률은 3.1%(2017년)→2.7%(2018년)→2.5%(올해, 한국은행 전망치)로 꼬꾸라지고 있다. 일자리 예산 54조원을 뿌렸지만 지난해 신규 취업자는 9만7000여명에 그쳤다. 초라한 실적이다. 왜 4년 전에 박 대통령을 몰아세웠는지 이해가 안 될 만큼 부끄러운 성적표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는 성경 구절이 떠오를 정도다.
 
그런데도 문 대표는 공격의 고삐를 놓치지 않았다. 영수회담 이튿날 청와대가 ‘박근혜 정부의 경제 성과’라는 보도자료를 내고 “야당의 근거 없는 경제 위기론이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며 반박하자 곧바로 재반박에 나섰다. 당 연석회의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유사 이래 최고의 스펙을 쌓아도 비정규직 알바 말고는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암담한 현실이야말로 경제 실패가 낳은 참담한 결과”라고 연거푸 몰아세웠다. 정청래 당시 최고위원도 옆에서 거들었다. “경제 위기를 여당이 말하면 고통 분담이고 야당이 말하면 경기 위축이냐”며 비꼬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요즘은 최저임금 급등으로 ‘암담한 일자리’라던 비정규직 알바마저 하늘의 별 따기다. 주휴수당을 피하느라 하루 3~4시간짜리 ‘초단기 알바 쪼개기’가 판을 치고 있다.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소득주도 성장은 10년만의 최저 성장률, 외환 위기 이후 최악의 설비투자에다 수출 감소까지 낳았다. ‘최저임금도 가격’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무시했다가 실물 경제에 발작이 일어난 것이다. 양극화 심화와 고용 감소는 시장의 복수다. 그런데도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은 “정책 방향에 대해선 여전히 확고한 믿음이 있다”며 버티고 있다. 하지만 진보 진영에서조차 그 믿음은 흔들리고 있다. 한 진보 신문은 “제조업 부진과 수출 급감이 심각한 수준이며 반도체 신기루가 걷히면서 우리 경제의 취약성이 그대로 드러났다”며 우려한다. 또 다른 진보 신문도 “정부의 재정 지출 여부에 성장률이 좌우될 만큼 경제의 기본 체력이 크게 약화됐다”며 사실상의 정책 실패라고 지적한다.
 
소득주도 성장은 이미 두 가지의 치명적 결함을 드러냈다. 우선 핵심 논리부터 들어맞지 않고 있다. 이 가설의 골격은 저소득층의 가처분 소득을 늘려 소비를 확대하고 이를 통해 경제 선순환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2년간 온갖 정책 수단을 총동원했는데도 1분기 가처분 소득은 전년 동기 대비 0.5% 감소했다. 특히 1분위 소득은 2년 연속 줄어들었다. 최저임금을 올리고 일자리 기금을 무차별 살포했는데도 오히려 저소득층의 소득 자체가 감소함으로써 소득주도 성장의 기본 전제가 완전히 허물어져 버린 것이다.
 
또 하나의 치명적 모순은 이 실험의 최대 피해자가 사회적 약자들이란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 2년간 극빈층의 월 평균소득은 95만9000원에서 80만3000원으로 16%나 줄었다. 특히 근로 소득은 40%나 감소했다.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비숙련 저임 근로자들이 무더기로 노동시장 밖으로 밀려난 것이다. 여기에다 소득 1분위에서 노인 가구 비중이 줄었다는 것은 자영업 몰락으로 젊은 세대가 대거 빈곤층으로 추락했음을 의미한다. 고용 학살이자 한국 경제의 자해 행위나 다름없다. 설익은 경제 실험으로 없는 사람이 더 가난해지고 밑바닥 생태계가 통째로 붕괴되는 값비싼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냉정하게 보면 한국판 소득주도 성장은 제대로 된 경제 이론이라기보다 사상이나 이념에 가깝다. 해방 이후 우리 사회에 떠돌던 막연한 운동권 가설과 유럽 좌파들의 노동 중시 개념이 마구 뒤섞여 소득주도 성장이란 문패를 단 것이다. 경제 가설이 이념화되면 아무리 실패해도 함부로 바꿀 수 없는 우상(偶像)이 돼 버린다. 통계청의 충격적인 1분기 소득 통계가 나온 이튿날, 지난 21일 한 진보신문은 사설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자유한국당은 추경에 앞서 소득주도 성장을 비롯한 경제 정책부터 바꾸라고 정부에 요구한다. 정부의 철학과 가치가 담긴 정책 기조를 폐기하라는 것은 정권을 내놓고 물러나라는 요구와 다르지 않다. 받아들여질 수 없는 주장을 하고 있으니 딱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소득주도 성장이 단순한 경제 정책이 아니라 정권의 운명과 묶여있는 사상이자 이념이라는 고백이나 다름없다.
 
아직 소득주도 성장의 최악의 시간은 오지 않았다. 내년 1월부터는 50인~300인의 중소기업에도 주 52시간제가 적용된다. 버스 대란 정도로 끝날 문제 아니다. 그래서인지 진보 쪽인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장은 그제 “소득주도 성장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는 빠를수록 좋다”고 제안했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도 경제에 부담을 주는 기존 정책들을 과감하게 철회하는 것으로 경제 회복의 첫 단추를 끼워야 한다고 주문한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여전히 재정을 어떻게 더 많이 쏟아부을지만 골몰하고 있다.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은 채 대외여건을 탓하고, 정책 실패를 홍보 실패에서 찾으려는 분위기다.
 
진보 진영은 4년 전 박근혜의 경제 정책을 ‘부두(voodoo) 경제학’ ‘샤머니즘 경제학’이라 조롱했다. 카리브해의 아이티에서 믿는 주술·악마 숭배의 부두교처럼 제대로 된 근거 없이 비현실적·비과학적 방식으로 접근하는 ‘유사 경제학’에 대한 경멸적 호칭이다. 박근혜 정부가 오지도 않을 ‘낙수효과’의 주문만 외우는 ‘무당 경제학’이라고 비꼰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소득주도 성장은 어떻게 불러야 할지 궁금하다. 저소득층부터 올라오는 ‘분수효과’는커녕 아예 물 자체가 말라버렸다. 어디를 둘러봐도 4년 전보다 더 나은 경제지표는 찾을 수 없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소비지표는 좋은데 경제 실패 프레임이 워낙 강해 안타깝다”며 국민들의 염장을 지른다. 어려움에 빠진 중소기업인들을 앞에 놓고 “정책 효과가 당장 체감되지 않겠지만 우리 경제는 거시적으로 성공으로 가고 있다”는 주문을 외운다. 부두 경제학이란 딱지를 어느 쪽에 붙여야 할지 따지는 것은 멋쩍은 일이다. 과연 4년 전의 문재인 대표와 지금 문재인 대통령이 같은 인물인지 헷갈릴 따름이다.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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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