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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한 아내에게 "밥은 굶지 말고 싸돌아 댕기라"

기자
송미옥 사진 송미옥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90) 
영화 '밤에 우리 영혼은' 스틸컷. 남편을 여의고 혼자 사는 에디 무어(제인 폰다 분)와 아내를 잃고 외롭게 사는 루이스 워터스(로버트 레드포드 분)의 노년기 로맨스를 그린 영화이다. [중앙포토]

영화 '밤에 우리 영혼은' 스틸컷. 남편을 여의고 혼자 사는 에디 무어(제인 폰다 분)와 아내를 잃고 외롭게 사는 루이스 워터스(로버트 레드포드 분)의 노년기 로맨스를 그린 영화이다. [중앙포토]

 
『밤에 우리 영혼은』이라는 책을 신문에서 소개받아 읽고 영화도 찾아서 보았다. 내용은 서로 잘 모르는 나이든 남녀가 만나 밤만 공유하며 함께 지내기로 한다. 주인공들은 오랜 시간 같은 동네에서 서로 알고는 지냈지만 친하지도 않았던 이웃인데 두 사람 다 일찍 혼자가 되어 살아가는 중이다. 어느 날 밤 남자가 묻는다.
 
“왜 하필 나였어요?”
여자가 말했다. “참 좋은 사람 같아서요.”
70대가 넘은 두 남녀의 노후 삶이 참 서정적으로 그려져 긴 여운이 남았다. 살다 보면 가장 가까운 사람의 마음을 읽을 줄만 알아도 참 좋은 사람이란 걸 알았을 텐데 함께 있을 땐 눈뜬 봉사같이 앞에 두고도 못 알아보고 으르렁거리며 살았다.
 
소통과 불통을 넘나들던 중년 시절 우리 부부는 어느 날 진짜로 이혼신청서를 냈다. 서류 접수하고 출석하라는 시간 전에 화해해서 끝까지 안 갔지만 아무튼 큰 전쟁이 사는 동안 서너 번은 지나갔다. 어느 날도 소소한 전쟁이 크게 번졌다. 사니 못사니 이제껏 참고 살았느니 어쩌니 하며 타오르는 불길은 쉽게 수습이 안 되었다. 이번엔 못 참아. 애들도 다 컸겠다. 헤어지면 누가 손해인데 하자. 진짜 하자.
 
“10시에 법원 앞에서 만나.”
나름 겁주는 말을 남기고 출근해서 잊어버리고 일을 하는 중 10시쯤 전화가 왔다.
“법원 도착 했데이.”
 
소통과 불통을 넘다들던 중년 시절 우리 부부는 어느 날 진짜로 이혼신청서를 냈다. 자세를 낮추며 다시 잘 살아보자고 말할 줄 알았던 남편이 법원 앞이라며 전화가 왔다. [사진 photo AC]

소통과 불통을 넘다들던 중년 시절 우리 부부는 어느 날 진짜로 이혼신청서를 냈다. 자세를 낮추며 다시 잘 살아보자고 말할 줄 알았던 남편이 법원 앞이라며 전화가 왔다. [사진 photo AC]

 
치맛자락 대신 전화기를 붙잡고 다시 잘살아 보자며 자세를 낮추려니 생각했던 남편이 진짜 헤어지길 기다렸단 말인가. 그렇다면 오기로라도 이혼을 해야 할 상황이었다. 법원에 서류를 넣고 돌아온 날, 남편은 잔소리 없는 해방된 세상이라며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느긋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이게 아닌데….
 
민망한 내가 앞으로 살아갈 궁리도 할 겸 여행을 다녀오겠노라 가방을 싸서 나왔다. 그래, 나도 해방되어 새 인생을 살아보자며 두렵고 공허한 마음 한구석에 위로의 마음을 꼭꼭 다져 넣어도 불안한 가슴은 한겨울 이가 부딪치듯 했다. 진짜 이게 아닌데….
 
바쁘게 일할 땐 갈 곳도 많더니 막상 나오니 갈 데가 없다. 서울역 가는 길에 드드드 문자가 왔다. ‘통장에 돈 넣어 놨으니 삼시 세끼 밥은 굶지 말고 다니라’는 남편의 문자다. ‘흥, 본인이나 잘 챙겨 드시지. 반찬도 해놓은 게 없는데 뭘 해서 먹을는지….’ 나 역시 바보 같은 걱정을 하며 여비자금을 찾기 위해 은행을 찾았다. 내 이름으로 만든 비자금 통장을 갖고 나와서 다행이다. 그런데 나는 그 자리서 기절할 뻔했다.
 
며칠 전 은행에서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면 한도금액이 얼마나 되는가 하며 직원과 상담한 최고 한도금액이 내 통장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그것은 살고 있던 아파트를 팔아야 갚을 수 있는 금액이었다. 이 양반이 미쳤나? 소름이 돋았다. 남편에게 전화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아주머님께서는 그냥 쓰기만 하면 되십니다. 이혼하면 내 이름으로 대출한 돈은 내가 갚는 건데 당신이 왜 걱정이고~ 댕기는 동안 밥은 굶지 말고 싸돌아 댕기라고요~’ 나는 부끄럽게도 큰소리 치고 나간 지 하루를 못 넘기고 기어 들어왔다.
 
그래도 쪼잔한 자존심에 법원에 간 것은 헤어질 마음으로 간 거 아니었냐고 남편에게 깐죽거렸다. ‘하늘의 별도 달도 따주고 싶은 사랑하는 부인이 원하는 건데 뭔들 못 들어 주노? 이혼이 뭐 어렵나? 그 간단한 것을~하하’ 말로는 여자를 못 이기지만 깊은 마음 씀은 남자를 못 이긴다.
 
이후 마이너스 통장의 숫자는 몇 년이나 우리 삶에 따라 다녔다. 그것이 작전이었더라도 우리가 함께 모은 전 재산을 헤어질 부인의 안녕을 위해 몽땅 내어준 그 사건은 감동으로 남았다. 가까운 사람끼리 ‘밥 챙겨 먹으라’는 인사가 얼마나 큰 관심과 사랑을 담고 있는지. 함께 있는 사람이 참 좋은 사람이란 걸 지금이라도 알아차리면 더 행복할 것이다.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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