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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준의 의학노트] 터스키기 연구와 클린턴의 사과

임재준 서울대 의대 호흡기내과 교수

임재준 서울대 의대 호흡기내과 교수

1932년 미국 공공보건서비스청은 앨라배마에 있는 ‘터스키기’라는 곳에서 치료받지 않은 매독이 어떻게 진행하는지 확인하는 연구를 시작한다. 매독 환자 399명과 건강한 사람 201명이 이 연구에 참여했는데, 이들은 모두 가난한 흑인 남성으로 대부분 문맹이었다. 연구에 참여하면 무료 검진과 함께 식사가 제공되었고, 나중에 사망하면 부검하되 가족들에게 장례비용을 줬다. 매독에 대한 의학적 이해가 불충분했던 당시에는 이 병의 진행 경과를 세세히 파악하는 연구가 분명히 필요했다.
 
이 연구는 시작부터 좋지 않았다. 연구자들은 환자들에게 병명도 제대로 일러주지 않았고, 진행 경과를 관찰한다고 설명하는 대신 치료의 효과를 보는 연구라고 속였다. 연구가 한창 진행되던 중 더 큰 문제가 생겼는데, 그것은 바로 페니실린이 매독 치료에 매우 효과적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효과적인 치료제가 개발되었다면, 그 질병을 치료하지 않고 자연 경과를 관찰하는 연구는 당연히 불가능하다. 즉시 연구를 중단하고 환자들을 치료해야 한다.
 
 1997년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빌 클린턴이 미국 정부기관에 의해 비윤리적으로 진행되었던 ‘터스키기 연구’의 피해자들을 만나 사과하고 위로하는 장면.

1997년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빌 클린턴이 미국 정부기관에 의해 비윤리적으로 진행되었던 ‘터스키기 연구’의 피해자들을 만나 사과하고 위로하는 장면.

놀랍게도, 이 연구를 맡은 공무원들과 의사들의 결정은 달랐다. 환자들을 치료하지 않고 계속 관찰하기로 한 것이다. 심지어 치료제가 개발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온 연구 참여자들에게 생리식염수를 페니실린이라고 속여 주사하는 막장으로 치달았다. 결국 내부 고발자가 나타났고, 1972년 7월에 뉴욕 타임스 1면 머리기사를 통해 이 연구의 전모가 낱낱이 공개되어버린다. 연구는 곧 중단되었는데, 그때까지 환자들 중 28명이 매독 때문에 사망했고, 100명이 매독과 관련된 합병증으로 사망했으며, 배우자들 중 40명이 매독에 감염되었고, 19명의 아이들이 선천성 매독을 지닌 채로 태어났다.
 
그러나 연구 책임자였던 존 헬러 박사는 전혀 반성하지 않았다. 도리어 “의사들과 공무원들은 단순히 그들에게 주어진 일들을 수행했다. 지시를 따랐을 뿐이고, 과학의 영광을 위해 일했다”고 부하들을 감쌌고, “그들의 상태는 윤리적 논쟁 감이 아니었다. 그들은 환자가 아니라 연구 대상이었으며, 아픈 사람들이 아니라 임상 자료였다”며 연구를 옹호했다.
 
그제야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환자들은 소송을 제기했고, 미국 정부는 1000만 달러의 위로금을 지급하기로 이들과 합의했다. 그럼에도 피해자들에 대한 미국 정부의 공식 사과는 계속 미루어져 왔는데, 용기를 내어 사과하고 용서를 구한 사람은 바로 미국 42대 대통령 빌 클린턴이다. 그는 1997년 5월, 생존해있던 터스키기 연구 참여자 중 5명을 백악관으로 초청하여 사과한다.(사진) “이미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침묵을 깰 수는 있습니다. 미국 정부는 깊이, 심각하게, 도덕적으로 잘못된 일을 저질렀습니다. 죄송합니다.” 피해자들은 사과를 수용했고 미국 정부는 이들의 치료를 끝까지 책임지기로 했는데, 이 비극적인 사건은 의학 연구의 윤리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요즘 악화되는 한·일 관계가 무척 안타깝다. 문제 해결의 시작은 일제강점기에 벌어진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한 일본의 진심 어린 사과일 것이다. 여러 번 사과하지 않았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처럼 사과라는 것은 상대방이 이제 충분하다고 할 때까지 해야 하는 것이다. 사과는 받는 쪽은 물론 하는 쪽에게도 늘 이익이라는 점을 되새겼으면 좋겠다.
 
임재준 서울대 의대 호흡기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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