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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이 쫓아낸 ‘공동묘지’를 옥토로 만든 고려인들

카자흐에 울려 퍼진 ‘아리랑’ 
문재인 대통령이 카자흐스탄을 방문한 지난달 21일(현지시각) 카자흐스탄 누르술탄공항에서 카자흐스탄 군 의장대가 애국지사 계봉우.황운정 지사 내외의 유해를 봉환하기 위해 공군 2호기로 운구하고 있다. [뉴스1]

문재인 대통령이 카자흐스탄을 방문한 지난달 21일(현지시각) 카자흐스탄 누르술탄공항에서 카자흐스탄 군 의장대가 애국지사 계봉우.황운정 지사 내외의 유해를 봉환하기 위해 공군 2호기로 운구하고 있다. [뉴스1]

지난달 16일(현지시각) 카자흐스탄 옛 수도인 알마티 시내 ‘알마티 한국교육원’. 고려인 2~3세들로 구성된 ‘고향 합창단’이 ‘아리랑’을 부르고 있었다. 한쪽에선 한국어에 서툰 고려인들이 반주에 맞춰 연신 고개만 끄덕이는 모습도 보였다. 문재인 대통령의 카자흐스탄 방문을 닷새 앞두고 진행된 연습에는 50여 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고려인 2세인 블라디미르 일리치(68)씨의 지휘에 맞춰 힘차게 노래를 불렀다.
 
문 대통령의 카자흐스탄 방문 소식에 당시 알마티에 사는 고려인들은 한껏 들떠 있었다. 한국 대통령 최초로 알마티를 찾는 문 대통령에게 노래와 율동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알마티는 1937년 한인 강제이주의 현장인 카자흐스탄 내에서도 가장 많은 고려인이 사는 곳이다. 고려인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러시아 연해주 일대로 이주한 한인들을 말한다. 스탈린 통치 시절에는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후 차별대우 속에서 어려운 삶을 살았다.
 
고려인들의 오랜 이주역사는 이날 음악 수업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고려인 2~3세의 경우 한국어에 능숙하지 못한 사람이 많아서다. 이들은 ‘아리랑’과 러시아 민요인 ‘씨를 활활 뿌려라’를 한국어와 카자흐스탄어로 열창했다. 한국말에 서툰 노인들은 카자흐스탄어로 된 악보에 꼼꼼히 가사를 적어가며 한 구절 한 구절을 따라 불렀다. 고려인 3세인 장니나(67·여)씨는 “타국에서 태어나 살다 보면 힘들다는 말조차 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며 “힘들 때 아리랑을 콧노래로 부르면 큰 위안이 된다”고 말했다.
 
지난달 16일(현지시각) 카자흐스탄 옛 수도인 알마티 시내 ‘알마티 한국교육원’에서 고려인 2~3세들이 ‘아리랑’과 러시아 민요에 맞춰 율동을 하고 있다. 최경호 기자

지난달 16일(현지시각) 카자흐스탄 옛 수도인 알마티 시내 ‘알마티 한국교육원’에서 고려인 2~3세들이 ‘아리랑’과 러시아 민요에 맞춰 율동을 하고 있다. 최경호 기자

‘인구 0.6%’ 고려인, 영향력 탄탄
카자흐스탄 내에서의 고려인들의 입지는 탄탄하다. 전체 인구(1840만명) 중 0.6%에 불과 하지만 고려인은 사회적 영향력으로 볼 때 카자흐스탄 내 130여개 민족 중 3~4대 민족 중 하나로 꼽힌다. 강제이주 이후 척박한 땅을 일궈가며 사회 곳곳에서 뿌리를 내린 결과다. 현재 카자흐스탄에는 고려인 10만6000여 명이 다양한 부문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알마티에 있는 고려극장은 카자흐스탄에서의 고려인들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한인 강제이주의 역사를 간직한 극장은 카자흐스탄 정부가 옛 국립아카데미오케스트라 건물을 고려극장 측에 제공했다. 앞서 2002년 알마티 외곽에 있는 건물을 내줬던 정부 측은 시설이나 교통 편의성 등을 고려해 지난해 6월 다시 이전을 주선했다. 1932년 연해주에서 창단된 고려극장은 87년간 고려인들의 삶과 애환을 대변하는 역할을 해왔다. 지금도 한해 80여 차례에 걸친 한국어 연극과 뮤지컬·콘서트 등을 통해 교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카자흐스탄을 국빈방문한 문재인 대통령 내외가 지난달 21일(현지시각) 알마티 고려극장을 방문해 환영나온 교민들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카자흐스탄을 국빈방문한 문재인 대통령 내외가 지난달 21일(현지시각) 알마티 고려극장을 방문해 환영나온 교민들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강제이주지, 추위·굶주림에 묘지화
카자흐스탄에는 고려극장 외에도 고려인 강제이주 첫 도착지인 ‘우슈토베’와 동포들의 공동묘지인 ‘바스토베’가 남아 있다. 우슈토베는 1937년 10월 9일 강제이주 당시 한인들이 열차를 타고 맨 처음 도착한 곳이다. 
 
이주 초기 고려인들은 기차역에서 5㎞가량 떨어진 곳에 토굴을 짓고 추위와 굶주림에 떨어야 했다. 사막에 가까운 황무지에서 식량 한 톨 구할 수 없어 토굴 옆은 바로 공동묘지(바스토베)가 됐다. 고려인들은 이런 역경 속에서도 인근 강에서 물을 끌어다 쓰며 수백만평의 황무지를 농토로 바꿔놓았다. 우슈토베에서 척박한 땅을 일군 한인들은 이후 알마티나 우즈베키스탄 등으로 이주해 중앙아시아 곳곳에 둥지를 틀었다.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 있는 홍범도 장군의 묘지. 홍 장군은 1937년 옛 소련의 강제이주 당시 연해주에서 떠나온 뒤 카자흐스탄에서 서거했다. [사진 알마티 김]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 있는 홍범도 장군의 묘지. 홍 장군은 1937년 옛 소련의 강제이주 당시 연해주에서 떠나온 뒤 카자흐스탄에서 서거했다. [사진 알마티 김]

‘한인이주의 아픔’ 홍범도 장군 묘지도 
크즐오르다에 있는 홍범도(1868~1943) 장군의 묘지도 한인 이주의 역사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홍 장군은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끈 후 카자흐스탄에서 숨을 거뒀다. 옛 소련의 강제이주 당시 연해주에서 떠나온 장군은 말년을 고려극장의 문지기로 일하다 75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홍 장군의 발자취는 국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곡2동행복센터에 문을 연 역사유물기념관에는 홍 장군을 비롯한 고려인 항일투쟁의 역사유물들을 모아놓았다. 전시관에는 연해주에서 항일무장투쟁을 벌인 김경천 장군의 부부 사진과 일기장인 ‘경천아일록’ 등 항일 자료 100여점이 전시 중이다.
 
알마티(카자흐스탄)=최경호 기자 choi.kyeongho@joongang.co.kr
 
카자흐스탄의 옛 수도인 알마티 내 국립박물관에 전시된 황금인간. 지난 2월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황금인간' 특별전을 통해 국내에 소개되기도 했다. 최경호 기자

카자흐스탄의 옛 수도인 알마티 내 국립박물관에 전시된 황금인간. 지난 2월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황금인간' 특별전을 통해 국내에 소개되기도 했다. 최경호 기자

◇카자흐스탄은
1991년 소비에트연방(구소련)에서 독립한 중앙아시아국가다. 세계에서 9번째로 큰 국토(272만4900㎢)를 가지고 있다. 광물자원 등도 풍부하다. 고려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알마티는 이 나라의 옛 수도이며, 현 수도는 누르술탄이다. 지난 2월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황금인간의 땅, 카자흐스탄’ 특별전에서는 카자흐스탄의 풍부한 자원과 역사가 국내에 소개되기도 했다.
 
카자흐스탄은 고대 실크로드(Silk Road) 중심지라는 지정학적 위치를 토대로 독립 후 30여년 만에 중앙아시아 경제·물류 중심지로 도약했다. 중국과 ‘신(新) 실크로드’ 정책을 편 후로는 중앙아시아 지역 중 투자 1순위 국가로 급부상했다. 현재 이 길은 철도를 통해 중국의 물류를 유럽까지 실어나르는 핵심 관문이 되면서 ‘철(鐵)의 실크로드’로 불린다.
'철의 실크로드'로 불리우는 카자흐스탄과 중국의 국경인 호르고스에 구축된 철도와 물류분류 시설. 최경호 기자

'철의 실크로드'로 불리우는 카자흐스탄과 중국의 국경인 호르고스에 구축된 철도와 물류분류 시설. 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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