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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면 수천마리 짝짓기 비행···흰개미 습격, 북촌 위험하다

아열대성 곤충의 습격
흰개미가 파먹은 북촌마을서재 기둥 밑을 박현철 교수가 내시경으로 살펴보고 있다. [김상선 기자]

흰개미가 파먹은 북촌마을서재 기둥 밑을 박현철 교수가 내시경으로 살펴보고 있다. [김상선 기자]

지난 16일 서울 계동(북촌) 한옥지원센터. 자체가 한옥인 건물 곳곳을 부산대 박현철(생명환경화학과) 교수가 살피기 시작했다. 내실 기둥 앞에 멈춰 서더니 기둥을 손으로 두드렸다. 가벼운 ‘통통’ 소리가 났다. “흰개미가 기둥을 파먹었다. 이 정도면 안이 꽤 비었다.” 이어 지름 1.8㎜짜리 가느다란 내시경을 틈새로 밀어 넣었다. 우툴두툴한 통로 같은 게 보였다. “머드 튜브(mud tube)라고, 흰개미가 다니던 길이다. 상태로 볼 때 최근까지 이곳에 있다가 다른 데로 갔다.”
 
내시경에 잡힌 땅속 모습. [김상선 기자]

내시경에 잡힌 땅속 모습. [김상선 기자]

건물 외부로 나갔다. 한옥지원센터 대문 기둥, 그리고 센터에 이웃한 북촌마을서재 대문 기둥 역시 흰개미가 파먹었다. 아래쪽은 피해가 심해 거의 스펀지 같은 상태였다. 박 교수는 북촌마을서재 기둥 밑에 다시 내시경 카메라를 찔러 넣었다. 안으로 들어가던 내시경에 움직이는 물체가 잡혔다. “흰개미다!” 주변을 돌아다니던 흰개미는 이내 어디론가 숨어들었다. 한옥지원센터 대문 기둥 아래에서도 흰개미가 내시경에 포착됐다. 박 교수가 설명했다. “둘 다 정찰병 같다. 흰개미는 무리가 움직이기 전에 정찰병이 주위를 살핀다.” 박 교수는 호주 커틴대에서 공부한, 국내 유일한 흰개미 생태학 박사다.
 
흰개미가 갉아 먹어 스펀지처럼 된 한옥지원센터 기둥. [김상선 기자]

흰개미가 갉아 먹어 스펀지처럼 된 한옥지원센터 기둥. [김상선 기자]

한옥이 밀집한 서울 북촌에 목재를 갉아먹는 흰개미가 출몰하고 있다. 온난화가 부른 풍경이다. 4, 5년 전부터 봄이면 새벽녘에 흰개미 수천 마리가 떼 지어 짝짓기 비행하는 모습을 주민들이 목격하고 있다. 한옥지원센터에 따르면 올해도 4월 중순부터 5월까지 6~7건 목격 신고가 들어왔다. 때론 욕실이나 주방처럼 습기가 많은 곳 기둥 주변에서 흰개미 수십 마리가 눈에 띄기도 한다. 또 한옥을 리모델링할 때면 기둥 등을 파먹은 흔적이 발견된다. 서울시 민속문화재 22호인 가회동 ‘백인제 가옥’도 일부 흰개미의 공격을 받은 사실이 서울시 자체 조사에서 드러났다.
 
흰개미는 덥고 습한 지역에 무리 지어 살며 주변의 죽은 나무와 목재를 갉아먹는다. 땅속에 살면서 목재 내부로 이동해 파먹기 때문에 짝짓기 비행 같은 때가 아니면 여간해서 눈에 띄지 않는다. 국내에서는 주로 남부 지방에서 출몰했으나 온난화로 인해 점점 북상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북촌 같은 한옥 밀집지역은 흰개미가 서식하기에 딱 좋은 조건을 갖췄다. 무엇보다 나무가 습기를 잔뜩 머금고 있다는 점이다. 한옥이 다닥다닥 붙은 곳은 처마가 짧다. 비가 들이쳐 기둥이 젖기에 십상이다. 햇볕이 들지 않고 바람도 잘 통하지 않아 기둥이 늘 축축하다. 박 교수는 “한국 흰개미는 몸에 수분을 저장하는 능력이 없어 습기가 있는 곳으로만 다닌다”며 “그런 흰개미들에게 젖은 목재는 좋은 사냥감”이라고 말했다.
 
현재로썬 흰개미가 나타났을 때 완전히 쫓아낼 방법이 없다. 약을 쳐도 별무신통이다. 때때로 집 안에 모습을 드러내는 흰개미는 많아야 전체 무리의 5% 미만이다. 출몰하는 부분에 약을 쳐도 95% 이상은 그대로 살아 있다. 없애려면 집 전체에 살충제 증기를 쐬어 주는 ‘훈증 처리’ 등을 해야 한다. 실제 출입 통제가 가능한 문화재는 이렇게 처리한다. 그러나 독성 등의 문제로 사람이 사는 집에서는 이럴 수 없다. 박 교수는 “일단은 흰개미가 나오는 곳, 그리고 가능성이 있는 곳을 찾아 약품 처리를 해야 한다. 그래도 다음에 다른 곳에서 또 나오지만, 개체 수는 점점 줄어든다”고 말했다.
 
흰개미의 일개미

흰개미의 일개미

외국에서는 흰개미 집을 찾아 전체를 제거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게 불가능하다. 무리 지어 살되 집을 짓지는 않는 한국 흰개미만의 특징 때문이다. 집이 없어 무리가 수시로 이동하기에 찾기가 힘들다. 여왕개미도 유별나다. 자기 방에서 꼼짝 않고 알만 낳는 외국 흰개미와 달리, 한국은 여왕개미도 돌아다닌다. 무리에 여왕개미가 여러 마리라는 것 또한 한국 흰개미만의 특성이다. 한 무리에 최대 25마리까지 있다는 것을 박 교수가 직접 흰개미를 키우면서 밝혀냈다. 외국은 무리당 여왕개미가 한 마리뿐이다.
 
나타난 흰개미를 쫓아내기는 힘들지만, 애초부터 나타나지 않게 하는 예방책은 있다. 박 교수는 “우선 습기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고 했다. 건조한 데서는 살지 못하는 한국 흰개미의 약점을 겨냥한 방법이다.
 
제습기가 제일 효과적인가.
“습기를 빨아들이는 대나무 숯을 놓는 것도 좋다. ‘벽난로를 설치하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있다. 벽난로를 때는 것 자체로 습기가 제거될 뿐 아니라, 나무 연기가 가진 방충 효과도 얻을 수 있다.”
 
바람이 잘 통하게 할 필요도 있겠다.
“일본에서는 목조가옥 마루와 땅바닥 사이 공간에 팬을 설치해 강제통풍을 한다.”
 
몸에 수분을 저장하지 못하는 게 한국 흰개미만의 특징인가.
“그렇다. 한국 흰개미는 건조한 곳에 가면 죽는다. 같은 이유로 활동 영역이 좁다. 외국 흰개미는 반경 200~300m까지 활동하는데, 한국 흰개미는 수십m 정도다.”
 
집 전체를 리모델링한다면 습기 제거보다 더 확실한 방법을 쓸 수 있다. 한옥을 바닥까지 완전히 들어내고 토양에 흰개미가 오지 못하게 하는 약을 치는 것이다. 실제 이렇게 한 집은 몇 년 뒤에도 흰개미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한옥살림 김원천 대표가 전한 경험담이다. 한옥살림은 한옥 건축·리모델링 전문 업체다. “익선동의 한옥을 리모델링했다. 허물어 보니 기둥 대부분을 흰개미가 먹었더라. 특히 화장실 기둥은 양쪽 벽이 받쳐주지 않았다면 주저앉았을 정도로 심한 상태였다. 박 교수에게 자문하고 가옥주의 허락을 얻어 바닥을 들어내고 토양에 약 처리를 했다. 4년 됐는데 아직 흰개미가 나왔다는 소식은 없다. 똑같이 처리한 한옥 7~8곳 모두 마찬가지다. 단점은 있다. 벽체만 허무는 리모델링과 달리 바닥까지 들어내야 해 비용이 훨씬 많이 든다.”
 
서울에는 한옥 1만여 채가 있다. 북촌뿐 아니라 서촌과 남산 한옥마을에서도 흰개미 피해가 보고된다. 서울시 한옥지원센터는 한옥 가구주 등을 대상으로 1년에 한 차례 정도 흰개미 생태 설명 강좌를 열고 있다. 그러나 한계가 있다. 서울시조차도 효율적인 방제법을 확실히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서울시 한옥건축자산과 김현우 대목수는 이렇게 말했다. “전통 건축을 보존하려면 흰개미를 극복하는 게 필수다. 이건 서울시만이 아니라 전국적인 문제다. 더 경제적이고 효율적이면서 인체에 해가 없는 방제법을 국가가 찾아 보급했으면 한다.”
 
흰개미 탐지견도 활약
충남 예산 수덕사에서 탐지견이 흰개미를 찾고 있다. [사진 에스원 탐지견센터]

충남 예산 수덕사에서 탐지견이 흰개미를 찾고 있다. [사진 에스원 탐지견센터]

전국의 목조 문화재 역시 흰개미의 공격 대상이다. 흰개미 입장에서 볼 때 목조 문화재 부근은 서울 북촌 한옥마을보다 더 살기 좋다. 대부분 목조 문화재가 산속 사찰에 있어서다. 문화재 자체 말고도 죽은 나무 같은 먹잇감이 주변에 지천으로 널렸다. 실제 1990년대 말부터 흰개미에 의한 문화재 피해가 보고됐다. 그 뒤 문화재청과 문화재연구소는 피해 실태를 전수 조사했고, 이어 상시 모니터링을 하면서 피해가 발견되면 약품 훈증 처리하는 등의 조처를 하고 있다.
 
문화재 흰개미 피해 조사에는 흰개미 탐지견도 동원된다. ‘스프링어 스패니얼’이라는 견종으로, 사회공헌 차원에서 보안업체 에스원이 삼성에버랜드의 협력을 받아 훈련한다. 산속에서 흰개미를 채집해 흰개미가 뿜는 화학물질의 냄새를 찾도록 한다. 문화재청 측은 “최근에 흰개미 피해를 본 곳은 화학물질이 남아 있기에 탐지견과 함께 가면 찾아낼 확률이 높다”고 소개했다. 현재 3마리가 활동 중이며 2마리가 훈련을 받고 있다.
 
권혁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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