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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는 셀프' 오지랖 넓은 무남독녀 클럽 출동!

기자
홍미옥 사진 홍미옥
[더,오래] 홍미옥의 폰으로 그린 세상(27)
오늘은 무남독녀 클럽 모임이 있는 날이다. 아니 무슨 7080 시절 전설의 흑장미, 칠공주 모임도 아니고 무슨 이름이 저리도 귀하고 럭셔리 하단 말인가! 과연 속사정도 그러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중년의 맏딸들은 부모에게는 친구와도 같은 역할을 하는 듯하다. by 갤럭시탭S3 아트레이지 사용. [그림 홍미옥]

중년의 맏딸들은 부모에게는 친구와도 같은 역할을 하는 듯하다. by 갤럭시탭S3 아트레이지 사용. [그림 홍미옥]

 
오래된 친구들과의 만남은 몇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즐겁다. 누가 보거나 말거나 나이도 잊은 채 깔깔거리다가 소곤거리다가 도무지 거칠 게 없다. 우연히도 친구들은 모조리 큰딸이다. 정말로 형제 중 맏이인 친구도 있고, 나처럼 딸 중에 큰딸인 경우도 있다. 설마 일부러 큰딸끼리만 친구로 삼았을 리도 없건만 지금에 보니 그렇게 되었다. 이런 걸 두고 끼리끼리 어울린다고 하는 걸까? 아니면 운명적으로 비슷한 처지끼리 친구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늘 그렇듯이 안부를 주고받고 자식 걱정과 때론 은근한 자랑,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로 만남은 시작된다. 생각해보니 언제부턴가 시댁과 남편 이야기 비중은 확 줄었다. 대신 그동안 내 어깨와 허리는 얼마나 아팠는지, 또 건망증은 말도 못할 수준이라든지 등등 그야말로 ‘전국잔병 자랑대회’가 이어진다.
 
그렇게 대화가 무르익으면 누구랄 것도 없이 한숨을 쉬는데, 그게 우리 무남독녀 클럽의 특징이다. 사실, 친구들은 모두 점점 약해져 가는 부모님의 병시중에 바쁜 중년이다.
 
처음엔 세상의 큰딸들은 무수리 팔자를 타고났냐며 한탄을 하곤 했다. 이건 뭐 무남독녀나 다름없이 독박효도를 하고 있다고 불평을 쏟아 내기도 했다. 해서 탄생한 무남독녀 클럽. 그러니까 셀프 무남독녀인 셈이다. 형제자매가 있지만 노부모의 뒷바라지는 언제나 큰딸 몫이라는 유치한 불만과 치졸함이 섞인 말이다. 구태여 좋게 말하면 부모가 가장 편안해 하는 믿음직한 딸이랄까? 우린 어감이 아주 도도하고 럭셔리하다며 한바탕 웃어댔다.
 
주말마다 전국의 꽃 축제를 부모와 함께 다니는 중년의 큰딸. 고창 상사화 축제(왼쪽)와 유성 이팝꽃 축제(오른쪽). [사진 조은희]

주말마다 전국의 꽃 축제를 부모와 함께 다니는 중년의 큰딸. 고창 상사화 축제(왼쪽)와 유성 이팝꽃 축제(오른쪽). [사진 조은희]

 
전국 방방곡곡 꽃 축제를 찾아가는 친구가 있다. 이른 봄의 매화 축제를 시작으로 산수유, 이팝꽃, 상사화, 수선화 등등 자고 나면 새로 생기는 온갖 꽃 잔치에 주말마다 가곤 한다. 그렇다고 특별히 꽃을 좋아하거나 연구하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팔순이 넘은 친정 부모를 모시고 가는 것이다. 물어볼 것도 없이 그도 큰딸, 우리 전용 언어로 무남독녀다.
 
한때는 붉은 상사화(꽃무릇)의 꽃말처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맘을 달랬을 테고, 뽀얀 이팝꽃만큼이나 화사했을 세상의 모든 부모님! 수시로 드는 피곤함도 꽃 앞에서 활짝 피는 부모의 미소를 보면 스르륵 녹아내린다고 한다. 꽃으로 효도하는 흔치 않은 경우다.
 
사실 우리 '셀프 무남독녀 클럽' 친구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고 있다. 부모님이 아프거나 무슨 일을 하려 하면 남보다 먼저 자청하고 나선다. 내가 아니면 안 될 일도 아니건만, 세상 큰딸들의 공통점인 타고난 책임감과 오지랖은 열두폭 치마를 덮고도 남는다.
 
홀로 남으신 어머니가 혼자 식사를 하는 게 맘에 걸려서 일을 마치자마자 달려가는 친구, 중환자실에 누워계신 노모를 온종일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키는 친구, 멀리 사시는 노모의 뒷바라지를 위해 수시로 장거리 기차를 타는 친구 등 웬일인지 내 주변의 친구들은 큰딸 노릇을 톡톡히 한다. 그렇지만 우리도 큰딸 노릇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수시로 ‘왜 나만?’이라는 짜증과 치사한 원망이 스멀스멀 올라오기도 한다.
 
큰딸로 태어난 여자들의 심리를 다룬 책. 외국의 사례도 놀랍도록 우리와 비슷하다. [사진 홍미옥]

큰딸로 태어난 여자들의 심리를 다룬 책. 외국의 사례도 놀랍도록 우리와 비슷하다. [사진 홍미옥]

 
얼마 전 서점에서 『첫째 딸로 태어나고 싶지는 않았지만』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난 고민할 것도 없이 그 책을 집어 들었다. 제목만으로도 뭔가 통할 것 같고 위로를 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신기한 건 외국의 큰딸도 우리와 거의 비슷한 감정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타고난 책임감과 성실함, 그리고 세심함 등이 맏이의 특징이라고 책은 말한다. 그렇지만 상황이 임계점에 이르면 ‘왜 나만?’이라는 원망의 불씨가 피어오르기 시작한다고.
 
우스운 건 우리도 다르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다가 이내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거다. ‘아! 맏이가 느끼는 감정은 만국 공통인가? 뭔가 동지의식과 함께 위로가 되는 것 같은 이 기분은 뭐지?’ 그런가 하면 책 속에서 발견한 희망도 있다.
 
‘큰딸 중에는 뒤늦게 빛을 발하는 경우가 많다. 처음에는 다져진 길을 따라간다. 남들의 기대에 맞춰주고 모두가 행복해지면 그때야 자기 두 다리로 서기 위한 궁리를 한다. 그때야 잠자고 있던 충동에 자리를 내주는 것이다.’ 오~ 뒤늦게 빛을 받을 세상의 큰딸들이여 파이팅!
 
오랜만에 모인 우리 무남독녀 클럽. 우리의 수다는 여전하다. 요즘 어르신 보행기 디자인이 이쁘다는 둥 노치원(주간보호센터)을 가려면 어찌하냐는 등 몇 년 전만 해도 낯설었던 장기요양보험 등급이 어쩌고….
 
오랜만에 모인 무남독녀 클럽. 우리의 수다는 여전하다. 요즘 어르신 보행기 디자인이 어떻다는 등 주제는 거창하게도 노인복지와 고령화 사회다. 사진은 고령자 두 명이 보행기를 끌고 마을을 나서는 모습. 프리랜서 김성태

오랜만에 모인 무남독녀 클럽. 우리의 수다는 여전하다. 요즘 어르신 보행기 디자인이 어떻다는 등 주제는 거창하게도 노인복지와 고령화 사회다. 사진은 고령자 두 명이 보행기를 끌고 마을을 나서는 모습. 프리랜서 김성태

 
우리의 주제는 그야말로 거창하게도 노인복지와 고령화 사회다. 당뇨에는 돼지감자가 좋다더라, 아니다 그래도 단백질이 최고니 맛있는 갈빗집에 모시고 가야 한다고. 오늘도 자칭 무남독녀 클럽 큰딸들은 저마다 마음이 분주했다. 이런 역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다들 알기 때문일까?
 
언젠가는 우리도 부모님과 이별을 할 날을 마주해야 한다. 사실 무남독녀니 독박효도니 하면서 치사하게 공치사를 떨고 있지만, 큰딸이건 아들이건 막내이건 자식들의 마음은 똑같다. 내 부모님이 건강하기를 바라는 마음의 무게는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요즘엔 효도는 셀프라는 개념을 다들 알고 있어서 예전처럼 배우자에게 그 짐을 짊어지게 하지도 않는다. 암만 생각해도 명언이요, 진리인 ‘효도는 셀프!’
 
친정엄마를 뵙고 돌아가던 길, 어느 어르신이 네발 지팡이를 짚고 걸어간다. 허리가 많이 굽고 다리도 많이 불편해 보였는데, 의외로 네발 지팡이가 보조를 잘해주는 것 같이 보였다. 또 큰딸 유전자가 꿈틀댄다.
 
“어머! 어르신 지팡이가 참 좋네요, 어디서 사셨어요?” “아! 이거? 좋아 좋고 말고, 우리 큰딸이 나 넘어지지 말라고 사줬어.” 어르신은 자랑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 큰딸이군요. 큰딸!” 지난달 다리를 다쳐 외출이 만만치 않은 엄마가 생각났다. 당장 스마트폰을 꺼내 든다. 5분 만에 네발 지팡이는 주문 완료, 배송준비다! 이렇게나 편리한 세상이라니!
 
홍미옥 스마트폰 그림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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